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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407_수요일_05:00pm
공화랑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번지 Tel. 02_735_9938
내부를 비추는 외부 ● 외부는 내부가 스스로를 비추러오는 거울이다. 풍경은 그렇게 보는 이의 내부와 연결되어있다. 풍경은 관찰자의 외부에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풍경을 바라보는 행위는 바로 풍경과 그 풍경을 앞에 둔 인간과의 관계 그 자체이며,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을 관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구의 투시법은 객관적으로 질서 잡힌 재현을 재현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투시법적 구축은 보는 행위를 관찰자의 육체로부터 찢어 놓는 것, 시각을 탈육체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풍경을 보는 이의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체로서만 상정한다. ● 그에 반해 동양의 산수화는 자연에 대한 관조의 개념성을 바탕으로 자리한다. 보는 자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완결된 공간이 아니라, 그 속으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역동적인 장소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산수화는 보는 이의 머리 속에서, 정신적인 활력을 자극하면서 생성되는 지점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림은 하나의 매개로서 위치하고 단서처럼 자리한다. ● 그 그림을 징검다리 삼아 실재 자연을 소요하고 완상하며 대지의 땅기운과 청량한 숲의 내음과 수런대는 물소리와 시원한 하늘의 기운을 온 몸으로 흠뻑 맞아들이는 가상의 체험을 만끽하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기억 ● 이종송은 한국의 산에 대한 기억을 형상화했다. 그림 속의 산은 구체적인 장소로서의 산이자 산이 위치한 공간에 대한 인식의 기호로 자리한다. 구체적인 산의 형상을 빌어 그가 이해하고 파악한 공간에 대한 조감을 단순화시키고 언어화시킨 그림이다. ● 그래서 벽화양식을 빌어 그린 이 채색산수풍경은 회화적이자 디자인적이며 장식적이자 언어적이다. 그림이자 지도이며 풍경이자 산수이고 또한 채색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투명하고 밝고 맑아서 수묵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바탕으로 처리된 흙에 의해 전체적인 미감이 자연스럽고 은은하다는 점이 독특하다. ● 그는 오랜 시간 즐겨 산행을 하고 특정한 장소, 공간을 답사하면서 얻은 시각적 체험과 감각들을 형상화했다. 여행과 산행이 그의 삶의 주된 부분이다. 답사와 기행이 얽혀있고 산행과 관찰이 스며들어 이룬 이 체험적 '산수풍경'은 자신의 여정에 대한 기록과 경험에 대한 이미지다. 대지에 바짝 붙어 다닌 발로 그린 이 그림은 특정 공간에 대한 해석에 근거한다. 그래서 그 그림은 산에 대한 체험적인 시선, 육체화 된 시선의 여정을 보여준다. 달리 말해 그의 그림은 자신의 몸으로 흩어나간 공간, 장소에 대한 기억이다. 땅에 붙어나간 이 수평의 의지가 결국은 공간에 대한 입체적 이해로 트인다.
움직이는 산 ● 그는 자신의 그림에 '움직이는 산'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제목은 그가 지향하는 그림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낸다. 모든 것은 실재이면서 동시에 끝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동양화에서 중요한 것은 물리적 현상의 재현이 아니라, 현상의 경험이었다. 결국 그 응시법은 다원적 시점이고 움직이는 시점이 된다. 아울러 복판에 내재한 시점이 그것이다. 시점을 풍경의 복판으로 옮겨가는 것, 그림 안에서 움직이는 관점은 다름 아닌 '실존의 시선'이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땅의 물리적 위치가 현실이 아니라 그 물리적 위치를 다시 내려다 볼 수 있는 어떤 새로운 공간 속의 위치가 인간의 현실인 것이다. 당연히 수평선과 소실점은 불필요하다. 아니 그것은 세계를 고정시키려는 인간의 맹목을 창백하게 반영할 뿐이다. 그래서 동양화는 사실적이기보다는 심리적 또는 지적 경로를 통해서만 독해되는 그림이다. 이종송은 그러한 전통적인 동양화의 시방식, 움직이는 시선이자 실존의 시선을 새삼스럽게 되살려낸다. 그에 덧붙여 겸재를 골간으로 한 우리 전통회화의 좌표를 더듬으면서 진경산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이러한 것들이 밑바탕이 되고 그 위에 남한 국토의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직접 체험한 여정과 그에 의한 충실한 기록이 투명하게 겹쳐져 올라온 것이 그의 그림이다. 그런데 그 산수가 일반적인 실경산수 내지는 답사와 여행체험을 삽화적으로 그려낸 그림들과 분리되는 지점은 전통산수가 벽화기법들과 민화적인 도상처리와 맞물려 불거진 독특한 구성에 있다. 전통에 대한 철저한 인식론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에 따른 재료와 기법, 형식 역시 세심하게 배려가 되는 한편 자신의 몸으로 직접 경험한 것들을 통한 여과가 작동하는 그림이다. 물론 이 점에서도 그림이 자칫 장식화 되는 처리와 지금의 벽화기법이 전통산수의 시방식을 효과적으로 연출해내는 한편 동시대의 풍경에 대한 이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느냐는 문제는 별도로 남는다.
흙 벽화 산수 ● 벽화기법을 활용하여 독특한 채색산수의 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이종송의 산수그림 역시 전통에 기반하여 독창적인 산수의 해석으로 발전시킨 경우에 해당한다. 더욱이 그는 민화적인 기법에 대한 연구를 통해 통속적이면서도 민중적인 정서와 힘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불화를 그리던 전통기법의 하나인 이 흙 벽화 기법을 끌어들여 여기에 벽 대신 나무와 알루미늄으로 만든 패널을 사용해 그린 이 그림들은 벽화와 채색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무패널에 마대를 입히고 여기에 황토, 백토, 석회와 석분, 모래 따위를 자연에 얻은 접착제와 섞어 바른 다음 흙이나 천연안료, 먹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데 이런 공정은 세심한 배려와 꼼꼼한 처리, 부지런함을 동반한다. 아마도 이 기법 자체가 작가의 체질과 감성에 잘 부합하는 듯 하다. ● 앞서 언급했듯이 천연안료로 채색된 이 그림들은 우리의 전통적인 자연관과 보는 방식을 드러낸다. 작가에 의하면 부석사 조사당 벽화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하게 되었다는 이 채색산수들은 실경에 근거하게 되면서도 작가의 독특한 미감에 의해 재구성된 산수를 보여준다. ● 자연의 본질, 즉 자연이 살아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부감법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있으며 민화처럼 약호화 된 나무들의 표현과 실제 바위산들과의 미묘한 조화가 청량하게 펼쳐져 있다. 소나무의 표현, 폭포와 구름의 형상화가 시적이고 시적인 만큼 감성적이다. ● 그래서 그림들이 무척 따스하고 정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아기자기하고 감각적이며 세련됨 미감과 함께 소박하고 풋풋한 정취 또한 부드럽게 드리워진 그런 그림이다. ■ 박영택
Vol.20040407b | 이종송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