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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섬들 파티_2004_0612_토요일_07:00pm
창동미술스튜디오 서울 도봉구 창동 601-07번지 Tel. 02_995_3720
행운의 섬들 ●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작가-김정연, 이소영, 손정은, 배윤주, 김시연-은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자신의 내면 세계와 마주하면서 홀로 외롭게 자기 이야기들을 꾸준히풀어온 작가들이다. 동문이라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이 다섯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함께 전시를 하게 되었고, 나는 우연한 기회에 참여작가이면서 동시에 이 전시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사실 이 다섯 작가는 어쩌면 본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애초부터 어떠한 목적을 가진 전시에 참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전시는 동문 조각회를 통해 기획되었다) 이 시대에, 그것도 젊은 작가들로서 아직도 학연에 의한 인맥구조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작가란 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가치관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 때문에 나는 홀로 움직이던 습성을 뒤로하고 모교에 대한 일종의 책임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 행사의 의미와 여기 모인 사람들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작가는 모두 여성 작가들이면서 그리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작가들이다. 이 중 나를 제외한 네 명은 결혼을 했으며 일부는 아이까지 있고, 직장, 아내, 어머니 그리고 작가라는 여러 가지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여성작가라는 특수성 안에서 보여지는 사회적 정치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이 다섯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점은 그들의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향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각자가 고립된 "섬" 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 다섯 작가들은 우연히 혹은 운명처럼 예술가로서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인생의 여러 가지 다른 경험들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꿈을 갖고 작가의 길을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사실 이들 중 어떤 사람은 뉴욕에서 나름대로 잘 나가던 젊은 작가였다는 사실을 발판으로 하여 소위 말해 '유학파 출신 스타작가' 대열에 일찌감치 적당히 합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치열하게 고민하는 대신, 잘 나가는 남편을 두고 적당히 작업하면서 화려하고 근사한 여류작가 행세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미 소위 제도권이라고 불리는 사회에 속해 있으며, 원한다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입지를 다져 나가기를 꿈꾸어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반대로 이 다섯 사람들 중 어떤 누구라도 자신들을 알아주지 않는 미술계를 원망하며 자괴감에 빠져 작가로서의 길을 중도 하차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 모인 다섯 명의 작가는 그러한 것들이 1차적인 목표가 되거나 자신들의 예술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없음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고지식하다고 할 만큼 예술에 대해 고전적인 가치를 갖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과 유혹에 부딪치면서도 끝까지 자신들의 태도와 고집을 꺾지 않는 종류의 사람들을 지탱해주는 힘이란 무엇일까… 아무도 돌아봐 주는 사람이 없이 고립되어 작업을 해 나가면서 끝끝내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이것을 예술에 대한 사랑,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 자체가 어쩌면 무의미하고 모호해진 이 시대에,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여 자신이 믿는 아름다움을 찾으려 노력하고, 그 아름다움이 주는 기쁨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어서, 다른 현실적인 어떤 어려움이나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세계를 지켜나가려고 노력하는 것... 외롭지만 타인들과 얽힌다는 것은 자신의 은밀한 내면세계를 깨뜨리는 것임을 알기에 스스로 고독한 생활을 자청하고, 유명해지고 싶지만 유명세란 자유와 비밀스러운 삶을 방해하는 것 또한 알기에 그 유혹을 뿌리치려 노력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내면으로만 침잠하여 자기만족과 환상에 빠지게 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 그것은 그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이자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같은 것이었다. ● 예기치 않게 우연히 모인 이 다섯 명의 작가들은 이번 전시에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나름의 목소리들로 비밀스러운 삶이 주는 기쁨과, 자신들의 내면세계와 아름다움의 가치와 사랑에 대하여 작품으로 그려내고 있다.
김정연의 세탁물 찌꺼기로 그려낸 드로잉-회화작품 「시간의 흐름」은 '부드러운 집' 연작 중의 일부이다. 작가는 자신을 구성하는 소우주를 자신의 가족공동체로 보았다. 그녀는 결혼을 통해 이룬 가족들을 보며 참된 사랑의 의미와 사람됨을 배워나갔다고 한다. 그녀의 「시간의 흐름」은 작가 자신과 그녀의 가족들의 옷가지들을 세탁하면서 세탁기에 붙어있던 찌꺼기들을 1년 동안 모으고 매일의 일기처럼 드로잉 한 것이다. 그녀가 가족의 세탁물에서 나온 찌꺼기를 예술작품의 주재료로 삼았다는 것은 가족과 그녀의 일상에 대한 사랑과 만족감의 표현이며, 작가로서의 강한 자아가 가족 구성원 안으로 녹아들면서 한층 더 강하고 긍정적인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변화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이와는 대조적으로 김시연의 세 개의 작품 「Greeting 1」, 「Greeting 2」, 「끝없는 문」은 작가의 유학시절 동안 타인들과 공존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자신의 내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던 경험을 보여준다. 그녀는 외부로 향해있는 자아와 내부로 향해있는 자아, 그 두 가지 세계의 갈등 속에서 늘 화해의 만남을 모색하고자 했다.('Greeting 1', 비디오 설치) 그러나 외부세계와 섞이지 못하는 두려움과 강박관념은 그녀를 불면증에 시달리게 했고, 꿈 속으로 도피하기 위해 자신을 위한 일종의 장난감-향기나는 장치를 붙인 배게, 혹은 졸음이 쏟아지게 만드는 오르골 등-을 만들게 된다.('Greeting 2', 사진) 결국 어떠한 화해의 노력도, 어떠한 도피도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내향적인 자아를 마주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기만의 세계를 찾게 된다.('끝없는 문', 종이에 싸인펜 드로잉) ● 이소영의 「만남」이라는 작품은 약 40일간 같은 장소의 나무를 촬영한 것으로, 우연히 발견된 사물로서의 대상이 시간의 축적과 만남의 과정을 통해 작가에게 분명한 존재로 변화하여 소통의 관계를 가지게 되는 과정을 이미지와 텍스트의 기록으로 보여준다.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어느날 불현듯이 떠오른 나무는 그 이전까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떠오름의 순간부터 그의 존재는 증명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관계 안으로 들어왔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구절처럼 작가는 그렇게 어떤 순간에 불현듯이 일어나는 존재의 느낌. 그 순간 순간이 모두 각각의 만남임을 보여주고 있다.
