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늘을 날기 시작했는가

이가경展 / LEEKAKYOUNG / 李佳景 / video   2004_0407 ▶ 2004_0425

이가경_올라가는 사람들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02:00/loop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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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4_0407_수요일_06:00pm

인사미술공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0)2.760.4722

이가경은 어떻게 하늘을 날기 시작했는가_이가경의 자전적 애니메이션 ● 이가경의 애니메이션 작업이 서울의 관객을 찾아 앵콜 쇼를 갖는다. "전시물은 애니메이션 네 편과 그것의 원화그림 구성물, 그리고 설치 비디오 작품이다." 이것들은 2001년에서 2003년 사이에 미국에서 작업한 것들이다. 각각 4분 30초, 3분, 7분 길이의 애니메이션이다. 목탄 드로잉과 에칭 등 판화기법을 주로 썼고 손수 만든 인형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가경_올라가는 사람들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02:00_2003

나는 그의 작업을 지난 2월초 인천 신세계갤러리에서의 개인전 때 보았다. 드로잉이 움직임을 만날 때, 그리고 사운드를 만날 때, 어떤 시와 기적을 동반하는지! 월리엄 켄드리지나 이가경의 작업처럼 목탄과 지우개를 번갈아 써가면서 같은 그림 종이 위에 조금씩 빗겨서 덧그려나간 드로잉의 흔적을 그 지워진 흔적과 함께 움직이는 영상으로 보는 감흥은 대단하다.

이가경_애니메이션 「비오는 날」 중 '그의 작업실에서'_종이에 에칭_8.5×20"_2002

목탄이 지워지고 뭉개진 자국들을 검은 연기처럼 장엄하게 남기며 '나'는 두팔 벌려 새처럼 펄럭펄럭 하늘 위로 나아가거나 (「하루」), 혹은 침대로부터 지친 몸을 일으켜 커튼을 치러 창가로 휘여휘여 나아간다 (「선인장에 물주기」). 여기서 지운 자국과 그 엉성한 움직임은 상당한 시적 흥취와 존재론적 장엄함까지도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그림의 시작을, 그리고 존재의 조건과 지각의 원초성을 새롭게 눈을 크게 뜨고 보게 하는 감동이 거기에 있다.

이가경_애니메이션 「선인장에 물주기」 중에서_00:07:00_2003
이가경_애니메이션 「선인장에 물주기」 중에서_00:07:00_2003
이가경_애니메이션 「하루」 중에서_종이에 에칭_9×12"_2001~2

이가경의 애니메이션은 좀 거칠고 자유로우면서 부드럽게 서정적인 1인칭 그림이다. 판화가로서의 내공이 그의 그림에 두께와 설득력을 더하고 있는 점도 빠뜨릴 수 없는 즐거운 발견이다. 단지 그림만이 아니라 이야기도 1인칭 이야기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림에 대한 그림 곧 화가의 존재론에 대한 그림이기도 한다. 삭막하고 건조한 도시공간과 그 소음 (자동차, TV 등)으로부터의 피난처인 나만의 고적한 공간 속에서 '나'는 그림을 그리고 그림 속의 '나'는 새처럼 하늘을 난다(「하루」). 그림 그리기는 꿈꾸기와 고독과 자유의 동의어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설정은 「비오는 날」에서도 동일하다. 이글루 비슷하게 원초적 쉘터(Shelter) 형태로 그려진 공간은 화가인 나의 작업장이자 고독과 몽상과 행복의 은둔처이다. 거기엔 방안을 오가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와 책상서랍을 여닫는 소리, 그림 그리는 소리와 차 마시는 소리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깥은 바람소리와 빗소리 뿐, 그 고요와 침잠의 시간 속에서 그림은 스스로의 시작을 그린다. 그 공간은 이처럼 발생적(그림의 시작)이고 메타적(존재론적 거울)이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는 세상을 지운다. 화가는 이 세상이 지워진 자리에 있다.

이가경_애니메이션 「비오는 날」 중에서_종이에 에칭_23×28cm_2003
이가경_애니메이션 「여행」 중에서_종이에 에칭_9×12"_2001

가장 최근작 「선인장에 물주기」에서의 설정은 이와 좀 다르다. 「선인장에 물주기」는 더 두툼하고 현실적이고 표정이 풍부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이가경은 자신의 시선이 보다 더 현실적인 세계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주인공은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통신판매회사에서 일하는 여자이다. 이 여자의 집 창가와 직장의 창가에 동일하게 놓인 선인장에 나온다. 여기서 선인장이나 녹색의 물줄기, 녹색의 바람은 (앞서의 화가의 그것과는 다른) 더 보편적으로 실재하는 삶의 무거움과 피로에 대하여 아주 힘겹게 겨우 짝을 이루는 작은 위안인 것처럼 보인다. 그 여자가 피곤한 몸을 뉘는, 선인장이 창가에 놓인 그의 집은 (화가의) 비밀의 은둔처가 아니라 실재하는 삶의 무게와 피로를 지고 이 세계의 가장자리에 겨우 존재하는 쉘터의 느낌을 준다. 주의해 보면 이가경의 작업방식엔 정교하고 주도면밀한 게 있다. 이를테면 그의 세 작품 모두 실내 공간에 TV가 있고 그 TV의 스크린에 주인공인 작가의 작업, 곧 이가경 자신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나온다. 그런데 「선인장에 물주기」의 뒷부분에서처럼 그것을 껐을 때는 TV는 단지 주변의 사물 (혼자 국수로 저녁을 때우는 주인공의 모습, 먹자마자 눕는 침대의 모서리 등)을 거울처럼 차갑게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발상과 연출이 범상치 않고 재미있다. 성공적인 사운드 편집이 작품의 내밀함을 안쪽으로부터 살려내고 있는 점도 돋보인다. ■ 성완경

Vol.20040403b | 이가경展 / LEEKAKYOUNG / 李佳景 / video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