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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611_금요일_06:00pm
갤러리 아트링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1번지 Tel. 02_738_0738
고자영의 식물원 경험 ● 식물원은 동물원, 미술관, 도서관 등과 함께 근대에 만들어진 공간이다. 식물을 수집, 분류, 관리하는 동시에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자연을 간접적으로 향유케 해주는 한편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장소에 대한 가상의 경험을 체험하게 해주는 곳이 식물원이다. 고자영은 자신이 즐겨 가는 식물원과 식물원의 퇴행된 형태인 지하철 역사나 건물로비, 카페 등에 설치된 인공의 정원에 주목, 그러한 장소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형상화, 가설화 했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식물원이란 장소에서 휴식과 안정을 제공받는다고 한다. 공간과 달리 장소란 안정과 휴식의 의미가 베어있다. 해서 그곳을 반복적으로 찾았다. 그러니까 식물원 가는 일은 세속의 인연을 잠시 접고 자신의 몸을 자연 안으로 부드럽게 밀어 넣는 일이다. 자연과 나의 몸이 동일한 유기적 생명체임을 확인하는 것인데 이는 자연에서 식물을 만나고 그 자태와 존재에서 생명의 이치를 일러 받고 해서 식물성의 사유로 자기 생의 의미를 반추하고자 했던 동양 현자들의 수행방식을 은연중 연상시킨다.
식물원을 들어서면 몸, 피부가 우선적으로 반응한다. 다소 어둑하고 후덥지근하며 축축하고 비릿한 식물의 살 내음이 덤비고 물소리가 들리며 이국의 식물이 지닌 형태나 색채, 질감 등 강렬한 시각적 경험 또한 무성하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빨려 들어갈 듯한 매혹적이고 신비한 모습으로 혹은 무미건조하고 지겨우면서도 더러 두렵고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의식을 집중해 방향성을 가진 긴장의 시선에 의해 그 대상들은 어떤 성격을 부여받는다. 그렇게 작가는 식물의 모습에서 식물의 존재성을 느끼고 그런 순간 문득 자아를 본다. 가만 들여다보면 침묵과 부동의 식물은 미세하게 자신의 존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존재다. 그러나 식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른 단위로 삶을 영위하기에 그런 활력이 미처 감지되지 못할 뿐이다. 작가는 비로소 식물의 생을 깨닫고 그러면서 그 같은 식물적 존재성을 닮고자 한다. 그런 욕망이 식물원을 다시 자기만의 감각으로 '환생'시켰다. 해서 작가는 그 장소에서 보낸 여러 시간에 걸친 경험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한 순간에 지각된 풍경이 아니라 여러 순간들이 축적되어 형성된 풍경에 대한 지각이다. 그러니까 시간의 누적으로 부풀어오른 경험이다. 시간은 한 점이라기 보다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있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보는 일, 연상하는 일은 늘 과거의 시각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식물원에서 보낸 여러 시간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감각들, 그로 인해 생겨난 감정들, 식물을 보며 연상된 다양한 이미지를 간직하고 이를 통해 한 장소가 심어준 직접적이고 친밀한 경험의 형상화가 그녀의 작업인 셈이다. 그래서 작가는 식물원에서 접한 광경, 어떤 대상을 보는 과정에 개입되는 과거에서 오는 기억들, 그 장소 특유의 소리와 냄새, 피부의 감각, 그 장소에서의 동선을 기억하는 운동 지각의 감각, 스스로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여러 생각들, 그런 생각들의 충돌과 갈등에 의해 야기되는 복잡한 감정들, 그리고 자신의 욕구에 상응하는 어떤 대상을 탐색하고 관찰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발견 등이 뒤섞인 체험을 대상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다층적인 시각체험을 가시화하기 위해 선, 색, 형태, 질감, 공간, 화면 구성이 섬세하게 고려되며 사진, 드로잉, 판화 등의 여러 매체가 동원되며 또한 병풍프레임, 아크릴 틀, 콜라주 기법 등도 뒤따른다.
