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fㆍLife

유진영 조각展   2004_0602 ▶ 2004_0608

유진영_LeafㆍLifeⅠ_PET 필름 1800m, 철파이프_122×605×140cm_2003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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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602_수요일_06:00pm

노암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3층 Tel. 02_720_2235

식물의 몸, 인간의 몸 ● 모든 식물이 혀처럼 매달고, 손처럼 드리운 나뭇잎을 하나씩 뜯어다가 그것을 화면 삼아 모종의 이미지를 추적해나간 놀이를 기억해본다. 우리는 곧잘 아카시아 잎을 따다 손가락으로 튕기는 놀이를 했다. 그래서 가느다란 선 하나로 남을 때까지, 그 선을 남기기 위해, 하나의 선을 긋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가하면 뜨거운 여름날 운동장 어느 한 구석에서 돋보기로 나뭇잎의 한 부위를 태워나갔던 기억도 난다. 그런가하면 가을날 단풍이 짙게 물든 잎, 모양과 색깔이 마음에 꼭 드는 잎사귀를 하나씩 모아 책갈피에 끼워놓는 일 역시 나뭇잎의 변화를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이를 간직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한때의 시간의 절정을 간직한 낙엽이 앨범의 사진 마냥 순간을 저장한 이미지가 된 것이다. 이렇듯 넓적하고 얇은 나뭇잎이 이내 그림이 되고 음각의 형상으로, 부재 하는 구멍이 이미지가 되어 부풀어오르는 체험은 원초적인 유희다.

유진영_LeafㆍLifeⅠ_PET 필름 1800m, 철파이프_122×605×140cm_2003

유진영은 그런 놀이, 유희를 좀 더 확장시켰다. 그녀는 나뭇잎을 구해 다가 그 표면을 칼로 투각을 해서 사람의 형상을 오려냈다. 조심스레 연약한 식물의 피부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꽃이 껍질인 초록의 잎사귀를 화면 삼아 다양한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마치 잎의 표면에 창을 내듯이, 숨통을 틔워주듯 그렇게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이 그림이 되었다. 나뭇잎의 표면에 이미지가 숨어있어 이를 은밀히 발견하는 즐거움도 준다. 사실 이 잎사귀는 줄기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이내 시들고 말라 소멸될 운명을 가진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잎사귀를 재료로 삼아, 화면을 만들어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자 한다. 사람의 얼굴이나 몸을 그 피부에 새겨 넣어 새삼 잎사귀는 또 다른 존재로 변성을 겪는다. 온도나 습도, 광선에 반응하면서, 대기 속에서 갖가지 변화를 겪어나갈 수밖에 없는 이 잎사귀, 화면과 그렇게 또한 시간의 지배 아래 늙고 사라질 인간의 운명이 겹쳐지는 것이다. 동시에 나뭇잎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사람의 형상을 보면서 식물, 잎사귀의 생태를 확인하는 시각적 즐거움도 만난다.

유진영_LeafㆍLifeⅡ_PC 반투명 필름, 철파이프_220×543×186cm_2004
유진영_LeafㆍLifeⅡ_PC 반투명 필름, 철파이프_220×543×186cm_2004

그녀의 또 다른 작업은 얇은 비닐(PET비닐)의 피부를 칼로 자르고 오려내면서 잎사귀형상과 잎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비닐은 열에도 강하고 변화가 적으며 팽팽한 표면을 만들어 보인다. 300여장 이상이나 되는 비닐을 겹쳐 올려놓아 만든 사람의 형상은 잎사귀로 이루어졌다. 엄청난 시간의 투여, 고된 노동에 의해 이루어진 작업이다. 작가는 얇은 비닐의 몸을 자르고 오려내면서 식물이 몸, 여자의 몸을 다시 성형해간다. 투각 된 비닐의 피부 사이사이로 가느다란 잎맥이 핏줄처럼 비쳐진다. ● 길게 늘어난 침대 위에 '비닐=사람의 형상=잎사귀'가 올려져있고 그 바닥에는 비닐을 투각 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잔해(비닐조각)가 수북히 쌓여있다. 그런가하면 나뭇잎의 혈맥만을 남겨둔 형상으로 이뤄진 비닐이 방을 만들고 그 하단에도 역시 오려낸 비닐조각들이 놓여있다. 사람이 그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면 밖에 있는 이들의 눈에는 사람의 몸과 잎맥이 하나로 겹쳐 보여진다. 그 둘은 분리되지 않고 동일한 존재로 다가온다.

유진영_나뭇잎에서 사람을 만나다_마른 나뭇잎에 칼로 투각_2002
유진영_나뭇잎에서 사람을 만나다_마른 나뭇잎에 칼로 투각_2002

비닐을 오려낸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올라오면서 이룬 생명은 혈관이 되고 잎맥이 되고 여자의 몸이 되었다. 여기서 은연중 에코페미니즘적 주제의식을 만난다. 생명을 가질 수 있는 소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몸, 자신을 복제해내는 여성의 능력과 식물이 그렇게 섞여 올라온다. 자연과 사람은 동일하다는 이 발상, 특히 식물성의 세계와 여성성의 세계를 동질의 것으로 파악되는 인식은 주목된다. 여성의 월경, 임산, 출산, 수유 등의 생명체험은 여성 스스로의 삶을 자연의 과정으로 인식하도록 하고 여성 스스로를 자연과 동일시하도록 한다. 여성과 자연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은 여성들에게 자연과 생명에 대한 특별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여성의 일은 기본적으로 생명을 보살피고 생명을 유지시키는 데 관계한다. 따라서 여성의 몸은 대지, 식물과 유사한 몸이다. 그래서 작가는 여성의 몸과 식물, 잎사귀를 그렇게 겹쳐놓아 '식물 여자 상'을 형상화했다. ● 한편 식물에서 사람의 몸을 읽고 연상해내는 상상의 놀이는 하나의 이미지 안에 들어있는 무한한 조형적 잠재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고 이는 상사에 입각한 전사에 해당한다. 그런가하면 식물이 사람으로 형태적 변화를 이루는 변신의 흥미를 보여준다. 변신은 두 개의 다른 이미지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특수한 기제를 말한다. 이 변신의 기능은 근원적인 꿈을 실현시키는 주술기능을 닮았다. 꿈꾸는 대상을 형상화하는 변신은 일종의 의식의 전환이다. ● 그런가하면 주변에 흔하게 접하는 대상을 부정하고 바꾸어 봄으로 인해 그 대상의 존재성을 새롭게 느껴보고자 하는 것도 같다. 존재에 대한 기존의 사유를 흔들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증식되어온 관념의 무게를 털어 내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는 시적 은유로 대상에 딴지를 걸면서 몽상을 꿈꾸는 일이자 순수한 눈을 지니고 싶다는 열망이기도 하다. ■ 박영택

Vol.20040603a | 유진영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