배윤주의 「연금술사를 위하여」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정신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작가 자신의 가치관과 자신감이 근본적으로 성숙해졌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연금술사란 납을 금으로 만드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내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작업을 계속한다는 것이 납을 금으로 만들고자 하는 꿈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업을 하는 시간들 속에서 꿈을 꾼다. 연금술이 정신적 고행을 통한 하나의 수련과정이듯이, 나에게 있어서도 작업이란 알 수 없는 어떤 정신세계로 향해 떠나는 여행과 같다. 그리고 내가 만든 작품을 보면서 그 작품의 존재를 감지해 주는 사람은 그 자신도 새로운 연금술의 세계로 떠나게 될 것이다" 즉 그녀에게 「연금술사를 위하여」는 작가 자신과, 그녀와 함께 정신적 여행을 떠날 관객을 향한 염원과도 같은 것이다. ● 손정은의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은 세이머스 히니의 시집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지난 해 발표한 「복락원-Paradise Regained」의 세 가지 연작 중 한가지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아름다움이 죽어버린 이 세계 속에서 다시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예술가의 힘과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세이머스 히니의 시집에 나온 시어들을 모두 해체하여 공간을 가득 채운 이 작품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시인은 어느 자연주의자가 죽었다 하고, 나는 시가 죽었다고 말한다. 시란 아름다움의 메타포이다. 싸늘하게 죽어버린 나의 예술 속에서 해체되어 버린 위대한 시인의 시어들은 죽어 없어지지 않고 새로운 부활을 꿈꾸며 공간 속을 날아다닌다. 이 시어들은 나의 가슴속에 그리고 관람객들의 가슴속에 깃털처럼 박혀 각자에게 의미 있는 새로운 은밀함의 언어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인간이 그들의 욕망에 의하여 미처 아직 파괴해버리지 못한 아름다움의 비밀이 있다"
행운의 섬들... "행운의 섬들" 이란 장 그르니에의 '섬'에 나오는 소제목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나는 이번 전시를 진행해 나가면서 여기 모인 다섯 사람은 각각이 고립되어 있는 외로운 섬과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운의 섬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행운의 섬들이다. 그들의 작품을 하나씩 바라보면서 어쩌면 외부적인 유명세나 화려함은 없을지 몰라도 각자가 나름대로 예술이라는 세계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아름다움과 사랑과 내향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해 가는 드물게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 전시를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여기 모인 다섯 작가는 각각 고립된 다섯 개의 섬으로 살아나가다가 우연히 한자리에 모여, 지금까지 그래도 꿋꿋이 예술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고 버텨온 자신들을 celebrating하고, 작품을 통하여 자신들이 가꾸어온 내면세계를 내어 보임으로서 타인들과 은밀한 소통을 해보고자 하는 축제와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 서두에서 잠깐 언급하였듯이 이 전시가 마련된 것은 애초에 학연과 결부된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전시는 결국 외롭게 작업하던 작가들이 자신 밖으로 잠시 외출하여 그들의 내면세계를 조용히 내보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는 '목적 없는 여행' 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유명세나 권력을 원했던 것이었다면, 혹은 소위 말해서 "뜬 작가"들이 되고 싶었더라면 그들은 이미 예전에 그러한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섬"으로서 살아나간다는 것이 행운임을 알게 된 이들은 뭉치며 힘을 과시하여 예술가가 아닌 정치가로 변신해 가는 오류를 범하거나, 혹은 미술계의 쏟아지는 유행과 담론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일부 스타일에 맞게 변조시켜 스타 작가로서의 짧은 화려함을 누리다가 결국은 퇴물이 되어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여기 다섯 개의 행운의 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이 전시를 보러 오게 될 당신들도, 이 전시를 통하여 우리의 은밀한 내면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면, 당신들은 또 다른 행운의 섬들이 될 것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아름다움을 꿈꾸고 아름다움의 순간들을 향해 어린아이처럼 뛰어 들어가 잠시나마 그 순간을 향유할 수 있다면, 당신들 또한 여기 다섯 명의 작가들처럼 예술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행운의 섬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섬"으로 살아나간다는 것이,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일임을 느끼게 된다면, 우리는 진정 행운의 섬들이 될 것이다. 행운의 섬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 우리 자신을 celebrating 하며... ■ 손정은
Vol.20040605b | 행운의 섬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