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무게

주동진 조각展   2004_0602 ▶ 2004_0611

주동진_존재의 무게Ⅰ_혼합재료_100×40×30cm_2004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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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602_수요일_05:00pm

금산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35_6317

존재의 무게 ● 2001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의 개인전에서 '생태계의 환기를 위한 복제물'을 주제로 삼아 지구라는 자연환경과 그 속에서 존재하는 생명체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던 주동진이 이번에는 '존재의 무게'라는 화두로 제작된 그간의 작업을 내놓았다. 작가가 말하는 '존재의 무게'란 특수한 환경을 살아가는 생명체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자 그것의 존재가치에 대한 성찰이라는 점에서 생태를 문제시했던 이전의 작업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 전시회에서는 '저울'이라는 매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주제의식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다양한 종류의 저울과 그 부속물들을 예술형식으로 전환시킴으로서 (자연 혹은 사회적) 환경의 비가시적 법칙성에 의해 지배되거나 대응하고 있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려 한다. 또한 거북의 껍질을 거대한 원주처럼 쌓아놓은 갑골탑이나 파편화된 신체의 단면들을 FRP와 철조주물로 제작해 바닥에 늘어놓았던 이전의 작업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사진작업과 오브제 설치형식을 도입함으로서 표현방법의 범주를 한 단계 확장시켜 놓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주동진_존재의 무게Ⅰ_혼합재료_100×40×30cm_2004
주동진_존재의 무게Ⅱ_혼합재료_10×15×17cm_2004

이번 전시회에서 주동진이 저울질하려는 대상은 인간이다. 작가가 설정한 존재의 무게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신과 이웃을 포함한 현세적 인간의 무게를 의미한다. 그러나 작가가 저울질하고자 하는 것은 물질로서 육체의 무게가 아니라 존재성의 무게이자 영혼의 무게로 규정될 수 있다. 이러한 가설을 통해 그의 작품에서 발산되는 의미들은 개체적 존재로서 인간, 생명을 담는 그릇으로서 인간, 방황하고 갈등하는 주체로서 인간 등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시각을 달리하면 집단적 군상 이미지나 아프리카 대륙을 연상케 하는 두개골 형상 등의 이미지로 설명됨으로서 역사와 문명의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을 갖게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본다면 향후 주동진의 저울 작업에 사용될 추의 이미지는 현대의 인간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욕망, 권력, 마약, 섹스, 물질, 폭력, 전쟁, 인종이라는 다양한 이름의 알레고리로 확대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주동진_가치의 균형_혼합재료, 설치_350×750×250cm_2004
주동진_균형Ⅱ_혼합재료_16×170×16cm_2004_부분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닥에 설치된 대형의 두개골 브론즈 작품인 「존재」를 비롯하여 골동품 양팔저울 작업인 「존재의 무게」 그리고 공간에 매달린 다양한 크기의 막대저울 「가치의 균형」과 바닥과 벽면에 설치된 다양한 크기의 추 「균형」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벽면에 걸린 네 개의 사진작업 「나를 찾아서」 등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두개골 브론즈는 10cm 가량의 두께로 통나무를 절단해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프리카 대륙의 형태를 연상케 하며 이러한 상상적 이미지는 전시장 벽면에 부착한 평면적 사진작업과 연계성을 만들어 놓고 있다. 한편, 양팔저울은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것으로서 작가는 양측 끝에 매달린 접시 안에 일련의 소형 인물군상을 채워 놓았다. 이 작업이 보는 이로 하여금 빈부 혹은 선과 악 등의 대립적 집단과 그 무게를 저울질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균형과 조화를 의미하는 양팔저울이 지닌 원래 기능이 아직도 보는 이의 생각에 자리하면서도 그것을 시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개인전에 중심이 되는 설치물은 전시실 공간에 매달린 다양한 크기의 막대저울들이라 할 수 있다. 목재로 정교하게 제작된 막대저울의 집합체는 결국 시대를 진단하는 측량계로서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다양한 크기의 추와 더불어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종합적 의미를 생산해 내고 있다. 작가는 이번 작품전에 추의 형상을 브론즈와 목재 등으로 확대해 제작했는데 때로는 몸체의 일부를 수직으로 절단해 광택을 내거나, 절단된 단면에 소형 인물군상을 설치함으로서 추의 기능을 색다른 영역으로 전치시키고 있다. 결국 분동추의 이미지는 인간을 진단하는 거대한 힘, 혹은 존재를 판단하는 불가항력 적인 법칙성을 암시적으로 담아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주동진_존재_브론즈_110×150×12cm, 70×120×15cm, 95×120×22cm_2004
주동진_나를 찾아서_컬러인화_120×90cm×4_2004

마지막으로 살펴볼 작업은 벽면에 걸린 네 개의 사진작업인데 이는 작가의 신체 일부를 사진으로 접사해 프린팅 한 것이다. 「나를 찾아서」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작업을 보면서 파편화된 신체를 관찰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그 이미지가 마치 표본실의 포르말린 용액에 담겨있는 육질처럼 표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주동진의 이번 개인전은 다양한 매체와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저울을 주제로 삼음으로서 작품들 사이에는 일관된 메시지가 흐르고 있다. 설치작업의 특성이 그러하듯 오브제들은 그것이 놓이는 환경이나 오브제 사이에 맺어지는 상호관계에 따라 각기 다양한 의미들을 생산해 내게 된다. 마치 수술대 위에서 우산과 재봉틀이 만나게 될 때 그 의미들이 시적 허용의 범주 안에서 변질되듯이 저울과 추가 청동이나 사진으로 제작된 신체 이미지의 파편이나 소형의 인물 군상들과 어우러질 때 거기에서 발생하는 의미는 때로는 상징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세계와 이어지게 된다. 물론 관점에 따라 거기에는 사회적이거나 철학적 담론들이 자리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주동진_존재의 무게展_2004

우리가 주동진의 작업을 통해 접하게 되는 메시지들은 사실 우리들 스스로가 꾸며낸 어떤 의미들이며 그것의 내용은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겪었던 경험과 지식 혹은 취향과 성격 등에 의해 차별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제시된 작품을 통해 작가와의 연결고리가 맺어지는 것은 작가의 작업이 동시대의 보편적 문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술에 기대를 걸게 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우리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와 사회 그리고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재발견해 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주동진의 작업은 이렇듯 현실적 자아를 반영하는 현대미술의 기능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번 개인전을 통해 저울질하려는 존재의 무게가 세상을 살아가는 집단이나 개체에 대한 성찰이며, 그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필자가 그의 예술에 거는 기대는 크다. 이제 앞으로 할 일은 작가가 설정한 예술관을 담아내는 독자적인 예술형식을 좀더 확장하고 이를 통한 소통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 김영호

Vol.20040605c | 주동진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