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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514_금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_파라다이스 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이상한 나라의 비너스", 이이러니와 패러독스의 변주 ● 미국 교포 1.5세대에 속하는 데비한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아주 기묘하고 낯선 체험을 한다. 홍대 앞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술학원에서 비너스와 아그리파 같은 서구 고전들이 양산되고 있음을 목격한 그녀는 강렬한 문화적 쇼크를 받는다. 그녀의 의아함은 500년 전 도제의 조형실습의 기본인 '모방'이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미대지망생들의 창의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그녀의 관심은 확대ㆍ재생산되는 미대 입시제도를 질책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구 맹종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피폐한 사회구조 속에서 신음하는 인간성의 말살에 대한 고발과 저항으로 확산된다. 이로써 그녀는 미의식에 근간한 한국적 정체성의 문제를 치밀한 개념적 사유와 정교한 조형적 작업으로 표현하기에 이른다.
이번 작업 역시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꼬집고 비트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 혹은 다면성을 사유하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예컨대 「지우개 드로잉_Eraser Drawing」은 언뜻 두터운 목탄으로 그려진 듯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기와 지우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지우개 찌꺼기를 재사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우개 찌꺼기가 기막힌 미술재료가 될 수 있다는 단순한 내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지우기를 통한 반복과 실수와 폐기의 의미 등 그리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방법론을 환기한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또한 청자로 만들어진 「전지전능한 일상의 얼굴들_The Almighty Faces of Reality」은 일종의 종교제단의 우상처럼 드러난다. '조작된 미의식의 숭배'라는 도그마에 대한 조소이다. 작가는 기본적으로는 패러디적 방법론을 통해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표현한다. 이를테면 서구 미의식의 기준으로서(이미 한국인의 미의식의 전형이 되어버렸지만) 비너스를 일차적 대상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한국의 정통적 미의식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청자를 형식적 기법으로 결합시킨다. 이로써 비너스와 청자라는 낯선 사물과 기법이 만나 새로운 컨텍스트를 발생시킨다. 반전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일견 동일하게 보이는 비너스의 얼굴은 조금씩 심드렁하게 일그러진 표정들이다.
역시 서구적 미의 기준으로 평가받는 비너스의 얼굴을 그리도록 강요된 현실사회의 모순된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다. 또 다른 작품인 「아그리파의 클래스_Agrippa's Class」와 「미의 기준_Terms of Beauty」은 70~80년대 고등학교와 현대의 미인대회를 예로 들어, 개성을 말살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인 교육제도와 미의식을 섬뜩하도록 명료하게 질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어쩌면 과잉일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관객의 참여와 상상력의 개입이 느슨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데비한의 이번 작업은 개별적 작품은 물론 총체적으로도 완결성을 지닌다. 더불어 이 전시는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주요시되고 있는, 철저한 사유를 근간으로 하는 개념적인 측면과 그것을 정교한 수공성으로 보충한다는 감각적 측면이라는 두 요소의 유기적 결합이 조화를 이룬 주목할만한 전시임에 틀림없다. ■ 유경희
Vol.20040514a | 데비한 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