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의 빛과 시간

천경우 사진展   2004_0410 ▶ 2004_0522

천경우_5 HOUR INTERVALS_흑백인화_2001

초대일시_2004_0410_토요일_05:00pm

작가와의 만남_2004_0515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1:00am~06:00pm

한미사진미술관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20층 Tel. 02_418_1315

사진술의 초기, 작은 상자 안에 형상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 오랜 시간 카메라를 노려보며 인내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천경우의 인물들은 경직된 자세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앉아있다. 그렇게 해서 필름 위에 쌓인 무수한 빛의 입자와 시간의 단편들은 인화지 위에 마치 환영과도 같은 모호한 형태를 출현시킨다. 현실의 장면으로부터 인화지 위에 마치 환영과도 같은 모호한 형태를 출현시킨다. 현실의 장면으로부터 물리적인 시간과 구체적인 형상을 소거함으로써 상상력을 복원하고 리얼리티를 실현시키려 하는 그의 행위는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영혼에 관련된 원시적이고 신비한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의 사진은 가장 근원적인 요소는 확정되지 않은 카오스적인 형태 가운데에 내재한다고 믿는 동양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가 실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원래 지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그런 애매하고 순수한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경우_300 times no.3_흑백인화_2004
천경우_300 times no.2_흑백인화_2004

서구에서는 순간과 지속은 시간에 대한 개념을 규정하는 두 개의 대립 항으로 이해되어 왔다. 사진에서의 실재에 대한 인식은 이 두 개의 대립 항을 잇는 연속된 선상에 불안정하게 걸려있는 현재적인 찰나의 절단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것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사진이야말로 불가시의 시간을 계측화하고, 결정적인 순간의 신화를 실현시키는 가장 완성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천경우의 경우 시간은 한 순간을 잘라낸 날카로운 점이 아니라, 일정한 길이로 이어진 선으로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사진에서 가령 한 가족의 구성원들이 같은 의자에 번갈아 가며 자신의 나이와 동일한 시간만큼 앉아 있지만, 그들이 그 곳에 머물렀던 몇 십 분인가의 시간의 단위는 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하나의 고리로 이어진 순환적 존재라고 하는 불교적 윤회의 개념을 먼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한국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은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영원히 반복된다 무한하게 펼쳐진 장소에서 삶과 죽음이 영위되고 있을 뿐, 시간은 결코 잘라낼 수도 특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천경우_Untitled(110)_흑백인화_2003
천경우_Untitled(116)_흑백인화_2003

얇은 종이 위에 재현된 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깊고 무거운 질량을 가진 그의 이미지에서는 끊임없는 미세한 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 상의 떨림이나 희미한 대상의 윤곽은 예전에는 솜씨가 서툰 사진가에게서만 나타나는 명백한 실수였다. 천경우는 사진가와 모델의 의식을 관통해서 내려간 어두운 곳에 떠도는 역사의 시간을 정착시킨다. 그는 인물을 찍고 있지만 인물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진에는 현재의 시제의 단편적인 현상들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와 관계의 메타포로서 축척 되어 있다. 그의 사진에서는 영혼이라고 밖에는 부를 수 없는 무엇인가가 흐릿한 상의 안쪽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라 보는 사람의 의식 가운데에서 공명을 일으킨다. 불가사의하게도, 그 상이 외관의 정확한 재현에서 거리가 먼 것이면 그럴수록 어떤 종류의 리얼리티의 심도가 강화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천경우_EIDOLON no.1_흑백인화_2003

직접적인 경험을 은폐하는 베일을 세계를 계측 가능한 것으로 질서 지우려는 사진가들에게 있어서 사진은 흔들림 없는 세계관을 실현시키는 명료한 지가의 대체물로 인식되어왔다. 그들은 사진의 진정성이 대상과의 우연한 조우에 의해서만 성립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오래 동안 사로잡혀왔다. 하지만 시간을 고정시키거나 영속시키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순간들을 집적시켜서 완전한 시간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천경우의 경우도 처음에는 그랬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는 감광물질의 안쪽에 축적된 시간과 광선의 물리적인 총화 이상의, 인간존재의 아우라 같은 것이라고나 불러야 할 무엇인가가 떠돌고 있다. 매몰된 인간의 감각과 정신을 되살려냄으로써, 토막으로 잘려져서 눈앞에 제시되는 현실을 보다 깊고 자유로운 사유의 공간으로 확산시키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경우의 사진을 보는 한, 그가 노출시간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건조한 광선에 인간의 숨길을 불어놓고 계량화된 시간을 자연의 살아있는 시간으로 회귀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 김승곤

Vol.20040410a | 천경우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