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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507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남표_박도영_신명선_최용신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1가 62-12번지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INTERVIEW ● 지아코모 가네코_팀 MAKK은 어떻게 결성하게 되었나요? / MAKK_2000년 김남표, 최용신, 신명선 이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동문(서울대)이었지만 학창시절 개인적 친분이 있었기보다는 서로 약간 무관심한 척 하면서 서로의 머리를 맴돌던 미묘한 관계였죠. 졸업 후에는 사회에 나가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기 학원 강사, 중학교 교사, 건강보조식품 판매를 하면서 말이죠!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며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생활 속에서는 엉뚱하고 불만 많은 인간들로 취급받으면서도 방향을 못 잡고 헤매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 현실 제도권에 대한 불편함을 구체적 대안으로 전환시키려고 고민하던 김남표가 최용신에게 연락을 취하고, 다시 최용신은 신명선을 찾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삽시간에 진행된, 일대 사건이 됩니다. 왜 일대 사건이 되었는가?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죠. 하! 하! 하!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아보게 된 거죠. 이거라면 되겠구나. 멤버가 절묘했거든요. 최근엔 최씨의 제자인 박도영(현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영상담당)이란 친구가 들어왔는데 이 친구 컴퓨터 쪽으로 천재더라구요. 복덩이가 발을 잘못 들여놓은 겁니다. ● 지아코모 가네코_현실제도권에 대한 불편함과 MAKK과의 관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볼 수 있나요? / MAKK_근대화 이후 지금까지의 모습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바로 '활기'를 잃어버린 것이죠. 이것은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 한 것을 지적하는 경제주의적 관점에서 뿐 아니라 식민지 시절을 겪으면서 생겨난 역사적인 단절과 더불어 미학적 단절 마저 경험해야 했던 남한 미술계는 여전히 서구중심의 미술체계 속의 변방으로서, 그 아류적 속성을 유지하고있습니다. 어찌 보면 남한에서는 제도권 미술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그 제도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으면서 간판만 걸고 있는 유령기업처럼 말입니다. 유령기업도 세제 혜택과 투자유치를 해서 이익을 취하지 않습니까? 여전히 재래식 시장처럼 개별작가들의 성취를 싼값으로, 때로는 독과점으로 조정하려는 장사치들이 활개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사치들이 서구미술의 국제적 형성에 위기감을 느끼고 자기 몫을 재빨리 챙기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대에 걸맞은 외형을 갖추려고 리노베이션하고 있다는 것이죠. 남한은 투기의 나라죠. 특기가 올라타기입니다. 작가들은 강간당하는 거죠. 상업적, 그리고 문화적 욕망에 의해서. 이런 환경에서는 미술의 존재라는 것이 돌밭에 뿌려진 씨앗 같은 거죠. 그 결실을 동시대와 세대와 세대에 이어 맛볼 수 없는 거죠. 북한이 영양실조라면 남한은 기억상실인 것입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비평이라는 것입니다. 비평이라는 것은 제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술과 미학을 풍요롭게 만들 의무가 있는 것이죠. 가령, 이제는 문화의 특성중 하나가 HYBRID적인 것이라면 서구 중심에서 남한의 미술을 볼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벌어지는 유전적 변동과 새로운 형질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개별 작가의 고통스러운 시선이 다름이 아닌 생명의 생존의지라는 관점에서도 말입니다. 이제 MAKK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것 같군요. MAKK은 그 어떤 것도 못 되는, 가령 가능태도 아니고 현실태도 아닌 모호한 경계의 연약한 상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세포막, 장막 경계의 그 무엇처럼, 단지 삼투의 기능을 가진 그 어떤 상태로서 일정농도가 되면 흡수하고 뱉어내는 짓을 반복하고, 어디에나 있으나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 말입니다. 미술과 비평사이, 미술과 제도, 기존과 기존 적이지 않은 것, 예술과 일상, 예술과 작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소통의 경계랄까?
