●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40703a | 7인의 파수꾼 ①展으로 갑니다.
참여작가 박선기_백기영_성경화_장승애_전가영_채미현&J_한선현
관람료 / 1,000원
갤러리 상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9번지 Tel. 02_730_0030
새.로.운..지.혜. ● Negative Power-세속의 경험은 만나고 싶지 않은 세상의 일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 세속의 경험은 단순히 부정되어야만 하는 쓸모 없는 것일까? 우리는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 세상 끝 날까지 전쟁이 지속되고 다툼과 폭력이 그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러한 세상에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주와 자연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전혀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눈과 머리로 받아들이는 대신 마음과 영혼으로 볼 줄 아는 것이며 두려움과 경쟁 대신 사랑과 조화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채미현&J ● 레이저를 재료로 하는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는 미술작품으로는 드물게 집적된 첨단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창동미술스튜디오 작업실에서 스위치 하나를 켜자 청명한 빛으로 이루어진 무도회를 감상할 수 있었다. 리듬감을 가진 움직임들은 생명체의 심장박동 같다가도 어느새 숲의 저편으로 날아가 버리는 산새처럼 빠르게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그런 움직임 속에서 작가는 반딧불이의 장난과 맑은 물에서만 서식하는 쉬리의 요동을 발견하기도 한다. ● 작가가 응축된 빛에너지인 레이저로 작업을 하게 된 동기와 그 매체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에서 접할 수 있는 생명체인 이유를 한 대목의 대화에서 집어낼 수 있었다. 작업실 한켠에 놓인 지진계에 대해 그 용도의 의아함을 질문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진짜를 하고 싶었다'였다. 그 대답은 작가의 작업을 이끌어 가는 기본 토대가 되는 것으로 느껴졌다. ● 작가가 대학원 졸업 후 미주 전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며 현대미술가들의 본토와 작품을 살펴보고 귀국해서 처음 작업한 것은 흙으로 만든 어떤 것이었다. 왜 흙이었을까?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하는 강력한 자의식으로 말미암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 드로잉을 하기 위해 적절한 자신의 도구를 찾다가 발견한 것은 고농도의 에너지인 레이저였다. 허상을 만드는 미술이라 하지만 작가는 실제로 존재하는 힘, 그 에너지로부터 출발하고자 한 것이다. 그 에너지로 작가가 표현한 것은 생명의 이미지에 다름 아니었다. 그 이미지를 그리는 궤적의 모티브로서 지진파-즉, 지구의 진동을 이용한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가상임에도 그 요소를 이루는 것들은 실제적인 것들로 가득 차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일정량의 에너지와 정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작가는 순수 자연의 에너지를 끌어들여서 자신이 말하려는 바, 생명의 가치와 사랑스러움을 정보로 하여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 그런데, 레이저 작가 채미현&J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업은 새로운 작품이다. 매체의 완성도가 결실을 바라보고 있는 중에 작가는 새로운 실험을 하기로 한 것이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그것이다. 원형의 구불구불한 닥트를 사용하여 애벌레를 만들어 보여준다. 움직임이 있기도 하고 멈춘 것도 있다. ● 현란한 빛의 움직임 대신 어눌해 보이는 애벌레들은 작가가 거듭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작가 자신'이다. ● 창동에서 레이저 작품이 준 신선한 충격에 휩싸인 채 돌아오면서 눈이 아닌 가슴 한구석 어딘가에 꿈틀대는 작은 벌레가 계속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분명 동력기를 이용한 기계적인 움직임이었을 텐데 나의 기억 속에는 귀엽기도 하고 가엽기도 한 생명체로 지각되어 있었던 것이다. ● 그래서 이미지의 화려함으로 인한 쾌감을 잠시 접도록 했다. 곧 나비가 되어 날아갈 꿈을 꾸고 있을 작은 애벌레들의 속삭거림을 기대해 보기로 했다.
