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없는 무인지경

이상선 회화展   2004_0429 ▶ 2004_0511 / 월요일 휴관

이상선_'야!'_인조가죽에 시트지_130×130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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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429_목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_파라다이스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이상선은 미술을 회화/조각, 평면/입체, 2차원/3차원 등으로 구분하는 전통적 사고의 틈새에 서 있다. 나아가 그는 그 안으로 과감히 들어가 고정적이고 제도화된 여러 고리들을 가위로 하나둘씩 잘라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끊어진 고리들을 다시금 이어매고 붙여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즉 그가 사용하는 가위는 모든 것을 단절시키고 절단하는 분리의 가위가 아니라, 새로운 기반을 다지기 위해 정지작업을 하는 생산의 가위이다.

이상선_에코 없는 무인지경_2004

그러한 전략을 그의 작업 용어로 말한다면, '평면설치'일 것이다. 물론 이 용어는 미술사에서 다소 생경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단어에서 오는 모순적인 어감으로 인해,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더욱이 그 개념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평면설치는 단순히 2차원의 평면과 3차원의 설치가 결합된 것은 아니다. 그는 미술을 크게 두 개의 장르로 분류하는데, 바로 입체와 평면이다. 작품 즉, 오브제가 3차원의 공간상에 놓여지면,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입체이다. 하지만 그 오브제를 벽면에 붙인다면, 물론 부조의 성격을 가지겠지만, 이상선은 그것을 확장된 평면의 개념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평면은 단순히 수학적이고 관념적인 2차원의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벽면과 작품의 마주침을 통해 구체적으로 구성되는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2차원의 세계이다. 따라서 회화작품이 설치되는 곳은 사실상 2차원의 공간도 3차원의 공간도 아닌 셈이며, 작품은 새롭게 재발견된 공간에 자리를 잡는다. 그는 한편으로 공간 속에 오브제를 넣는 행위를 공간에 대한 파괴로 간주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공간의 재탄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공간은 작품의 일부가 되고, 그의 평면회화는 자연스럽게 3차원성을 획득한다.

이상선_▽의遊戱_천에 아크릴채색_120cm×149cm_2004_부분
이상선_▽의遊戱_천에 아크릴채색_120cm×149cm_2004

평면과 입체를 명증하게 구분하는 논리와 거리를 두는 이상선에게 있어 공간은 자체적인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그의 평면설치는 어디까지나 평면적 요소와 수작업에서 출발한다. 과거 작품에는 한 화면에 다수의 사람이 등장하였지만, 최근에는 그 인물들을 하나하나 오려내어 꺼내고 있다. 따라서 개별화된 인물들은 각각 독자적인 공간을 할당받으며, 그 공간과 조응하면서 그가 계획하는 평면설치의 한 단면을 보여주게 된다. 또한 그는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내용을 작품에 담아내는 내러티브의 경향을 일전에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개체화된 인물이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서사적 요소가 가급적 배제된다. 게다가 근래 사용되는 인물은 신문, 잡지, 포스터 등의 상업광고 이미지에서 차용된 것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기도 하며, 동시에 몰개성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디테일이 생략되고 단순화된 형태와 넓은 색면이 추구됨으로써 비교적 중성적인 인격체가 탄생하는데, 실상 자세히 살펴보면, 그 등장인물들은 각자 고유의 주관적인 표정을 지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선_죽어도 임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0×130cm_2004

2차원의 평면성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색의 주조에 있어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 즉 입체성을 제거하고 평면성에 도달하기 위해 채도와 명도를 통제한다. 그는 원칙적으로 원색, 순색을 멀리하고 튜브에서 나온 그대로의 물감을 사용하지 않는다. 더불어 꾸준한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시각으로 물감을 덜어내고 혼합하여 새롭게 색채를 재구성한다. 채도의 단계를 연구해서 색상을 미세하게 변화시키는데, 그 결과 색감은 전반적으로 어두면서도 밝고, 무거우면서도 경쾌한 이중성을 지닌다.

이상선_에코 없는 무인지경_2004

마지막으로 그는 인물에 이름을 붙인다. 그 이름은 매우 문학적이다. 왜? 그것은 진실로 문학에서 왔기 때문이다. 시인 이상의 전집을 30번 이상 탐독했을 정도로 이상에 심취해 있는 이상선은 그를 자연스럽게 내재화시켰다. 자신이 선택한 이미지에 따라 이상의 텍스트를 숙명적으로 뽑아내어 그것을 눌러 앉힌다. 그로써 각각의 독립된 인물들은 생명을 부여받고, 공간 안에서 서로 관계를 설정하기 시작함으로써 차가운 인물들은 따뜻한 개성체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이상선_하늘위에서오줌도시원하게싸고싶다, 비행기를타고똥도뿌려보고싶다 천에 아크릴채색_160×80cm_2003
이상선_난 안되겠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336cm_2004

이상선의 철저한 평면추구의 이면에는, 오히려 평면을 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있다. 그는 평면이라는 인식의 기반으로 들어가 평면을 재조립함으로써, 그것의 영역을 확대시키며 돌파구를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행하는 내부에서 흔들기는 부정으로 작동하기 보다는 긍정으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의도적이든 혹은 그렇지 않든, 그가 아직까지 작품의 내용적인 측면에 말을 아끼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그 속에 숨은 함의가 드러나 형식적인 것과 접속을 이루는 것을 상상하면, 앞으로 진행될 그의 작업도 사뭇 흥미롭게 기대된다. ■ 류한승

Vol.20040430b | 이상선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