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0707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동균_구자형_김인경_남윤경_남헌우 박영아_손정인_원미라_윤나리_최배혁
한서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37번지 수도빌딩 2층 Tel. 02_737_8275
서울시립대 환경조각학과 재학생 10명이 모였다. 미술을 통해 나와 세상을 바라보고 또 표현하기 시작한 이들의 작업은 그들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색깔을 보여준다. 미술은 하나의 프리즘이 되어 각 개인으로부터 이전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그 무언가를 드러내었고, 이 경험은 가슴 두근거리는 시작이 된다. ■ 한서갤러리
다소 차갑고 육중하게 보이는 이 작품은 생명을 키우는 '기계'이다. 날렵하고 정교한 내부의 부속은 중앙의 식물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한 장치고, 기계는 인간의 힘을 동력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 기계는 인간을 동력으로 하는 문명을 상징한다. 문명과 자연이 공존할 때 자연은 언제나 수단이었다. 문명이전 수렵 채집의 생활부터 그러했고,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그 속도는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자연은 더 이상 수단이 아니다. 이 육중한 기계가 존재하는 목적은 작고 여린 식물에게 물을 공급함으로서 생명의 토대를 보호하는 것이다. ■ 구자형
이것은 관계와 소통의 욕망이 선택적으로 일어난 결과다. 관계와 소통에의 욕망은 가히 본원적인 것이고, 선택은 오늘의 화두로 떠올랐다. 일회용이라 할 수 있는 신문광고가 순수 예술로, 순수예술은 다시 출판물의 형식으로 진열된다. 그들의 대화는 매체를 넘어서 이어진다. 매체 사이의 소통이자 또한 매체와 나와의 소통이다. 매력적인 이미지는 언제나 시선을 고정시키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노출되어있는 부분이 광고다. 이미지 홍수의 주범인 광고는 광범위하게 노출된 만큼 또 쉽게 잊혀진다. 새로운 이미지들이 그 자리를 밀고 들어올 뿐만 아니라, 그것의 가치가 복제된 수량에 반비례함을 주목하자. 대량 소비를 부추긴다는 비판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나는 그저 그 이미지와 마주 할 뿐이다. 수많은 광고 중에 내게 말을 걸어오는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작업의 시작이다. ■ 남윤경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연히라도 어떠한 작품을 눈을 통해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작품을 봤을 때, 우리는 그 작품을 중심적으로 작가의 의도나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만들 어 낸다. 또한, 입체성이 있는 작품을 통해서 여러 가지 시점에서 그 작품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고 또 다른 감상의 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한 가지 조건이 따른다. 정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규칙이며, 관객의 눈을 속이기 위한 장치이다. 처음 이것을 앞서 말한 그곳에 서서 바라보았을 때, 관객은 빨간네모 틀 속에 갇혀 떠 있는 흰색 물체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은 이상함을 느끼고 자리를 옮겨가면서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 때 사람들은 그것이 떠 있는 작품이 아닌, 세워져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이로써 관객은 눈속임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이 내가 원하는 의도이다. 빨간색, 그것은 다른 색에 비하여 유난히 눈에 잘 들어오는 색이다. 그 만큼 강하며 끌어당기는 힘이 대단하여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작품을 봤을 때,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은 아마 흰색의 탑이 아닌 빨간색 배경일 것이다. 배경을 빨간색으로 택한 이유는 작품을 중심으로 보는 시선을 흐트러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대게 작품의 주는 작가 자신이 만든 예술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는 일정하지만 불규칙적인 흰색의 탑이 아닌, 빨갛게 칠해진 배경이다. 흰색의 탑을 작품인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빨간 배경색으로 인하여 관객이 심한 혼란을 느끼도록 거짓말을 한 것이다. ■ 남헌우
나에게 있어 작업은 나를 반영하는 또 다른 '나'이다. 내가 가지고있는 생각, 내가 가지고있는 마음 혹은 내가 되고싶은 이상향 등 언제나 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늘 일관된 주제 속에서 보여주는 획일화 된 모습도 있을 수 있으나 나의 머리는 늘 다른 이야기를 생산해 낸다. 한 사물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발산하는 것이 바로 창조라는 작업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그런 나의 생각을 부분부분 정리해 보았다. 비록 일관성이나 내용에 통일감은 떨어지지만 나의 모습을 담고 있다. 내가 평소 생각하는 것, 말하고 싶은 것,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나의 인형을 통해 은유적 혹은 직접적으로 이야기 해보았다. 인형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은 나의 얘기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주었으면 하는 이유에서이다. 다소 엉뚱하고 진부한 얘기들 일 수 있으나 솔직하고 꾸밈없는 나의 모습이기에 살며시 보여준다. ■ 최배혁
