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30414b | 제2회 모래조각 경연대회展으로 갑니다.
참여작가 1조_안숙_배장은_이지혜_임선_김보라_황지애_전순정_임은비 14조_조진_하은정_이경진_정윤희_김미선_김주희_박상미_성혜현_이지영_윤정민
주최_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서울 성북구 동선동 3가 Tel. 02_920_7250
주관_대천 한화리조트 / 후원_충남 보령시 / 협찬_유니레버 코리아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머릿결을 타고 간간이 가랑비가 흘러내리는 오후 우리는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아스팔트의 감촉과는 달리 모래사장은 물기가 젖어 있어 약간은 딱딱했지만 파도가 밀려오는 가장자리는 발끝의 감촉을 자극하였고 바닷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하여 서로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저쪽에서 무슨 작업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그 사람들은 시선을 떼지 않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 눈으로 흘끗 보니 그 무리의 대다수는 여인들이었고, 아이들처럼 모래 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 어디에서 온 사람들일까. 도심의 한복판도 아닌데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에 환호성을 지를까. 그리 놀랄 일도 아닌데... 여고생들이 수학여행을 온 것인가. 밀물이 밀려오면 한 순간에 사라질 해변의 모래 위에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무슨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일까. 모래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조각품들과 눈을 들어 방파제 쪽을 바라보니 플래카드로 성신여대 모래 조각대회라고 쓰여진 글자를 보니 대학생들인 것 같은데... 아마도 바닷가를 지나던 연인들은 모래 조각 대회의 조각 작업을 하다가 다정한 그들의 모습에 탄성을 지르던 성신여대학생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성신여대 조소과 학생들은 작년에 갯벌의 흙을 이용하여 조각 작품을 한 것에 이어 올해에는 해수욕장의 모래 위에서 조각 작업을 하였다. 지렁이와 대합들... 갯벌의 흙이 순환하는 생태계의 생명감을 느끼게 하였다면, 파도가 밀려오면 한순간에 휩쓸려갈 모래사장 위에서 모래 조각 작업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바닷가를 걷던 연인들의 시선에서 아직도 풋풋하고 꿈 많은 여고생들처럼 비춰 보이는 듯한 이들에게. 해변의 모래는 생명을 잉태하는 갯벌의 흙과는 달리 일상의 시선에서 보면 그 실용성이 떨어지며 얼핏 보면 쓸모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물기 없는 모래는 무슨 형태라도 만들려고 하면 그것은 시지프스의 신화 속의 주인공처럼 같은 자리를 끝없이 맴돌게 한다. ● 일상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실용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해변의 백사장. 그러나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6월에서 8월에 이르기까지 해변의 백사장은 사람들의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해변의 백사장은 어째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일까. 손으로 움켜잡으려 하면 햇빛에 산산이 부서지는 해변의 백사장은 우리네의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 끝임 없이 밀려드는 파도와 함께 태어나는 모래는 언제나 물을 만나면 자신을 잊고 응집하듯이 바닷가의 모래사장 위의 사람들은 물에 가까울수록 낯선 사람일지라도 서로 어울리며 때로는 놀이도 한다.
물은 가스통 바슐라르가 이야기했듯이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양수에서 포근하게 지내던 원초적인 본성을 촉발시키기 때문일까.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무렵에는 남녀의 무리들이 산책하며 포옹하는 모습은 여름날의 정경으로 자리한다. 끝없이 내리 찌는 더위는 우리들의 철부지 같은 야망을 상기시키며, 모래가 햇빛에 산산이 부서지듯이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은 그러한 욕망 앞에 산산이 부서진다.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보낸 날들은 일상의 삶에서 꿈을 꾼 것과 같은, 달리 보면 허송세월을 보낸 것처럼 보이며,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길을 찾아 쳇바퀴와 같은 일상의 삶으로 떠난다. 그러나 다시 여름이 찾아오면 일상의 삶에 지친 사람들은 어김없이 다시 이곳으로 온다. ● 아이가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라듯이 일상의 모든 것들은 그렇게 쓸모 없는 것들을 먹고 자란다. 장자가 이야기했듯이 사람들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나무일수록 그것이 자라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넓은 그늘을 제공한다고. 그리고 일상의 시선에서 실용적인 가치가 떨어져 보일지라도 바닷가의 모래사장은 바닷가의 생명들이 살아 숨쉬게 장소임을. 파도가 밀려오면 한 순간에 사라질 해변의 모래사장에서의 조각 작업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의미를 다시금 일깨우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일상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이번 모래 조각에서 표현된 작품들은 시사성을 띠는 작년의 작품들과는 달리 모래가 지닌 속성과 그것으로부터 촉발된 인간의 심리를 보다 깊이 있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일등으로 뽑힌 2조의 「허와 실」이라는 작품과 2등으로 뽑힌 10조의 「몽상」이라는 작품, 그리고 3등으로 뽑힌 6조의 「communication」이라는 작품들은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한다. 특히「허와 실」이라는 작품은 모래가 지닌 물성과 그것에 대한 허구적인 것에 대한 표현을 통해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해 야기된 가상적인 이미지와 실재적인 실물에 대한 혼동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그 대안을 제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몽상」이라는 작품은 두뇌가 없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백일몽에 젖어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형상은 이성적인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사람의 모습을, 특히 해변 가에서 백일몽에 젖어 있는 듯한 사람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communication」은 귀와 입이라는 단순한 형상을 통해 대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대화라는 것은 소통이며, 그것은 말을 하는 사람과 그것을 들어 줄 귀가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시대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 사람들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단순하지만 함축적인 조각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우리 사회의 시사성을 암시하면서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보편적인 것을 예리한 시선으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사성과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 13점의 다른 조각 작품들도 모래라는 물성과 그로부터 기인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작년에 비해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아직 여고생의 모습이 채 가시지 않은 듯이 보이지만 성신여대 모래 조각대회의 조각 작업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모습은 인간과 주변사물에 대한 깊이 있고 세밀한 관찰을 통해 기성의 작가에 못지 않는 우리 시대의 문제점을 성숙하게 제시하고 있다. 성신 조각 대회의 조각 작품들은 봄날에 잠시 피어나 사라질 운명을 타고났지만 자신만의 자족적인 세계에 안주하는 미술이 아닌 일상의 생활 속으로 다가서는 성신 조각대회는 일상의 삶에서 작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즉 예술이 지닌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찾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 조관용
Vol.20040516c | 제3회 성신여대 모래조각 경연대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