전가영 ● 전가영의 작품은 보는 사람을 차분한 기쁨으로 이끈다. 첫 개인전의 제목을 『color concert』라 지었다. 한 가지 색상의 빛을 내는 네모난 판넬들은 각각 음악의 음조를 나타낸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예를 들면 짙푸른 초록이 감도는 색상판에는 「F」, 개나리색, 푸른색, 연두색과 오렌지가 배치된 한 그룹은 「Eb major」로 이름 지었다. 은은한 한지에 직접 색을 입히고, 색상이 발광할 수 있도록 조명을 설치한 아크릴 박스의 안쪽에 한지를 붙인다. 발광하는 색상의 조합은 그 자체로 인간 내면의 아름다운 빛을 일깨우는 듯 하다. 거기에 더해져 귀를 울리는 화음. ●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하늘빛을 떠올리면서 색상을 만들었다. 그것과 함께 모차르트의 귀에 익은 자장가 「작은별」 변주곡이 울려 퍼질 것이다. 물론 그 음은 '반-짝-반-짝-- 작-은-별--'하면서 그에 동하는 색상의 깜박임을 이루어낸다. 어두운 공간에 색이 있는 빛의 점멸은 작은별들의 조화로운 움직임이 될 것이다. ● 전가영의 작품이 '조화'와 부드러운 변화를 통한 위안을 전해 줄 것임은 분명하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낮고 높음이 있고, 부드러운 것이 있고 거친 것이 있다. 세상에는 전쟁이 있으며 평화가 있고, 울음이 있으면 웃음이 공존한다. ● 이제 그러한 모든 것들의 존재 자체가 정당하며, 공존함으로써 드러나는 다양한 빛깔들이 전체적으로는 어떤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성경화 ● 전시를 위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받은 작가로부터의 인상 중에 가장 커다랗게 다가왔던 것은 작가가 어떤 황홀경 상태에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맨 처음 쏟아지는 별을 담은 밤하늘을 보거나, 꽃들 사이를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았을 때 빠져듦의 상태와 비슷한 것이었다.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치유력과 에너지를 머리로 알고 있는 현대인들 사이에서 작가가 가슴과 몸으로 알고 있는 자연은 아이를 황홀경에 빠지게 한 나비와 별들만큼 강력하고 신비로운 것이었다. ● 작가는 얼마 전부터 소박하지만 식물을 가꾸고 물고기를 기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하는 일이지만 그래서 지극히 평범한 행위이지만 그것을 '신비'로 지각할 수 있는 것이 작가 성경화의 힘이다. 나는 작가와의 대화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전달받은 것 뿐 이었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감수성은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존재해 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는 새로운 지혜가 되어있기도 하다. 매일 아침 솟는 태양과 감싸는 대기와 흙을 눈과 머리가 아닌 마음과 몸으로 느끼는 것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때이다. ●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생각이 있다. 수년전 『미륵이 온다』라는 제목의 그룹전을 통해 소개되었던 작가의 작품은 일반인을 찍은 사진이었다. 작가는 작품의 제목란에 '모든 사람이 미륵이다'라고 적어 놓았었다. 피사체가 되는 대상과의 긴밀한 교감이 꼭 필요하다는 그 작품은 매우 간명하면서도 인간이 우주 속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밝히는 것이었다. ● 이번 전시 작품 「산」에서 작가는 작은 식물들을 통하여 '존재하는 것'에 대한 어떤 직관을 보여준다. 테라리움은 폐쇄된 공간 안에서 제한된 흙과 수분과 공기를 가지고 자기 충족적으로 살아가는 식물 재배의 한 형식이다. 아크릴 케이스 속의 식물은 매우 작은 단위임에도 그 안에 존재-생명-을 위한 완벽한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인간을 소우주라고 하던가? 이미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하는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 안에서 살아있는 생명체의 속성으로 볼 수 있는 완전한 시스템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작은 단위의 조합으로 인간도 되고, 동물도 되고, 식물도 된다. 그러고 보면 다양한 종류와 정교함의 차이가 있을 뿐 존재의 근본은 동일한 것이라는 귀결이 자연스럽다. 테라리움 식물이건, 인간이건 작은 풀잎이건 간에 이들은 모두 우주를 이루는 독자적이면서도 협력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테라리움은 폐쇄된 공간 속의 존재이지만 크게 보면 더 큰 한 공간을 채우는 단위로 파악할 수도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 작은 테라리움은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채 자신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자기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일 수도 있고, 한 국가일 수도 있다. ● 나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자연-지구-우주로 시각을 확장해 보는 시도를 해 봄 직하지 않은가.
