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0505_수요일_05:00pm
서호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1번지 Tel. 02_723_1864
나의 꽃문 이야기 ● 오래 전부터 절집을 좋아해 찾아다녔다. 산으로 난 실오라기 같은 길도 좋고, 명주천들에서 풀려 나온 듯, 청 홍 황 백 흑의 단청빛도 좋고, 무엇보다도 다시 빛 바래 주위 풍광과 더욱 잘 어우러져 가는 모습에서 형용하기 힘든 열락을 느끼게 된다. 불이문, 해탈문을 지나 대웅전 앞마당에 서서 머뭇거릴 때 결이 비치도록 말간 얼굴로, 어느 땐 향기 풀풀 날리는 고운 화장빛으로 맞이해 주는 꽃살문이 있어 더욱 기쁘고 고마웠다.
부처님 계신 금당을 지극정성 화려하게 치장하기 위하여 솜씨를 부려 날살, 띠살, 우물살, 빗살, 소슬살들을 짜넣거나, 연꽃, 모란, 국화, 금강저, 卍자, 마름모, 나뭇잎, 꽃병, 거북등무늬들을 아로새긴 꽃지게는 옛 바느질 보와 많이 닮았다. 자연에서 따온 색과 선, 모양이 그러하고 굳이 '내가 만들었소'하고 내세우지 않음이 그러하다. 정수사 한아름 가득한 꽃병꽃꽃이문은 공단에 수를 놓은 병풍과도 같고 통도사 소슬 꽃살문은 마치 모시조각보에 날아든 꽃나비떼와도 같다. 바느질을 좋아하는 내가, 꽃문의 의미와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 것은 저절로 그리된 일이다.
헝클어진 生이라는 실을 솔솔 풀어내어 매듭을 지어주며 다시금 잘 살아 보라 이르는 꽃문여행에서 돌아오면, 문갑에서 떨어져나온 거울문짝이나 나무그릇들을 모으고, 모시나 삼베, 무명 같은 소박한 우리천에 자연의 빛을 흠뻑 들여놓고는 자, 이제 어떻게 표현 할꼬? 하며 곰곰해하는 것이다. 홀로 바느질 하는 나의 방에 가릉빈가 (신비로운 목청을 지닌 사람 형상의 극락조)가 놀러오곤 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목쟁반이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범어사 독성전 다리 든 동자가 성혈사 나한전 연꽃 든 동자가 우물안 인 듯 오롯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그때, 내 안에 새겨진 무늬, 예, 고스란히 옮겨 놓으니 바늘로 쓴 詩, 꽃 얘기뿐인 한 권의 詩集 같기도 하다. ■ 김혜환
Vol.20040502b | 김혜환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