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ho-Garden

임지예 회화展   2004_0414 ▶ 2004_0428

임지예_Litho-Garden_혼합재료_130×162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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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트갤러리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57번지 금호빌딩 3층 Tel. 02_6303_1918

작가 임지예의 작업은 일정한 질감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작업의 기본 매재가 수묵임을 감안할 때 대상이 되는 사물의 질감 표현은 일반적인 동양 회화의 그것과는 분명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수묵은 그 자체가 일정한 관념적 내용을 전제로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독특한 재료관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관념성의 근저에는 사물이 지니고 있는 가시적인 색채를 넘어선 근원의 색, 태초의 색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즉 모든 가시적인 색채는 빛과 같은 조건에 따라 그 색이 변하는 것으로, 수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의 단서조차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근본의 색으로 먹색을 상정하고 이를 통하여 자연의 오묘한 변화와 기운을 포착하고 표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수묵이라는 전통적인 매재를 이용한 조형을 통하여 특정한 사물의 독특한 질감을 표현의 기본 얼게로 삼음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바로 근자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수묵에 대한 재료적 이해가 반영된 주관적인 해석의 결과라 할 것이다. 즉 수묵이 지니는 관념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표현 매재로서의 기능성에 의미를 두고, 이를 통하여 수묵이 지니고 있는 새로운 표정을 발현함으로써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조형적 화면을 구축해 보고자 함이 바로 그것이다.

임지예_Litho-Garden_혼합재료_117×91cm_2004

작가는 작업의 화두를 '快'에 두고 있다. '快'는 문자 그대로 즐겁고 기쁘다는 의미일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 설정한 '快'의 개념을 "단순한 기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에 대한 탐색으로도 해석될 수 있고, 아름다움에 대한 충격과 놀라움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나아가 완성의 기쁨이나 공감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의미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이를 표출하는 조형적 대상을 '자연'에 두고 "자연계의 온갖 아름다움과 호흡하고 교감하는 상태를 표현적인 시각으로 조형화 하고자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 작가가 말하는 '快'는 일종의 정신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정신 상태를 자연에 대한 감상과 교감을 통해 발현해 보고자 한다는 것은 일종의 자연물에 대한 감정이입, 혹은 의인화 과정을 의미한다. "화면에서 표현되어진 돌은 살아있는 유기체는 아니지만 생명력이 귀결된 상태로 해석되며, 식물의 이미지는 자연의 온갖 아름다움과 호흡하고 교감하는 상태로 순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라는 해설은 바로 이러한 내용에 대한 부연 설명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작가가 설정한 자연에 대한 경계에는 생물, 무생물과 같은 인간 중심의 구분은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마저 모호한 일종의 천인합일의 가치관, 범신론적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지예_Litho-Garden_금호아트갤러리_2004
임지예_Litho-Garden_금호아트갤러리_2004

작가의 경우 일정한 과정을 거쳐 오늘의 작업에 이르고 있다. 초기의 작업은 수용성 안료의 특성을 적절히 발휘한 사실주의적 묘사가 두드러지는 작업이었다. 객관적인 자연물의 상태를 색채와 명암 등 서구적인 합리성을 바탕으로 조형화 하였던 이 시기의 작업은 대상이 되는 사물과의 일정한 대립 관계가 감지되는 것이었다. 즉 사실적인 묘사와 관념적인 사유가 여전히 상호 독립적인 것으로 존재한 경우이다. 이후 작가의 작업은 점차 절제된 형상과 정돈된 이미지로 환원되면서 자연물에 대한 관념화를 구체적으로 시도하게 된다. 이른바 '快'의 개념은 이 시기에 점차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시기의 작업들은 비록 바위와 같은 자연물을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으나 이미 자연계의 그것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관념화된 상징물로 화면에 등장하였다. 둔중한 중량감과 흑백으로 처리된 정교한 질감의 표현은 자연물이라는 사실성, 서정성 등과 같은 일반적인 가치에서 벗어난 사변적인 형상이었다. 이로써 작가는 비로소 선 경험과 의식의 다양한 변화, 기억의 편린 같은 관념적인 내용들을 화면 속에 수용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한 셈이다.

임지예_Litho-Garden_금호아트갤러리_2004

이를 이어 나타나는 근작들은 「litho-garden」이라는 새로운 가치 개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화면이다. 'litho'라는 돌(石)과 'garden'의 뜰, 정원의 합성어로 이루어 진, 이른바 '돌의 정원'으로 번역될 수 있는 새로운 작업들은 꽃이라는 자연물에 바위가 지니고 있는 질감적 이미지를 투영한 것이다. 상호 이질적인 내용들을 중첩함으로써 발생하는 충돌과 모순, 그리고 이들의 이질적인 조화와 이를 통하여 발현되는 환영 등이 바로 새로운 작업들의 조형적 구조를 이루는 것들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바위의 이미지는 앞서의 설명과 같이 "비록 유기체적 생명체는 아니지만 생명력이 귀결된 상태를 의미하며, 식물은 바로 천지 만물과 교감하며 호흡하는 순환적 의미"를 상징하는 의미 있는 이미지들인 것이다. 확대되어 진 꽃들은 생태적 사실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수묵 특유의 침잠된 흑백의 구조 속에서 바위의 질감 이미지들과 합성됨으로써 전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꽃이라는 특정한 사물이 지니고 있는 서정적 감수성에서, 그리고 이러한 자연물을 '자연의 온갖 아름다움과 호흡하고 교감하는'것으로 풀이하는 작가의 해설에서 일종의 감상적, 혹은 유미적 해석 경향이 드러나고 있지만, 작가의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快'는 긍정적이고 건강한 기운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돌의 정원'은 바로 이러한 긍정적 기운을 바탕으로 경험과 내면 깊숙한 곳에서 길러 올려진 의식의 단면들, 그리고 삶에 대한 단상과 기억의 조각들로 이루어 진 생의 기록을 정리하고, 또 도피시키는 일종의 비밀의 내밀한 공간인 셈이다. 비록 사변적인 관념이 조형에 앞서는 경향이 있지만 작가의 은밀한 정원, 비밀스러운 공간은 정해진 단계와 순서에 따라 점차 그 모양새를 갖추어 가고 있다 할 것이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사물을 통하여 사변적 내용을 유추해 낼 수 있음은 작가의 '정원'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과 무한한 여지를 담보하는 것이다. 연륜과 조형 경험의 축적에 따라 작가의 '정원'은 더욱 풍부해 질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정원사로서의 작가의 행복한 산책에 필수적인 조건이 될 것이다. ■ 김상철

Vol.20040413b | 임지예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