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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어릴 적에 읽은 동화가 늘 기억에 남아 있다. 중국 상인의 돼지 이야기이다. 어느 날, 중국 상인이 돼지를 사와 사방에 구멍을 낸 네모난 상자 안에서 돼지를 키웠다. 돼지가 자라 살이 삐져나오면 상인은 삐져나온 돼지의 살을 잘라먹는다...
학교를 졸업한 후 시작 된 사회생활은 나 자신이 조직을 움직이는 너무나도 작은 부속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한 개인이 사라져도 다른 이로 교체될 수 있는 곳. 그 곳에는 한 사람의 고유한 자리가 없었다. 인간이 건강하게 꿈꾸기에는 너무나도 비좁은 틀이었다. 살이 잘려져 나간 동화 속의 돼지처럼 늘 아팠다. 내 그림의 화면은 종이라는 물질적 공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인체의 형상이 가득 메우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한계선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인체는 하루 하루를 짓누르는 익명성에 대항하는 고유한 인간의 모습이다. 나는 늘 존재하고 싶다. 많은 부딪침 속에서 느끼는 힘겨움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무수한 연필선의 집합은 내가 아직도 여기 있다는 소리 없는 항거이다. ■ 김은주
Vol.20040428c | 김은주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