2001년 9월 11일.. 9.11테러 사건이 발생한 뒤 미국은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짓고 그 후, 대량 살상무기를 제거함으로써 자국민 보호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대외명분을 내세워 2003년 3월 20일... 바그다드 등에 미사일 폭격을 가함으로써 전쟁을 개시하였다. 작전명은 이라크의 자유... 하지만 실질적인 목적인 이라크의 자유보다는 미국의 국익과 실리추구를 위했던 전쟁이었다. 미국, 영국군, 이라크군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과연 이라크 국민들에게 자유라는 희망은 있는 것일까? 결코 이 전쟁으로 이라크 국민들에게 억압됐던 자유를 주지 못했다. 미국이 점령한 후 폐허가 된 이라크 땅은 평화를 잃었고 희망을 잃었다. 하지만 전쟁이 그들에게 당장의 자유를 주진 못했지만 나는 그들이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있는 한 송이 꽃처럼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찾길 바라면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 (故)김선일님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의 값진 죽음이 부디 헛되지 않기를...... ■ 손정인
나는 인적 드문 도서관 구석에서 오래된 책 냄새 맡는 것을 좋아한다. 초를 재는 듯한 고요함에 휩싸여 나는 책과 함께 나만의 세계로 초대되어지는 것이다. 나에 대한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 이상 뿜어져 나올 생각이 메말라 갈 때, 나는 책 속에서 또 다른 나를 찾는다. 그 안에는 나를 살게 하는 힘이 있고, 내가 아직 살지 않은 나의 내일이 있으며, 지금을 사는 내 모습이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아 나를 찾는 모험을 시작한다. 누렇게 바래져 가는 그 흐름을 함께 하듯, 나도 책과 함께 시간의 늪으로 천천히 빠져들어 간다. ■ 원미라
내가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귀엽고 작은 녀석들... 내 나이와는 좀처럼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들이 나의 모습이고 나의 성향인 것이다. 그것들이 나의 모습인 것처럼 내가 그 안에 있는 것... ■ 김인경
수입 농산물이 스펀지에 물 스미듯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식탁을 점령하여 입맛을 길들이고 있고, 자유무역협정(FTA),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같은 낱말이 보통명사가 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지난 몇 년간 엄청나게 늘어난 신문지면 속에 농업, 농촌과 관련한 기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어쩌다 보도되는 농업관련 기사는 도시 소비자물가 상승의 주범이 된 듯한 느낌을 주는 농산물 가격, 농업협상에 반대하는 농민시위나 구제역 파동, 조류독감 등이었다. 지난 3월, 때아닌 폭설에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채소가 망가져 농민들이 허탈해하고 있을 때도, 언론에 더 중요한 것은 고속도로의 교통 대란이었다. 우리 농산물을 먹는 것이 애국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가격이 폭락하여 배추밭을 갈아엎는 농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굳이 먹고살기 어려웠던 옛이야기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래도 당신들만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건 어떨까. 이 땅을 지키고 먹을거리를 가꾸어온 우리 부모님들, 우리 농민들의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기사가 될 수는 없을까. 농업 상실의 이 시대에, 언론이 농촌과 농업에 좀더 관심과 배려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은, 나만의 욕심이 아닐 것이다. ■ 박영아
약육강식은 인간세계의 모습이다. 강자들은 약자들에게 무심결에 상처를 주고 약자들은 그로 인해 고통 받는다. 나 또한 나보다 강한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 상처들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채 가슴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무심코 나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같은 상처를 준다. 지금 우리는 수많은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그 경쟁 속에서 강자들에게 받은 상처들을 담고 살아간다. 나는 밴드를 통해 이러한 현대사회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처를 덮어주기만 하는 밴드로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담고 사는 사람들이 또, 무심코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처를 표현해 보았다. 이제는 뒤를 돌아 나로 인해 고통 받았을 그들을 보자. 들리지 않는가? 이 신음 소리가...... ■ 윤나리
이 작품은 숫자 '0'을 상징한다. 비어 있음,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낸다.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무한한 궤도를 갖고 있지만 무한하지 않음을 표면질감을 통해 표현하였다. 한쪽에 감아놓은 노끈조차 '0'의 궤도를 그리고 있다. 반복된 일상과 일상속에서의 조그만 변화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어떤 변화 자극이 있더라도, 결국 우리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다. 원래의 모습에는 아무것도 더해진 것 없는 그리고 빠진 것도 없는 '空'의 표현이다. ■ 강동균
Vol.20040707c | 아트 스펙트럼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