지아코모 가네코_MAKK의 그간의 작업을 보면, 방배동 재건축전, 잠실 송전초등학교, 매봉터널, 수지의 폐가, 성수동의 VINYL 갤러리까지 물리적 공간과 지정학적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스스로는 어떤 작업을 해왔다고 봅니까? / MAKK_MAKK은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상황의 미완을 발견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방배동 재건축 현장에서는 조합 측과 철거민 사이에서 MAKK은 어느 쪽도 지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겉보기에는 철거민 쪽에 가까웠지만, 두 양자가 결과(이익)를 추구하는 상황 즉, 개발의 이익분배측면에 몰두하고 있을 때 MAKK은 그 공간에서 꿈을 꾸게 한 것이죠. 그래서 전시도 확보된 기간을 못 채우고 하룻밤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잠실 송전초등학교, 매봉터널 프로젝트, 용인 수지 폐가 프로젝트 모두가 그랬습니다. MAKK에게는 과제만 남겨주는 새로운 지점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추위와 고통으로 힘들었습니다. MAKK은 약 4년 간 모일 장소조차 없어 주로 선릉역 패밀리마트 앞의 파라솔 아래에서 모였습니다. 겨울에도 말입니다. 정말 비닐막 한 겹이라도 드리워져 있기를 바랬죠. 드디어 5년 만에 성수동에 지하 공장을 얻어 작업실이 아닌 갤러리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VINYL 갤러리입니다. 단순히 작업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바라보기와 보여주기, 그리고 비평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곳 말입니다. ● 지아코모 가네코_'상황의 미완'이라. 조금은 어렵게 들리는군요! 오히려 상황에 대한 두려움, 가령 상황종료에 대한 두려움은 아닌가요? / MAKK_상황이 REAL TIME이라는 점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REAL TIME은 모든 것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혀주면서도 동시에 소멸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가령 VINYL 갤러리가 위치한 성수동은 공장지대입니다. 70년대 산업화가 만든 서울의 디트로이트입니다. 이식된 세계화의 말단에 가까운 곳이죠. 이곳은 실시간으로 소멸되어가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옮겨져 가고 있습니다. 산업화의 산물이 고전적인 골치 덩이가 되어가고 있죠. 이곳에 대한 미래의 축복은 오로지 번화한 유흥가, 아니면 한강이 보이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는 것만이 그 대안일 것입니다. 이곳은 오류인데 자명성으로 보이는 진실, 경제적으로 무장된 진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두렵고 초조한 곳이 됩니다. 진실을 만들 치밀한 작전이 수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MAKK의 '상황의 미완'은 대안이나 결정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소중하게 만드는 은밀한 행위의 뭉클함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따라서 MAKK의 태도는 격렬함을 지닌 채로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은밀하면서도 공개적인 소통을 모색하는데 좀 더 탐욕스럽게 되어갈 것입니다. MAKK은 욕심이 많습니다! ● 지아코모 가네코_그렇다면 MAKK의 작업은 마치 소멸되어가거나 변형 내지 기형화된 대상에 MAKK의 입김을 불어넣는 것으로 보아도 될까요? / MAKK_그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MAKK에 있어 사물은 언제나 지금이고 현실입니다. 사물이 소멸되고 변형되거나 기형화된다고 보는 것은 그것에게 자연적 생명이 있다고 보는 것이고 그것에 MAKK의 입김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만드는 것인데 MAKK은 그럴만한 능력도 없고 생각도 없습니다. 실재로 MAKK은 그리는 것이나 만드는데 소질이 없습니다. 또한 사물에 대한 확신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체의 정의적(精意的) 접근보다는 되도록 고증, 증언의 태도를 가지려 합니다. 옛 이야기 중에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배를 타고 가던 사람이 강물에 칼을 빠트렸습니다. 잃어버린 칼의 위치를 기록하기 위해 빠트린 곳을 배에 새긴 것이죠. 아주 어리석은 이야기를 비유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정확하게 기록하는데는 실패했지만 사건의 기억 측면에서는 아주 현명한 방법일 수 도 있습니다. MAKK은 어쩌면 각주구검의 태도를 보이고 있어 모호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 지아코모 가네코_그렇군요. 그렇다면 그러한 태도 즉, 증언, 고증 같은 것은 어떻게 작업으로 전환이 되는 것입니까? 예를 들면 작업의 형태라든가 매체의 선택과 같은 거 말이죠? / MAKK_우리에게 작품의 형태와 매체의 선택은 앞에서 언급한 '지금'이라는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이곳에서 존재하는 어떠한 사물들과 지금 여기서 그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 그리고 그것들이 발언하고자 하는 관계성이 우리의 작품에 있어서 중요한 고리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러한 증인 내지는 목격자로서의 입장은 MAKK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의 작품도 지금 이곳의 증언의 역할뿐만 아니라 지금 이곳의 한 요소로 남아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 지아코모 가네코_그러한 반복된 어리석은 행위는 당신이 이야기하는 모호함과 관계가 있나요? / MAKK_수천 개, 수 만개로 갈라지는 사건들의 무수한 상태를 모호함이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 속에서 보는데 있어서, "그러하다". "그렇다"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완의 취미입니다. 현재도 규정 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결정이야말로 불안에서 기인하는 것 같거든요. 가령 가네코씨는 지금 저와 대화하는 것 중에 이 갤러리 내부에서 무엇이 보이는지요? ● 지아코모 가네코_글쎄요. 보이는 것은 많은데......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어쨌든 명확함이나 견고함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요. 마치 우리 현실에 어떠한 대상이 놓여진 관계를 답습하는 것 같으면서...... 그러면서도 내 눈에 그것과 다른 어떠한 규칙을 발견 할 수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 MAKK_서구미술사에는 고작 20세기에 들어와서 뒤샹과 존 케이지의 도움으로 사물과 소리를 미술에 끌어올 수 있었고 볼 수도,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교와 유교의 사상을 통해 이미 체득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존 케이지도 주역과 선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는 혼란을 가중시키게 된 것이죠. 그래서 현재가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규범으로 바라보기는 오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 당신과 나 그리고 사물들과 갤러리가 만드는 상황으로 족한 것입니다. ● 지아코모 가네코_그렇군요. 오늘 당신과 나눈 이야기들은 저에게 어떠한 도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당신들과 전시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오늘 급히 출국해야하기 때문에 이만 인사를 나누어야겠군요. / MAKK_MAKK도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 집단 '막'
Vol.20040507c | 신성한 알리바이_집단 '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