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작가 한국_권오상_김창겸_이형구_이용백_조이수_한계륜_전준호_김기라_구자영_김준_김용경_노재운_박혜성_박지훈_박준범_류비호_서보형_신용식_윤미연 ● 일본_Nakanosai Toshihiro_Pol Malo_Sasagushi Kazz_Tanaka Koki_Bowda Katsushi_Furukawa Koichi_Goshima Kazuhiro_Hayashi Yuki_Hino Keiko_Ise Shoko_Kimura Mayumi_Kobayashi Kohei_Koizumi Meiro_Okado Mikio_Saito Masakazu_Sato Yoshinao_Shimada Masamichi ● 중국_Li Yongbin_Shi Qing_Zheng Yunhan_8gg_Cao Fei_Fao Kai_Chen Dili_Cui Xiuwen_Du Jie_Ou Ning_Wang Ning_Wu Ershan_Wu Quan_Yang Fudong_Zhang Dan & Chen Man_Zhao Liang_Zhou Xiaohu 기획_리 젠화 Li Zhenhua_서진석 Suh Jinsuk_스미토모 후미히코 Sumitomo Fumihiko 주최_The Japan Foundation_Darling art Foundation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 서울 강남구 신사동 534-13번지 Tel. 02_3446_1828
중국사 속에서 나는 삼국의 시대가 특별히 좋다. 『삼국지』나 『삼국연의』그 밖에 갖가지 고전문헌이 다채롭고 신비적인 삼국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사회를 볼 때 나에게는 이 삼국의 시대가 재연되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기만 한다.● 삼국시대의 위, 촉, 오는 현재의 아시아의 틀 속에 있는 중국 한국 일본에 실로 잘 닮아 있다 삼국의 지리적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오늘의 중국 한국 일본이 불가사의하게 겹쳐지는 것이다. 수역에 면한 오는 수상병력에 뛰어나 강대한 수상군을 갖추고 일대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본도 옛부터 같은 환경에 처해 있고 원의 몽고군 마저도 일본의 지리적 조건을 앞으로 해서 유효한 방책을 갖지 못하고 두 차례에 걸친 공격도 실패하고 말았다. 산 나라인 촉은 지세에 혜택을 받아 풍부한 자원을 지니고 난공불락의 나라로서 알려져 있었다. 이것은 현재 한국의 상황과 흡사하다 한국도 산이 많은 나라요 서울 올림픽 개최이래 아시아 MIES 속에서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인데 중국의 수도 북경이 위치하고 있는 곳도 위와 같이 비교적 평탄한 평원 땅이다. 그리고 옛 위가 그랬듯이 중국도 또한 넓은 국토 다수의 인구 풍부한 자원 등 갖가지 면에서 타국을 능가하고 있다. 50년에 걸친 싸움 끝에 위는 다른 두 나라를 수중에 넣게 되었는데 그것도 잠깐 사이 옛 가신이었던 사마일족에 의해 그 승리를 찬탈 당하고 만다. 이일은 오늘의 아시아의 정치 문화 경제 변혁의 예측불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 듯 싶다. ● 정치 상황과 전란의 역사를 보면 특히 1920년부터 1970년까지의 진행시대의 아시아의 정치적 틀에 삼국모습이 묘하게도 겹쳐진다. 우연히도 삼국의 싸움도 50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물론 양자의 결말은 크게 차이가 있지만 그 정치적 구조의 큰 틀을 비교할 때 거기엔 놀랄 정도의 유사성을 발견 할 수가 있다. 예컨대 위, 촉, 오는 원래 각각이 통일된 국가의 형성을 지향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독자적인 길을 걷는 가운데 각각의 세 나라를 형성해 갔다. 군사력의 집중과 분산 그리고 중앙권력의 약체화에 의해 군웅 할거의 상태가 되어 위, 촉, 오간에 끊임없이 전투가 전개되었다. 도중 십 수년간의 짧은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기도 했으나 결국 긴 전란 끝에 한 개의 나라로 통합되어간다. 그러나 그것도 참된 결말이 아니라 진대에 이르러 중국은 다시 급속도로 분열되어 간다.