한선현 ● 작품 중에는 나란히 한 짝이 되는 작품이 있다. 「전쟁과 평화」이다. 검은 연기를 뿜으며 군용 지프차에 매달린 채 어딘가로 달려가는 병사들. 연신 하트모양을 뿜으며 사랑에 취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연인들. 염소가 의인화되어 표현된 주인공들은 한가득 익살을 담고 있다. 왜 염소인고 하니, 친근할 정도로 우습게 생긴 외모하며, 성격도 있으면서 양처럼 떼 지어 몰려다니지도 않는 것이 작가로서는 자신 같기도 하고,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 작가는 나무판을 조각칼로 이리저리 깎아내어 자기가 하고픈 이야기를 보여준다. 땀방울이 고슬고슬 떨어졌을 나무판 위에 동화책의 한 장면 같은 세계가 아로새겨진다. ● '지금도 이렇게 작업하는 사람도 있군'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손때가 묻고 정성이 어린 작품들이다. 자료로 찍은 사진속의 염소처럼 작가의 작업도 천진난만하다. 작품 앞에서 빙그레 웃음 짓지 않을 수 없다. 한선현의 작품에는 작가가 표현한 한 컷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역설적인 것. 유쾌한 것. 모순과 대립을 담은 어떤 것이 될지라도 심각함보다는 발랄한 유머가 나타나고 있다. 작업과정에 숨어 있을 진득한 노동으로 인한 건강함과 단순함의 가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주목하고자 했던 것은 그의 손길과 시선을 통해 전달되는 웃음과 따스함이다. 결코 아름답기만 하지 않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그 세상을 향해 싸움질하며 뛰어들건, 전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고자 명상의 시간을 갖건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가슴은 진정한 힘을 지닌 가슴이다. ● 웃을 수 없는 사람은 가슴에 돌을 얹어 놓은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생에 대한 두터운 신뢰가 있을 때, 하늘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을 것 같다. 모든 선한 일은 웃음으로 시작하여 웃음으로 완성되지 않을까.
백기영 ● 그리 길지는 않지만 백기영이 작업을 해 왔던 궤적을 살펴보면 줄기차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은 자유로운데 삶의 단계마다, 부딪치는 상황에 따라 그리고 구체적인 질문의 성격에 따라 작업의 방식이 유유하게 변화해 왔다는 것이다. ● 그것은 행위 예술의 형태로 때로는 기록으로 때로는 사진 찍기, 그림그리기... 이제는 여행이라는 위의 모든 것이 종합되어 있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작가는 작업실에 머물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떤 결과물로 집적해 보여주는 것보다는 마치 킁킁거리며 먹이를 찾아다니는 야생동물처럼 자신의 몸과 정신을 끊임없이 어떤 경험 속으로 이끌어 가는 것에 관심이 있어 보인다. 창의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무르익어 가는 것이 그의 예술의 핵심으로 보인다. ●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여정에서 얼마 전부터 작가가 구체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소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땅으로부터 오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땅과 그 위의 식물을 따라가다 보면 무리지은 사회와 역사의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 숨결은 그 땅의 사람들의 정신이며 혼이다. ● 작가는 독일 유학중에 파독 광부인 이현규씨가 자신의 정원에 10년 넘게 한국 식물을 가꾸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 온 사건에 주목하였다.(「디아스포라-정원&이주 프로젝트」) 이주민인 이현규씨가 무궁화를 비롯한 꽃나무, 그리고 상추 깻잎 등을 가꾸며 이방인으로서의 그리움과 고독을 치유 받는 이야기는 어떤 뭉클함을 전한다. 옮겨진 씨앗이 줄기와 꽃을 피우는 생명력에 작가는 자신의 뿌리와 정신을 찾을 수 있는 모티브를 발견한 것이리라.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의 땅을 더듬기 시작하였다. 김정희 선생의 국토에 대한 애정과 독특한 지방의 향토색을 냄새로 표현하려했던 최한기 선생의 혼을 뒤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살아간 두 선생의 자취를 작가는 자신의 질문을 가지고 역추적 한다. 대동여지도의 지도길을 따르는 작가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었다.(「생명의 땅 프로젝트」) ● 독일의 자그마한 땅뙈기에 한국의 씨앗을 뿌리고 관찰하는 과정, 한국의 산하를 발로 밟고 그곳의 흙을 수집하는 과정은 그 계획을 가슴에 품고 식물을 접하고 땅내음을 맡는 작가를 그려볼 때 의미 있게 다가온다. ● 그것은 자신을 잘 알고, 참된 자신으로 살고자하는 작가의 소망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기나긴 역사가 결코 인간 홀로 존재해 온 역사가 아니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박선기 ● 박선기 작품 제목의 대부분은 「Existence-존재」이다. 다 타버린 나무의 재, 숯이 매달려 이루어 낸 형태는 견고하지 않다. 고정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자유롭게 흩어졌다가도, 원하면 어떤 형태로 변화하거나 처음의 형태로 되돌아올 것 같다. ● 시커먼 숯은 원시적인 신앙을 떠올리게도 한다. 시적인 감수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신전의 기둥처럼 보이는 형태나 원, 사각형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의미하는 표식 같기도 하다. ● 숯이 가진 정화기능에 대해 언급하지 않더라도 공간 안에 툭툭 던져진 검은 덩어리들은 그 공간에 들어선 사람의 호흡을 가라앉게 하는 힘이 있다. 