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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전시장 서울 종로구 적선동 81-1번지 Tel. 02_734_2935
난 거의 매일 땅 속으로 다닌다. 내가 타는 지하철은 땅 속으로만 간다. 해를 못 봐서 그런가 풍경이 안보여 그런가 항상 다니는 길이 답답하다. 그래서 항상 라디오를 들으며 산다. 가끔 바뀌는 광고판이 반갑기까지 하다. 그게 그림이 된다면 내 그림을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고 즐거움을 느낀다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대부분 그래, 보통은 피어나는 꽃이 아름답다. 활짝 핀 꽃도 아름답다. 물론 봉오리도 아름답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지는 꽃, 시들어 가는 꽃이 더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쌩쌩한, 풋풋한, 싱그런 아름다움이 아니라 가슴 아픈, 애처로운, 처연한 아름다움에 탱탱한 선이 아니라 구불구불 구부러진 선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 70이 되어도 그림 그리는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 되어서 그렇게 바뀌게 된 건지 시들어 가는 꽃이 아름답게 보여 내 꿈이 그림 그리는 할머니가 된 건지 언제부턴가 절정을 지난 뭔가 더 많은걸 갖고 있는 그런 아름다움을 느끼게 됐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이미 그렇게 되고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란 말처럼 그림자가 그렇게 다가왔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속눈썹이 얼굴위로 만든 그림자를 보게 됐는데 그 느낌이 눈물같이 슬프게도 악마같이 무섭게도 내 얼굴을 바꾸는 걸보고 그림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 길가에 핀 꽃사진을 찍다가 벽에 비친 유난히 선명한 그림자를 보게됐는데 화려한 색과 싱그런 잎을 가진 그 식물보다 무서우리만큼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당당한 그림자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 연꽃을 찍다가 물위로 비친 그림자를 봤을 땐 나르시스의 그것같이 예쁘게 느껴지는 그림자를 봤다.
한번 디디면 점점 깊이 빠져들어 끝내 헤어나지 못하는 "늪"처럼 나는 그림에 빠져버린 것 같다. 이것은 어쩌면 일종의 '중독'인지도 모르겠다. ● 손을 놓으면 일주일도 못돼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뭔가 불안정해지고 마는, 그래서 다시 기름냄새를 맡고야 안정을 되찾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힘을 얻는 내게 있어 그림은 안식처, 도피처, 진통제 같은 것 생활이 힘들고 마음이 아닐 때도 그림을 그리고 나면 훨씬 가벼워진 마음을 갖게 되고 화가 날 때도 마음이 가라앉게 되고 기쁠 땐 기쁨이 더해지고 슬플 땐 슬픔이 삭게 되고 지루할 땐 지루함도 없어지고... 만병통치약이네.
그림을 그리다보면 물감 하나하나에 내가 들어있는 듯하다. ● 기쁜 나_샛노랑, 나의 힘_버밀리안, 잔인한 나_비리디안, 단순한 나_세룰리안 블루..... ● 색들마다 다른 감정들이라서,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이라서, 다 내가 그린 그림들인데도 다 다른 느낌을 주는 게 아닐까..... ● 그림을 그릴 때마다 좋은 기분은 더 좋아지고 안 좋은 감정들은 삭아버린다면 먼 훗날엔 무슨 일에도 꿈적 않고 평온함을 갖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 조정희
Vol.20040503a | 조정희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