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종말 이후

지은이_아서 단토

지은이_장정란 || 발행일_2004_0420 || 판형_신국판 || 쪽수_448쪽 || 도판_18컷 가격_20,000원 || ISBN 89-86353-81-4 / 89-86353-80-6(세트) || 도서출판 미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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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미술문화 서울 마포구 합정동 355-2번지 Tel. 02_335_2964

고대하던 책이 산고 끝에 나왔다. ● 아서 단토의 이름은 미국 내 미술사가, 미학자, 비평가들의 글에서만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폭넓게 언급ㆍ인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단토의ㆍ예술의 종말론이 학회에서 발표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직ㆍ간접적으로 그의 이론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그의 이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ㆍ예술의 종말ㆍ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로 현대미술을 규정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동시대contemporary라는 용어로 현대 예술의 방향을 설정하고 있고, 이것은 세계적 조류가 되었다. 이렇듯 그의 저서가 갖는 의미가 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번역서가 나오지 못한 것은 복잡하고 난해한 그의 문장구조와 고대에서 현대를 아우르는 방대한 규모의 내용, 라틴어, 독일어 등을 원어로 사용하는 등의 이유로 번역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술문화는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미학과 철학을 각각 전공한 역자들을 통해 번역에 완전을 기하려고 노력했고, 이에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단토의 이론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일은 단토가 우리나라 독자들을 위해 손수 서문을 써서 보내준 것이다. 우리나라 도예에 관해 관심이 많은 그는 서문에서 다원주의에 따른 우리나라 미술의 노력과 가능성을 인정하고 시사한다.

「브릴로 상자」가 예술의 종말을 고했다. ● 단토는 1960년대 중반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 상자」를 예로 들어 이는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 개념 자체의 종식을 의미하는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서양의 예술 개념은 플라톤의 『국가』와 그 밖의 저서에서 언급된 '모방'이었다. 그리스 예술의 대부분 특히 조각과 드라마가 모방적mimetic이었으므로 플라톤이 예술을 모방으로 본 것은 당연했다. 시각 예술을 모방으로 보는 시각은 르네상스를 거쳐 1960년대까지 아무런 회의도 없이 고정 관념화되었다. 20세기 모던 아트는 이 고정 관념의 현대식 해석으로 등장했다. 이것은 각기 자체의 용어로 미술을 정의하고자 시도ㆍ경합한 동향들 중 견줄 나위 없이 두드러진 모습이었다. 모더니즘 최고 성과물 가운데 하나는 선언문이다. 단토는 선언문을 미적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사회적ㆍ정치적 요구 안에서 작용하는 미술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처럼 미술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는 예술적 문서나 다름없다고 보고, 모더니즘 시기에 선언문의 규정에 맞지 않는 것은 미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농후했음을 지적한다. 이렇게 고정화된 미술 개념의 붕괴는 곧 미술사의 붕괴를 의미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발발했을 당시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역사의 반성에서 그 의미를 발견하고 확립하게 되듯 1964년 워홀의 「브릴로 상자」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단토는 1980년대 중반 자신이 20여 년 전 화랑에서 본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떠올리고 그 작품이 의미하는바가 미술사의 붕괴임을 깨닫게 된 후 『예술의 종말』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예술의 종말 이후는 새로운 예술의 개념으로 출발이 약속된 시대이다. ● 예술의 종말은 서양 예술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동양 예술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종말의 의미가 시사하는 바가 크고 종말 이후 동시대의 성격에는 다원화에 따른 동양 예술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계는 서양과 동양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지구화의 시대를 맞아 하나의 예술계를 형성하게 되었으므로 서양 예술의 종말과 새로운 개념에 의한 새 출발은 동양 예술의 각성과 더불어 다원적 예술에 대한 공통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예술적ㆍ철학적 논제가 된다. 단토는 유럽의 특정한 지역 내에서의 예술만을 예술로 인식하고 유럽 밖에서 행해지는 그 밖의 예술을 예술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데 대해 반성을 요구한다. 19세기 말 고갱을 비롯한 유럽의 미술가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5대양의 예술을 접하면서 모방이 더 이상 예술적 이상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놀라워했다. 이러한 사실은 "시각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미술 자체란 무엇인가?" 하는 집요한 의문을 발생시켰다. 미술가들은 곧 미술이 어떤 사물에 대해 시각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남아 있지 않은, 다시 말하면 어떤 것에 대한 모방이 없는 가운데 완전 추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마르셀 뒤샹이 미술가가 만들지 않더라도 미술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한 것 같이 미술품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지녀야 하는 특정한 방식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의 단순한 도구도 미술품이 될 수 있으며 상품을 담은 상자도 작품이 될 수 있듯이 변용을 통해 평범한 것도 미술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는 다원주의를 예고하는 유럽 중심의 역사의 울타리의 붕괴가 시작되었으며 이는 모든 양식이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술사를 양식의 역사로 보고 미술품의 질적 차이를 양식의 차이로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단토의 예술의 종말 혹은 미술사의 종말이란 한편으로는 미술 운동들의 종말 또는 선언문들의 종말을 의미한다. 모든 양식이 우열 없이 동등해야 하는 다원주의에 대한 인식을 뜻한다.