오감의 영역에 익숙해 진 사람에게 다양한 차원의 감각-최소 직관쯤으로 해두자-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시킨다. ● 박선기의 작품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면서 '시간과 공간', '건축과 미술', '자연과 문명' 등의 단어들을 생각해 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작품을 접하였을 때의 감흥을 적절히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후, 작가의 전시 프로필 중에 『땅으로부터의 기도』라는 제목의 전시명을 발견하였다. 작가 스스로 지은 제목이 아니지만 작품을 가장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어휘라고 생각되었다. ● '기도'란 인간 존재가 자신의 본성, 자신 안의 신(神)을 만나는 행위이다. 몸과 생각과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존재가 현재의 시, 공간을 넘어 퍼져나가는 것을 아는 것이다. 검은 숯 덩어리로 만들어진 형태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어떤 공간을 점유하기도 하고 그 공간을 뛰쳐나가 있기도 하는 것과 같다. ● 숯과 나일론줄과 공간이 있을 뿐이다. 마치, 인간의 삶을 물질의 현상이라고 여긴다면 그 뿐이듯이. 하지만 공간 속에 던져진 숯 덩어리 하나로 인해 그 여백이 가진 탄탄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듯이 자신이라는 하나의 개성적인 한 점을 중심으로 하여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신성(神性)을 지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장승애 ● '선생님, 천부경이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죠?''음..... 자기 자신을 알아라, 자기 자신으로 살아라 하는 말이지요'● 81개의 한문으로 이루어진 『천부경天符經』은 한국 전통사상에 지극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생소한 이름이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정리하여 지금까지 전해지는 『천부경天符經』은 한민족 사상의 밑바탕이 되는 신화이자 정신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81자는 얼핏 복잡한 수리공식의 나열 같지만 큰 뜻은 우주의 생성발전 원리와 그 속에 깃들인 사람과 자연의 도리를 밝힌 것이라 한다. ● 이 수수께끼 같은 『천부경天符經』을 작가는 뉴욕 아트스튜던트 리그에서 유학하던 중 만나게 되었다. 이후로 줄곧 작품과 삶을 통해 명상하는 화두가 되어 온 것이다. 오랜 미국 생활과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은 작가의 관심이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낯선 천부경이라는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 있건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하는 열망은 한국인인 작가에게 한국 사상의 근본을 찾게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작가가 그 사상 안에서 인간 역사 내적인 한계를 벗어나 하늘과 땅과 인간, 즉 존재에 대한 창조론적 관점의 사고방식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 81개의 글자는 캔버스 화면을 빼곡히 채우기도 하고 색면으로 이루어진 물감 뒤에 숨어 있기도 하다. 작가는 종교 경전 역할이 그러하듯이 천부경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 넘어 그 원리를 마음에 아로새기듯이 작업한다. ● 작가를 만나기 전 내가 『천부경天符經』에 관해 얼핏 알고 있던 것은 세상의 창조는 무(無)로 비롯 되었고, 비롯된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되어 이 세 가지의 근본이 같다는 정도였다. 쉽게 해석되지 되지 않는 어려운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민족의 창조론이라 할 수 있는 천.지.인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만물을 평등한 태도로 대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느낄 수는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차원이 깊어지길 명상하고, 작품을 보는 이에게도 공명이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작가는 말한다. ● 일시무시일석삼극무(一始無始一析三極無) / 진본천일일지일이인(盡本天一一地一二人) / 일삼일적십거무궤화(一三一積十鉅無無化) / 삼천이삼지이삼인이(三天二三地二三人二) / 삼대삼합육생칠팔구(三大三合六生七八九) / 운삼사성환오칠일묘(運三四成環五七一妙) / 연만왕만래용변부동(衍萬往萬來用變不動) / 본본심본태양앙명인(本本心本太陽昻明人) / 중천지일일종무종일(中天地一一終無終一) ● 하나가 시작하기를 무(無)에서 했고 비롯한 하나를 셋으로 나누니 무(無)가 근본이다. / 천(天)의 일(一)은 일(一)이요, 지(地)의 일(一)은 이(二)요, / 인(人)의 일은 삼(三)이라. 일이 쌓여서 십(十)이 된다. 이것이 그 무(無)를 다듬어서 형태를 빚은 것이니, / 삼천(三天)은 이(二)요, 삼지(三地)는 이(二)요, 삼인(三人)은 이(二)니, / 삼대(三大)가 삼합(三合)하여 육(六)이라. 칠과 팔과 구를 낳고. / 삼(三)을 돌리면 넷이 이루어져 다섯을 둘러쌈이라. 칠(七)과 일(一)이 묘하게 불어남이로다. / 만가지가 가고 오더라도 쓰임은 변하되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다. / 본심(本心)은 본래 태양의 밝음이요, / 사람 가운데 하늘과 땅이 하나이리니, 하나가 끝나고 무(無)도 끝나기를 하나에 한다. (『천부경天符經』) ■ 신혜영
Vol.20040804b | 7인의 파수꾼 ②_POSITIVE POWER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