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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김경은_김정표_김인선_김지수_김태희_백곤_신건우_신기운_오정민 유세희_이상택_이지원_이형욱_장은주_최옥성_황희정_2 Heads Monster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갤러리AnT스퀘어 서울 종로구 낙원동 58-3번지 B1 Tel. 02_3673_5253
흰_검정 ● 새로 그려진 하얀 횡단보도를 건너 하얀 거리를 걸어, 하얀 계단을 내려갔다. 하얀 문 앞에는 하얀 전구하나 잠깐 머리를 들어 타고 있는 필라멘트를 살펴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먼지 하나에 신경 쓰고 먼지떨이처럼 소매를 털어 본다. 빛이 없는 구석에는 실루엣만 남긴 어두운 형체가 놓여있다. 무엇일까 짐작해 보지만 까만 바둑판에 놓인 까만 바둑알처럼 줄을 그어보기 전에는 잘 짐작 할 수가 없다. 손잡이를 여는 손은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이 나는지 실금 같은 핏줄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문을 여니 갑자기 번쩍하고 플래시 같이 빛이 쏟아진다. 일부터 오까지를 천천히 세고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먼지하나 없는 하얀 벽에는 가느다란 거미줄 같은 금이 달랑거린다. 하얀 천장에 갈매기, 얼룩을 세어본다. 바닥에 놓여있는 것은 징검다리다리 같은 조약돌일까? 퍼뜩 돌무지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앞에 있는 것은 앞다리를 가지런히 포갠 얼룩무늬 젖소인 것 같다. 좌우로 고개를 느릿하게 돌리더니 다리를 짚고 일어서 한 걸음 다가와 손을 잡아달라는 듯이 앞발을 척 들이민다. 악수하기에는 너무 어색했지만 그러자고 했더니 매우 기쁜 듯 미소까지 띠면서 낮은 천장 끝까지 둥실 떠오른다. 바닥을 걷는 구두자국도 소리에 맞춰 모양을 남긴다. 언제나 동공 따위는 금방 적응을 하여버리는 것인지, 아프다고 따끔거리더니 금세 아주 작은 흠집까지도 남김없이 찾아내고 있다. 이를테면, 얼룩이나 조약돌, 젖소, 페인트를 칠한 무늬까지도.
그래서 새삼스러운 그것들에게, 처음 보는 작품들에게도 모두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처음이라기보다는 간만의 재회인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예전에 우리 언젠가 만난 적 있지 않았냐고 물어보기엔 어쩐지 미안해져 버려서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만난 적은 있는데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는 난감한 같은 것이라. 대신 이 무채색 공간에서 작은 흠집도 먼지도 잘 볼 수 있는 이곳에서 만났으니 이전엔 알 수 없었던 좋은 점들을 마주 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아주 잘 알아 볼 수 있는 걸요. 조금 대화를 나눴다. 무얼 건네려고 하다가 아까 먼지를 턴 소매를 보며 이 색상이 생소하다. 흑백에 익숙해진 동공 때문에 갑자기 어색해져 버린 옷 때문에 다시 한번 소매를 턴다. 계단을 내려오며 본 것은 무엇 이였지? 갑자기 머리 속은 백지가 되어버렸지만 이런 지하 빛이 들지 않아도 여전히 환하고, 봄 햇살의 지상에서도 보지 못하고 흘려버린 것은 언제나 너무 많으니, 가끔, 형광등 불빛 아래에 집중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문을 나서자 다시 플래시 오프. 이번에는 손을 알아보기까지도 한참이 걸린다. 들어가기 전에 보았던 빛나는 핏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틀려진 걸까 생각하며 고개를 드니 내린 것은 까만 어둠. 까만 거리를 걸어 까만 어둠 속을 달릴 지하철을 타러 가야겠다. ■ 심다혜
Vol.20040415b | 흰_검정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