제2차 세계대전기의 아시아에 눈을 돌리면 먼저 일본에 의한 중국에의 침입과 그 실패가 있다. 그리고 1950년대에 중국이 조선에 대해 행한 대미 투쟁지원은 그 후의 북조선과 한국의 정치 경제 군사에 다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정치경제 문제를 무력에 의해 해결하고자 했던 시대 뒤에 십 수년간의 평화의 시대가 초래되긴 하나 오늘날 우리들 앞에는 문화적 침윤과 상호의 영향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나라와 나라사이에 균형이 무너지고 또 재생될 수단으로서 정치 및 군사적인 침략과 경제 그리고 문화적인 영향의 어느 것이 보다 위험스러운 것일까. 수년 전부터 글로벌화에 대한 염려가 거론되고 있는데 오늘 우리들은 자문화의 상실과 흔들림의 감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결말이야말로 현대의 공성의 계라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직까지도 자기들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 또 한 가지 삼국에 대해서 흥미로운 점은 중국 일본 한국이 각기 다른 형태로 세 나라를 해독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국은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일본과 한국의 역사 속에도 깊이 침투하고 있다. 그 독해법에는 무수한 배리에이션이 있으며 출전의 특정도 불가능한 형태로 뒤섞인 채 그것이 깊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투영되어서 유통하고 있다. 이를테면 십 수년 전에 일본에서는 『삼국지』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대대적으로 히트 했는데 나는 그런 작품을 보고 곤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도대체 삼국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일본의 신화나 전설인지, 중국과 일본 어느 쪽이 보다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라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앞에 하고 우리들의 역사는 이미 유일하게 올바른 것은 있을 수 없겠다. 최근에 이르러 한국에도 또한 별도의 삼국의 해독법이 있는 것을 알고 나에겐 모든 게 불확정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역사가 하나의 이미지를 이룩할 수 없게 될 때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는 우리들과 어떻게 관계되는 것일까. 예컨대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리들의 현재가 과거와 전혀 단절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들의 현재와 가장 깊이 관련지어 지는 것은 서양의 산업문명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중국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엔 청대의 봉건제정이 있다. 봉건제정과 산업혁명 간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지 모르나 유일하게 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중국이 봉건제정과 산업혁명의 이중적인 피해자였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걸 말해 본다한들 본 전시회와는 전혀 관계도 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미술의 역사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예컨대 지금 우리들이 떠받들고 있는 컨템포러리 아트도 서양문명의 산물인데 중국은 서양 산업혁명의 수혜자이자 피해자라는 이중의 아이덴티티를 가지면서 이를 수용했기 때문에 거기에는 서양 문명에 대한 회의감이 항시 지니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는 중국과 서양과의 연결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의 컨템포러리 아트는 서양의 지지를 받으면서 착실하게 풍요로워지고 지금 가장 에너지틱한 세력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을 보게 될 때 나는 중국의 컨템포러리 아트 란 대체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많은 시도 끝에 나는 컨템포러리 아트가 인간의 정감에 미치는 마이너스의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서양식의 이성과 광기 가운데 질풍노도의 새로운 컨템포러리 아트가 창조되어, 이젠 서양에서조차 그들의 혈통을 이어 받는 비적출자를 중국 땅에서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고 있다. ● 아시아의 현상, 그리고 중국 일본 한국의 관계에 대해서는 본 전시회의 일부 작가의 작품 속에 사회의 직접적인 반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많은 실험과 시행을 통해 부상하는 것은 사회 성장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경제 예술 정치에 있어서의 태도 차이이건 그것대로의 현상의 차이이건 그 각각에는 어떤 관련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리라. 보다 깊은 차원에서 사회를 연구하고 개인을 바라보는데서 우리들은 자기들의 현실과 타자의 현실간의 차이와 공통성을 한층 더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 『아웃,더,윈도』-우리들이 부여한 그 타이틀에 의해서 본 전람회는 창으로부터 바라보는 것과도 같이 끝없는 천지와도 같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에 있는 것은 창을 통과하는 바람의 감각, 창을 꿰뚫은 빛의 시각 그리고 서로 바라보며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왜 우리들은 본 전시회를 더불어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틀은 실로 신속하고 순조롭게 결정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시속에서 맛보는, 창을 사이에 두고 보는 데서 광대무변을 생각케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타이틀을 붙이고 이 타이틀을 좋아해 마지않는 것이다. ● 이것은 또한 서양의 영향을 받으면서 동방적인 의미를 곁들인 표현의 하나로 비추어 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최초의 동서 문화 융합부터 전쟁에 이르는 현실은 우리들 속에서 이미 현실에 있어서의 융합불가능성의 승인과 나아가 그런 상황에 있는 현실의 상호영향의 인식으로 변환되고 있다. ● 본 전시회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작가 및 일본작가의 작품들을 통하여 우리들은 이러한 격렬한 교류와 상호영향의 결과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 중국작가의 작품은 중국사회의 현상과 보다 깊은 관련을 지니고 그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실의 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게 많다. 컨템포러리 아트 세계에 있어서는 동방적인 이미지로부터 서양의 승인에 그리고 다시 동방이라는 개념을 확인하기까지 불과 5년의 세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의 상황 속에서 우리들은 벌써 50년의 경험을 쌓고 있다.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으로부터 현재의 교육정항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보면 오늘의 우리들이 어떻게 해서 지식을 획득하고 사회 속에서 어떤 형태로 생존해 왔는가를 알 수 있다. 이미 우리들은 단순히 서양을 적이라고 아니면 우리편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문화적 현실과 생활의 현실 속에서 우리들은 도대체 어떤 사상을 좋아하고 어떤 생활을 구하고 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이 혼을 구제할 수 없으며 예술이 현실을 대신 할 수 있는 일도 불가능하다. 작가는 냉정한 태도를 지키며 예술을 현실의 반영이나 현실에의 조소에 불과한 격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관중도 마찬가지로 냉정하게 보고 있는 것일까? 매트릭스 속에서 기계나 현실과 싸우는 인간들같이 지금 우리들도 무엇을 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창을 열고 거기에 바람과 빛을 통과시키고자하는 게 아닐까. 만일 우리들이 모래 터까지 내려서서 직접 대해를 바라본다면 그리고 만일 국경도 역사도 예술도 없는 세계에 갈 수 있다면, 신이 창조한 에덴동산에 돌아갈 수도 있으련만. ■ 리 젠화_Li Zhenhua
Vol.20040417b | OUT THE WINDOW展 ③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