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재미

최동열 회화展   2004_0602 ▶ 2004_0616

최동열_꽃과 산수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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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602_수요일_05:00pm

선 아트센터ㆍ선화랑 서울 종로구 인사동 184번지 Tel. 02_734_5839

최동열의 미술입문에 있어 중요한 점 가운데 하나는 그가 통상적인 미술하교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말은 한 작가의 선장배경에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득권을 선점(先点)하고 보수적인 기존체계에의 무조건 백기항복을 요구하는 상당수의 학교체계와 무관했다 라는 점에 나는 매우 그를 주목하고 있다. 최동열은 그만큼 신축성 있는 조형의식과 사고체게의 깊이를 가지고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 과 직접적으로 대결하고자 했다. 그는 결코 길 잘 들여진 가축과 같은 숙달된 '기술' 만을 앞세우는 예술가형이 아님도 이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독학의 자수성가형은 그만큼 많은 역경이 있다. 하지만 일단 기본적인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면 정규교육과정 이수자 보다 설득력 있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도 된다.

최동열_누드와 산수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04
최동열_꽃과 산수_캔버스에 유채_50.5×40.5cm_2002

여기서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작가로서 최동열의 생활방식이다. 그는 대부분의 작가들처럼 한두 군데에 정착하여 글자 그대로 안주(安住)를 거부해 왔다는 사실이다. 보헤미안 같은 그의 생활방식은 철저하게 주변의 주거환경을 바꿔가면서 오로지 작품제작에만 열중했다. 예컨대 그는 한 지역에서 한동안 살다가 새로운 변화가 요구되면 타지방으로 서슴지 않고 이동하는 용기와 실천력이 있었다. 예컨대 그가 멕시코에서 살 때는 본거지의 미국 내에 집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 지역에 특정 거주지가 있은 다음 다른 지역으로 마치 장기여행이나 떠나듯 이동하는 그런 사치스런 부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스스로 선택한 지역이 아니라 다만 어느 지역이든지 작품제작을 위한 공간만이 겨우 확보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여행자가 아닌 정주자(定住者)로서의 최동열은 같은 사물을 선택한다 할지라도 결코 피상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게 했다.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는 숱하게 사연이 있어 으레 하나의 비유 혹은 상징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될 때가 많다. 결코 소재주의로서의 작품상에 등용되는 소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정물과 산수에 등장하는 도자기, 병 모양이 그려진 작품 또한 작가가 한국에 들어와 이천에 체류하면서 그곳에서 느낀 정서, 인상을 담아내 보이는 그림들을 보면 그러할 만 하다.

최동열_정물과 산수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03
최동열_정물과 산수_캔버스에 유채_53×41cm_2004

최동열 작품의 기법상 특징은 무엇보다 거칠도록 운동감 있는 붓질에 주제의식을 분명하게 부각시키는데 있다. 그러면서 서술적 화면전개에 다양한 색채구사는 작품의 피상적 접근을 경계시키고 있다. 원색에 가까운 화려한 색채의 자유스러운 원용은 비록 내용상의 참담함을 뛰고 있다 해도 경쾌한 분위기를 유발케 한다. 80년대에 들어 독일 표현주의의 작가들에 의해 역동적인 화면설정이 제시되긴 했으나 최동열 같이 채도가 있는 밝음의 작품은 그렇게 쉽게 볼 수 없었다. 이는 내용은 무엇보다 깊이 있게 그러나 표현은 될 수 있는 대로 간단명료하고 명랑하게 라는 이중구조의 논리가 교묘하게 배합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그림에는 입체감이나 원근법 등 고전적인 접근방식이 소홀히 된 반면 사물을 최대한으로 평면화시켜 단순한 윤곽선과 평면으로서의 채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극도로 상징화된 인물 및 사물의 묘사는 때로 그 자체를 왜곡시키거나 생략 혹은 과장시켜 발언의 비약이 심할 때도 많다. 이는 정밀묘사를 거부, 필요이상의 친절한 설명을 무시했다는 말과 상통한다.

최동열_Interior_목판화_30×40cm_2000
최동열_Interior_목판화_30×40cm_2000

작가는 무엇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충실코자 했음인지 묘사에 따른 기술적 측면은 대담하게 다루려 했다. 게다가 화면의 등장인물(혹은 사물까지 포함한다 하더라도)은 마치 연극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강한 조명을 받고 강조되어 있으나 그 밖의 비중 없는 들러리들은 진술의 정확성을 기도했음인지 무시 내지 생략되어 있다. 이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요 대상 이외 배경이 단일색으로 처리되었거나 아니면 주제만 화면 가득히 확대 표현한 예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배경설정의 무시나 때로 의도적인 형태의 왜곡은 곧 강한 메시지를 동반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보면 의례 상상력을 쉽게 유도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무슨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더불어 '그림 읽는 재미'를 더불어 선사하고 있다. ■ 윤범모

Vol.20040601a | 최동열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