단토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의 사용을 반대한다. ●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널리 퍼뜨린 찰스 젱크스는 『포스트모던 건축의 언어』(1975)와 유사한 여러 저서에서 국제 현대 양식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경솔한 절충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원천으로 되돌아갔으며 종종 익살스러운 방법으로 색채와 장식을 도입했다. 건축 외의 분야에서 어떤 작품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하는 것은 더욱 어렵지만 공통점이 없는 양식들을 비슷하게 혼합하거나 역설적 방법으로 의식적인 문화적 참조들을 나타내는 회화와 조각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된다. 로버트 벤투리는 『건축에서의 복잡성과 모순』(1966)에서 가치 있는 공식이 있다면 순수한 것보다는 혼성된 것, 단정한 것보다는 절충된 것, 명료한 것보다는 모호한 요소들이 흥미로운 만큼 외고집스럽다고 기술했는데, 이 공식을 적용하면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 줄리앙 슈나벨과 데이비드 살레의 그림, 그리고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 포스트모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니 홀쩌나 로버트 맨골드의 작품에는 이 공식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단토는 포스트모더니즘을 하나의 양식으로 보고, 모더니즘의 계승인 동시에 초월이라는 식으로 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잘못임을 지적한다. 그는 현대의 예술계를 예술의 종말 이후 혹은 동시대란 용어로 지시하는 것이 적합함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예술의 정의란 무엇인가? ● 단토는 미술이 모든 종류의 미술, 온갖 질서의 미술과 양립 가능하기 위해서는 미술에 대한 정의가 최소한으로 약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는 최소한의 정의에서 미술품으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하고 그 의미가 작품에서 물질적으로 구성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는 오브제가 해석을 통해 작품으로 변용되어야 하며 그 오브제에 읽을거리가 있어야 함을 뜻한다. 요컨대 이는 미술품으로 존재하려면 관람자가 이해할 수 있는 비평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며 비평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음을 의미한다. 비평은 작품에 대한 판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립에도 작용한다. 과거에는 작품을 성립하는 판단 기준이 작품이 제작되기 전에 미리 존재했지만 동시대에는 작품을 규정하는 기준을 미술가가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 그만큼 동시대 미술이 전문적이고 자기 지시적이기 때문이다. 동시대 미술이 철학과 상보적 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작품의 구성은 눈으로 파악되지만 그 의미는 눈으로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 도서출판 미술문화

차례한국어판 서문 "예술의 종말과 미래" 서문 / 1장_들어가는 말 : 모던, 포스트모던, 그리고 컨템퍼러리 / 2장_예술의 종말 이후 30년 / 3장_거대서사 그리고 비평의 원리들 / 4장_모더니즘과 순수미술의 비판 :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역사적 비전 / 5장_미학에서 미술비평으로 / 6장_회화와 역사의 울타리 : 순수의 경과 / 7장_팝아트와 지나간 미래 / 8장_회화, 정치, 그리고 탈 역사적 미술 / 9장_모노크롬 미술의 역사적 미술관 / 10장_미술관과 갈망하는 수백만의 군중들 / 11장_역사의 양상들 : 가능성과 희극 / 역자해설 : 단토의 예술철학 혹은 철학적 미술사_이성훈/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에 관하여_김광우

지은이아서 단토_Arthur C. Danto(1924~)는 분석철학의 본고장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젊은 시절 한 때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가, 인생의 진로를 철학으로 옮겼다. 그는 웨인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미술과 역사를 공부했고 1949년부터 1950년 사이 단토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파리에서 공부했다. 그는 1951년 귀국해서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으며, 1966년부터 그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되었고, 미국 철학회 부회장과 회장, 미국 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그는 컬럼비아 대학의 Johnsonian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1984년 이래로 『네이션』 지의 미술비평을 담당하고 있다. 분석철학자인 단토는 헤겔과 니체를 진지한 자세로 연구했다. 이후 그가 예술철학으로 이행하면서 헤겔주의적 역사주의를 예술의 본질을 정의하는데 도입함으로써 다원주의 시대를 위한 비평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옮긴이김광우는 1972년부터 뉴욕에 거주하면서 City College of New York과 Fordham University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미술과 미술비평에 관심을 가져왔다. 일찍부터 뉴욕미술의 패러다임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국내 작가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저술한 『대가와 친구들』 시리즈는 단토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 소중한 기초자료가 된다. 『폴록과 친구들』(1997), 『워홀과 친구들』(1997), 『뒤샹과 친구들』(2001). 『The Great Couples』는 시대의 주역이 되는 예술가들을 풍부한 역사자료를 토대로 비교함으로써 입체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새로운 형식의 미술사이다.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2002), 『뭉크ㆍ쉴레ㆍ클림트의 표현주의』(2003),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2003) ● 이성훈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경성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19세기 문화의 상품화와 물신화』(공저), 『미술 진리 과학』(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예술의 사회적 생산』(공역), 『미학사』(공역), 『미학과 예술사회학』, 『유물론 반영론 리얼리즘』 등이 있으며, 「브릴로 박스는 예술의 종말을 신호하는가」, 「현대예술의 동향과 독일미학의 두 방향」, 「합리성과 예술: 하버마스의 예술이론은 가능한가」, 「알튀세의 철학정의와 그 미학적 귀결」등, 철학적 해석학과 하버마스, 알튀세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Vol.20040515c | 예술의 종말 이후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