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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413_화요일_06:00pm
유아트스페이스 전시기획공모 선정展
유아트스페이스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1-6번지 Tel. 02_544_8585
기억의 파편, 낮선 풍경의 지도 ● 어떤 사람이 어떤 순간에 대상을 관찰하는 일은 언제나 그가 전에 본 것, 생각한 것, 배운 것들에 영향을 받는다. 도움을 주거나 방해를 받는 것이다. 정신의 모든 능력은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의 그림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협동하게 된다. 어떤 대상을 재현한다는 것은 그 대상의 특성 일부를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상의 재현은 '사진적' 외양과 크게 달라짐(이탈)으로써 오히려 그 목적이 가장 잘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이것은 다이어그램(도식)들에서 잘 증명된다. 예를 들면, 런던의 지하철지도는 아주 분명하게 표시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그 디자인의 조화가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이것은 필요한 표상학적(表象學的)특성(typological property)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하학적 디테일을 버림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성취하고 있다. 모든 길은 직선으로 환원되어 표시되고, 모든 각은 90°와 45°의 단 두 가지로 환원되어 있다. 이 지도는 상당한 양을 생략, 왜곡하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아주 잘 보여주는 적절한 그림이다. (루돌프 아른하임, 김춘일 역, 『미술과 시지각』, 미진사, 1995, p.161~162)
우리는 매일 이러한 기호와 도표 그 안에서 삶을 누리고 있다. 거리의 신호등, 교통표시판, 문자와 그림, 번호표, 암호, 수학기호, 분자모형 등 우리 눈이 이해하는 모든 것들이 기호이다. 우리는 기호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고 기호에 의해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기호는 우리의 일상성 속에 가깝고 깊이 자리하고 있어 기호로부터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 작용은 모든 일상을 총괄하고 있다. 인간은 체험적 시간과 공간사이에 존재하며 철학과 심리학사이를 채우고 있는 상징체의 창조와 의미작용들로 이루어진 즉, 기호들로 묶여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체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 기호들인 것이다. 인생은 기호와 더불어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인생자체가 기호의 삶과 일치되는 것이며, 인간은 기호에 의해서 외부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들의 세계로 환치해 그 안에 안주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한마디로 기호들이 들락날락하며 인간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기호들의 놀이터이다. 인간과 기호들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곳은 우리의 마음뿐만 아니고 우리의 육체까지 포함한다. 기호가 영향을 미치는 공간-그것을 인간이라고 재 정의해 볼 수 있다. (김경용, 『기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4, p.144)
정재호의 캔버스는 기호와 문자로 화면을 가득 매움으로서 개인의 상상력과 가상현실을 지도화(mapping)한다. 귀국이후 그의 작업과정은 캔버스가 아닌 화판을 켜고 바탕을 빽빽이 매우는 대리석가루를 바르는 과정부터 시작된다. 화판으로 스며드는 대리석 가루와 아교의 바탕 위에 다양한 색채의 면들은 세밀하게 중첩되어 분할된다. 바탕의 면분할은 수학적으로 엄밀한 기하학적 세계보다는 인접하는 색면 그 자체의 미묘한 여운의 결합으로 생겨난다. 그리고, 기호ㆍ수학적 공식ㆍ분할된 이미지들과 유기적 선들은 단순한 면의 분할 위에 그것으로 하여금 서로 연결되어 유기체를 형성한다. 화폭에 형성된 카오스의 중첩을 관통하고 정지돼 있는 면들에 리듬을 부여하는 것이다. ● 면과 선, 기호와 분할된 이미지 등 반복되는 과정 속에 두터워지는 오일칼라의 다양한 두께와 깊은 색감은 복잡한 구도만큼이나 시각적 계산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긴장된 선과 빠르게 교차되는 선 높은 채도와 강렬한 원색으로 때로는 빠르고 힘차게 때로는 느리게 율동 하듯 리듬을 타면서 하나의 재료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표현을 다원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 지는 현란한 색채와 여백의 혼재 양상은 다원화된 세계에 대한 팽팽한 긴장과 질서를 반영한다. 정재호는 대상을 그대로 제시하지 않고 일부의 특성만을 관찰하고 얻어지는 우연적인 형태와 색채에 사로잡혀 있다. 디테일을 생략하거나 확대해서 적절한 선택을 하고 사물의 주어진 질서를 재배치하여 시각적 환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언어적 행위 즉, 수학적 공식이나 기호들은 자신의 사고를 통해 자의적 언어로서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화면을 오가며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그가 머무르는 정신적 여행의 지표로서 표류하고 있는 자유로운 에너지의 발산이다. 이는 유학시절 혼란 속에서 위치와 방향을 따라 지도를 찾아 헤매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다. 유학생활에서 시작된 새로운 환경과의 만남은 그의 작업에 생소하고 서투른 광경에 대한 그 안에서 또 다른 자아로 분열되고 새로운 무질서를 형성하여 색채와 언어, 기호, 복잡한 선들로 이어지고 있다. ● 언어와 기호를 모티브로 하는 이번 작품들은 캔버스 위에서는 물감의 중첩과 오일칼라의 풍부한 깊이를 통해 시간성의 암시를, 전통적인 붓작업에서 벗어나 테이핑과 시트지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Wall Drawing" 작품에서는 캔버스를 떠난 확장의 개념을 포함하여 작품과 공간의 또 다른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드러나는 것과 감추어진 것 사이에 존재하는 동양적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그의 화폭은 새롭게 구성된 도시의 풍경을 카오스적으로 구현하고 , 능숙한 표현보다는 일상적인 순수함에서 얻어지는 평면의 자유로움으로서 비전형적 가능성을 이끌어 낸다. ■ 신경아
Vol.20040411b | 정재호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