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0612_토요일_05:00pm
작가와의 만남_2004_0626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1:00am~06:00pm
한미사진미술관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20층 Tel. 02_418_1315
사진과 바느질, 사물의 소중함을 새기는 노동 ● 김영신의 작업을 바라보면서 문득 사진 찍는 일과 바느질하는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빛을 매개로 그림자를 인화지에 잡아내는 일과, 실과 바늘로 그림자를 꿰매는 일이 떠오르면서 그것이 서로 다르지 않은 공통의 언어와 노동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다. 바느질이란 실을 가지고 생각의 흐름을 한 가닥 한 가닥 남기는 일이고, 사진은 빛으로 사물의 모습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두 개의 작업이 사물과 이미지의 관계, 존재와 재현의 관계, 그리는 것과 그려진 것 사이에서 벌어지는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서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진은 예술이고, 바느질은 일상이고 노동이라 하더라도, 바느질이 사진이며, 일상이 예술이라는 생각을 갖는 일이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서두부터 웬 바느질인가 하겠지만, 사실 김영신의 이번 전시회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바느질이다. 여느 사진전과 달리 김영신은 자신이 직접 바느질 해 만든 배너와 발가락이 있는 스타킹을 설치하고, 이를 다시 사진 이미지로 담아 내는 방식으로 준비하였기 때문이다. 처음 작업이 배너와 스타킹의 바느질 공정이었다. 그것도 오래 전에 해둔 작업이다. 그 작업을 이번 개인전을 위해 다시 살려낸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다시 사진작업으로 재구성하였다. 그녀의 바느질 작업은 여러 각도에서, 여러 디테일에서 이미지가 잡히면서 새롭게 바느질이 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사진을 바느질하는 일, 바느질을 사진 찍는 일, 이런 공정이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셈이다.
그러나 그 바느질의 동기와 주제가 범상치 않다. 언뜻 보기에 아주 미니멀적인 기하 형태를 가지고 디자인하듯 배치한 것 같지만, 조금 천천히 보고,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꽃 모양 같은 문양으로 비쳐지는데, 사실 폭탄이 터지는 이미지다. 반달 모양의 이미지가 나란히 사각형으로 모여있어 마치 카드에 새겨진 여느 마크인 것 같지만, 그것은 군인들의 철모 이미지다. 둥그런 원이 네 개의 각을 가지고 배치되어 있지만, 그것은 폭탄이 터질 때 만들어지는 광경을 하이 앵글로 그려낸 것이다. 그리고는 폭탄이 여자 두 다리 사이로 박힌 충격적인 이미지가 보인다. 발가락이 있는 스타킹은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폭력의 잔해이자, 유품이며,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스타킹은 부드러운 천의 감각을 제공하지만, 사실은 뻣뻣해졌을 주검을 상상할 때의 섬뜩함을 말한다.
검은 천에 하얀 모양을 만들어낸 배너는 다시 디지털 포토로 만들어져 전시된다. 그것은 마치 그림자 놀이처럼, 언어 게임처럼 전쟁의 메타포를 말한다. 이미지들은 배너에서 사진 이미지로 옮겨와 카드놀이와 같은 맥락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그 카드놀이의 언어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마치 이미지가 말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럴까. 그래서 김영신은 한 뜸 한 뜸 바늘을 놀리듯, 전쟁의 맥락을 단죄한다. 바느질로 상처를 꼬매듯 전쟁의 그림자를 새겨간다. 그리고 그 바느질 작업을 사진의 복제기술을 통해 마치 전단을 돌리듯,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한다. 그래서 사진은 자신의 역할을 말한다. 기록이고, 전달이며, 발언이고, 이 모두를 공유하는 방식이 바로 사진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개인전은 일종의 사건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반추하며, 사진에 대해, 예술에 대해, 세계에 대해 정지작업을 시도하는 하나의 몸짓이다. 김영신은 어쩌면 전시장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듯 전시회를 하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살아온 삶의 길이와 깊이, 폭으로 자신의 전시회를 그 연장선상에서 구성한 듯하다. 바느질하는 마음으로,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의 평화를 새기는 마음으로, 모든 사물의 존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아주 오랜만에 전시회를 가졌지만, 그런 마음으로라면 사실 늘 전시회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단지 오늘은 사람들을 불러오는 특별한 날 일뿐... ■ 박신의
Vol.20040613b | 김영신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