작가는 식물원에 대한 그 같은 시각적 경험, 몸으로 흩어나가고 체득한 그 기억을 온전히 형상화하기 위한 방법론과 장치를 고안했다. 다양한 시각의 풍경들을 조립하여 그린 이른바 산수화적인 시선과 소요의 체험을 병풍화 한 것이다. 동시에 호크니의 파노라마적 풍경그림, 즉 관찰자의 움직임에 따라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시간과 밀접하게 관계된 공간의 변화도 적극적으로 차용된다. 이 움직이는 초점은 관자로 하여금 화가의 시간을 체험하게 하려는 배려다. 즉 관자로 하여금 시간 속에서 공간을 체험하게 하는 것인데 이는 다름 아닌 중국 산수화의 시공간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가의 그림 또한 중국산수화의 영향으로 횡적으로 긴 화면 구도를 채택하면서 여러 시점을 섞어내고 있다. 식물원내의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위로 올려다본 시선,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체험, 또는 한 곳에 오래 서서 바라본 풍경 등이 한 화면 속에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일점투시법에서 빠져나와 삼점투시로 나간다. 중국의 산수화가들은 산 속에서 몇 년간을 소요한 후 그 체험의 축적을 평정한 마음 상태에서 재구성하여 산수화를 그렸다고 한다. 따라서 산수화는 망막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그림이 아니라 관자의 정신적 활력을 통해 완성된다. 자연을 관조함으로써 얻어진 체험을 토대로 그려 감상자로 하여금 그 공간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체득하게 하려는 배려로 이루어진 것이 산수화며 따라서 프레임은 병풍, 두루마리 등으로 전개된다. 병풍은 그림을 그리는 화면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3차원의 공간을 차지하고 나누는 역할 또한 한다. 외부로부터 오는 불필요한 시선을 차단해주는 한편 은둔감과 안정감을 주는 병풍은 공간을 장소로 전환시키기에 병풍에 둘러싸인 사람은 그 장소의 주인이 된다. 온전하게 풍경을 자신의 것으로 집중해서 경험하고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 작가가 그 같은 병풍형식을 차용하고 있는 것은 식물원이란 공간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공간에 보는 이들을 초대하고 그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이다. 동시에 관객들이 보는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그들의 지각방식 속에서 그 풍경을 재구성하며 즐겨 가기를 바라는 배려도 깃들어 있다. 작가는 식물원을 여러 번 방문해서 그곳의 다양한 양상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체험을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은 한 순간에 지각된 풍경이다. 다양한 시점에서 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카메라를 휙 스치듯이 찍어내는가 하면 앵글을 달리해서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는다든지 위를 올려다보고 찍는다든지 하면서 다르게 찍기도 하고 '줌 인'과 '줌 아웃'에 의해 조절하기도 한다. 사진의 메커니즘에 의해 그 기록은 변질된다. 사진을 참고로 하되 형태와 색을 변형시켰다. 이렇게 사진을 일차 자료로 삼은 후 이를 화면에 드로잉 한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변형이 가해진다. 사진에 충실하고자 이를 바탕으로 해서 그리지만 그리는 과정에서 색연필, 파스텔, 아크릴 등의 재료를 통해서 사진의 매끈한 느낌은 사라지고 얇지만 여러 층으로 안료들이 쌓여 두께를 이룬다. 사진과 드로잉(회화)의 시간은 다르다. 사진에서 시간은 균일하지만 그림 안에 시간은 균일하지 않다.
이런 과정을 통해 화면 안에 만들어진 식물원, 정원풍경은 후에 다시 볼 때 고요함과 마음의 안정을 제공해주는 곳, 기억과 추억을 간직한 곳, 사색하며 소요할 수 있는 자신만의 장소가 된다. 식물원에서의 경험을 연장시켜주는 동시에 다시 정신적 활력을 통해 환생시키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림 안의 공간은 실제 식물원이라는 장소에 대한 체험을 재구성 해낸 풍경이며 그 당시의 작가의 심리적인 상황이 드러나는 심리적 풍경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작업은 연작형식을 띈다. 동일한 장면을 다른 색으로, 다른 재료로 표현하여 자신의 심리적 상황에 따라 주변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 경험이 달라질 수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러니까 공간을 지각한다는 것은 심리의 정서적 측면이 수시로 개입하며 그렇게 지각된 공간을 그려낼 때에는 화면을 하나의 환영으로 만들어 내면서 그 속으로 스스로 몰입시키고자 한다. 여기서 판화는 깊이 있는 공간감, 환영적인 화면을 만드는데 효과적이다. 석판화 재료인 해먹을 사용한 부분 등은 판화의 평면적인 효과를 내는 부분이며 리도 펜슬과 리도 크레용을 사용한 부분은 깊이 있는 공간을 표현하고자 한 부분이며 이 두 부분을 연결하기 위해 모노타입의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콜라주화 된다. 오리기 작업과 손으로 그린 부분들, 사진을 약간 변형시켜 컴퓨터 프린트 한 부분들을 하나의 화면에 병치시킨다. 전통 산수화를 통해 공간에 대한 지각의 형상화를 탐구하는 한편 판화와 드로잉, 사진의 복합적인 연계와 혼합기법으로 인한 확장, 설치화 되면서 공간 안에 가설되는 병풍형식의 판화 등은 흥미롭다. 회화와 판화, 사진 그리고 보는 것과 감각되는 것, 공간과 장소, 개인의 심리와 경험 등등에 관한 개념적이며 논리적인 이 작업은 시각이미지의 폭넓고 깊이 있는 인식과 대안으로 자리한다. 그것은 또한 한 개인의 몸이 반응하는 세계에 대한 진실한 경험의 형상화에 대한 지난한 모색이기도 하다. ■ 박영택
Vol.20040611b | 고자영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