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0508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_10:00am~06:00pm
금산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35_6317 www.keumsan.org
허미자 하면 떠오르는 것이 균열이었다. 검정이기도 했고 짙푸른 것이기도 했던, 갈라지고 터진 균열들! 처음에 그것들은 깊은 어두움이었다. 아니면, 몇 겹 그늘이 드리운, 무거운 창백함이기도 했다. 그 자체가 너무 '실제'여서, 더 이상의 독해는 어떤 것이건 사족에 지나지 않는 그런 갈라짐이었다. 이상하게도 심연을 보게 하는 터진 표면이기도 했다. 내 기억으론 그때 그것들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실존 외의 다른 독해는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출구없는 심연으로 인해 그의 회화는 이미 '존재에 대한 증언의 격을 획득하고 있었다. 일테면, 실존을 표명하는 가장 물질적인 레토릭쯤 이었을까! ● 그러던 것에서 우선 칠흑 같은 암흑이 벗겨졌다. 화면에 빛이 침투하면서 표면의 균열이 드러났다. 다음으론 조심스럽게 색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황폐한 지평 위에 움직이고, 꿈틀거리고, 가로지르는 것들, 살아있고 활력을 지닌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씨앗을 상징하는 타원형태이기도 하고, 자유롭게 흩어진 채 그림의 상하좌우를 활보하는 터치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근래에 들어선 보다 실사적 차원에 근접한 나무나 들풀 같은 식물이기도 하다. 균열 정도도 점차 견딜 만 한 것으로 완화되어 왔다. 대체로 갈라진 틈들이 매우 온화하고 규칙적이며 섬세해졌고, 어떤 그림들에선 아예 균열 자체가 목격되지 않기도 한다.
허미자의 침묵하는 균열은 이제 깊이를 모르는 심연으로만 열렸던 대신, 밖으로 식물을 키워낸다. 이름 없는 들풀들, 혹 그 열매들이 갈라진 틈들 위로 드리워진다. 마치 그림자처럼. 그것들은 화려하지도 않고, 코를 찌르는 향기를 내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그것들은 관상용이 아니다. ● 어쩌면, 그것들을 식물로 보는 자체가 이미 시각적 편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까다롭게 뜯어볼수록 그것들을 식물이랄 순 없다. 거기 어디에 꽃잎이나 파릇한 잎사귀들이 있는가? 그것들은 오히려 마티에르가 거친 표면을 이리저리 스친 붓 자국들에 더 가깝다. 빠르거나 느리게 완급이 조절된, 터치의 분방한 구사라 해도 될 것이다. 간결하고 절제된 텃치들의 차라리 추상적인 교차들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고.
그럼에도 그것들은 충분히 살아있다는 느낌이다. 심지어 바람에 흔들리기까지 한다. 그것들을 다만 중성적인 붓질이나 세련되게 실현된 터치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기엔 재현된 식물들이 너무 생생하며, 요약될 수 없는 자유로움을 지니고 있다. 자유롭게 행해진 각각의 터치들은 절묘하게 중첩되고 조화를 이루면서, 다른 어떤 뛰어난 실사 못지않은 '사실'의 성취에 도달한다. ● 허미자의 회화에서 붓 자국과 줄기와 잎사귀를 따로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들은 가장 자유롭게 실현된 선이며 터치들이고, 동시에 가장 눈에 익은 들풀들이기도 하다. 재현은 실제와 가장 멀면서, 동시에 가장 가깝다. 방식과 표현, 더 나아가 도구와 목적 간의 구분도 불분명하다. 과연 이같은 통합을 텃치의 기교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허미자의 캔버스 위에서 불편스럽게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알다시피, 균열들은 인위적인 손질의 결과가 아니다. 배경에 깔리는 몰아치듯 하는 붓질로 인해 화면에는 가만히 머무를 수 없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이로서 물질로 가득한 화면에는 슬쩍 시간성이 주입된다. 그 위로는 자극적이지 않은 명암의 단계들과 계산 없이 자유롭게 흩어진 터치들이 얹혀진다. 이 균열과 흐름과 터치가 만나는 방식은 철저하게 반구성적이다. 즉, 그 에너지는 잠재로부터 분출되는 것이고, 그 방식은 철저하게 임의적이다. 그럼에도 그것들 각각은 다른 어떤 사려 깊은 구성보다 더 상호침투적으로 위치된다. 그것들은 이상할 만큼 충돌하지 않으며, 하나의 신체, 즉 회화라고 하는 신체 안에 녹아들어 있다.
그럼에도 허미자의 회화는 회화에 관한 어떤 거창한 설교와도 무관하다. 허미자를 위해 '회화론'은 너무 거창할 뿐이다. 격식을 갖춘 분석이나 규칙, 이론, 개념화에 도달하기 전에 허미자의 것들이 모두 말라비틀어지고 말 것이다! 회화론을 내밀기엔 허미자의 것들이 너무 자유롭다 해도 되겠다. ● 그렇다고, 허미자의 회화가 근엄한 침묵을 택한 것은 더 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코 '빛바랜 익명의 들풀 한포기'를 넘어서지 않는다. 이 소박함, 수줍음, 쉽게 권태를 부르지 않는 단정함,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서 슬쩍 풀기를 빼는 격 없음.... 이러한 완숙한 정서로 인해 우리는 바로 등 뒤까지 따라 붙은 불안스런 삶에도 불구하고, 잠시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 심상용
Vol.20040508a | 허미자展 / HEOHMIJA / 許美子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