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0630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중간자(中間者)-세계를 매개하는 신의 눈 ● 드로잉의 표정들-자아의 이중반영 ● 우승란의 드로잉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는 세계에 대한 불안한 이해와 해석, 형태변형이 가미된 착종된 종의 진화, 의식의 과부하에서 오는 일상과 비일상의 간극 등이 표현되어 있다. 머리로부터 발까지 바코드처럼 잘려진 단면들은 아직 통제된 사고로 다가오지 않는 변형된 세계를 보여주는가 하면 늙은 산양이 의자에 우뚝 올라 있다가 어느새 제물처럼 머리와 몸통만 남아 있거나 화분 위에 핀 양의 머리로 표현되어 있다. 일상에 대한 유머러스한 치환의 표현일 수 있으나 유희적 구성이라고 보기엔 압축과 단순화 경쾌한 해석이 부재하다. 그보다는 불가해한 세계와 불온한 삶에 대한 해석으로 보는 편이 낳을 듯하다. 착종된 종의 변형은 거북의 껍질을 뒤집어쓴 새의 몸통과 같은 표현(새의 머리, 거북의 몸통, 깃털꼬리)에서 두드러지는데 미지의 낫선 대륙에서 발견한 진화의 단면이자 원시와 신성의 공간에서 대면한 생경함이다. 시원의식과 지향의 혼동에서 종의 변형과 같은 이미지들이 생성됐다고 말할 수 있다. 부러진 부리와 내장기관(새)의 표현이나 부풀어오른 물고기의 배와 꽉찬 위장(자신과잉)등은 안팎을 보려는 욕망과 그 한계를 표현하고 있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 부분사진은 일상과 비일상에서 오는 간극을 희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커피를 마시는 일상의 시선은 초월의 눈동자다. 자연속에 내재한 풍부한 야성의 이미지와 그 변형들, 내적인 의식의 지향에서 오는 초월의식 등이 상호 교차하면서 불안한 자아를 반영하고 있다.
불안한 존재의 초극-진리변형 ● 부리가 부러진 새는 드로잉의 연속선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삭제되어지는 몸통과 드러난 내장 표현에서 나타나듯 세속적 욕망이 좌절된(부러진 부리) 자아의 투영이다. 육체적 몸통은 지워져가고 있으며 실핏줄에 연결된 내장기관은 오그라들었다. 육신의 삶을 초극하고 싶은 자아의 욕망과 의식의 지향이 매개된 표현이다. 날기에는 이미 지쳐있고 상승하고픈 의지는 접을 수 없다. 의자 위에 올라선 산양은 불안한 현실을 딛고선 희생의 대리물이다. 현실은 확고하지 않으며 믿을 만 한 것이 못된다. 세상은 매순간 진리파지의 순간은 놓치고 있고 삶은 그 어떤 지혜도 주지 못한다. 통속적 삶의 불안한 인간실존을 딛고 희생의 대리물은 서있는 것이다. 늙은 산양은 신에 대한 예지의 상징이자 완벽한 세상에 대한 통로이다. 신의 예지와 인간의 불안한 실존에 서 있는 신탁의 매개는 불안하지만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뿜어내고 있는 중이다. 세계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화면의 표층에 투영되어있다. 육체적 야성의 세계를 변형시켜 동물이미지에 집중하는 것은 불안정한 인간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초극의 한 방법이지만 그 야성의 세계에 직접적으로 다가가거나 생생한 신성과 반인반수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지는 않다. 신성과 수성의 중간, 불안정한 은유로 남아있는 것이다.
투사하는 눈-신의 예정조화 ● 우승란의 드로잉에서 두개의 눈을 가진 새의 드로잉이 있다, 하나는 외부의 사물을 보는 것에 하나는 영혼을 탐색하는 내부의 눈이다. 이 영혼의 눈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서만 열려진다. 몸은 육체적 실존에 머물러 있으나 끊임없이 상승하고자 하는 의식의 지향은 종교적 성향이 낳은 결과이다. 신은 조화롭게 예정되어 있고 인간은 신의 섭리 안에서 존재이유를 찾아간다.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중간자로서 내, 외면을 탐색하는 투사하는 눈, 이것이 회화 속에서 작가가 지향하는 의식세계이다. 표층의 드로잉을 덮은 채 작품은 무수한 선들(노란 바탕 위의 붉은 실선, 청색과 흑백의 화면에서 보이는 무수한 선들)로 뒤덮여 있는데 이는 신의 실재에 연결된 무수한 끈들이다. 이 끈들은 시간의 흔적 속에 산화하고 부식해간 무수한 형체들의 의미를 부활시킨다. 의미는 읽혀지는 표층의 형체 뿐 만 아니라 읽혀지지 않는 세계의 의미를 상기시키고 작가의 관념을 부가한다.
신의 예정조화속에 투사하는 눈을 가진 중간자, 현재까지 작가가 보여주는 관념의 세계인 이 중간자는 생생한 야생의 에너지를 변형시켜 신의 섭리에 다가가고자 하고 있다. 변형이 생생한 힘을 갖기 위해서는 불안정한 인간실존을 인정하고 내외의 통합적인 힘을 작가 스스로가 가져야 할 것이다. ■ 류철하
Vol.20040629b | 우승란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