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0331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이미지화 된 가상공간 ● 20세기 작가들에게 오랜 동안 관심을 집중시키게 하였던 것은 회화성의 문제였다. 세잔느 이후 재현의 방법에 대한 주관적 제시와 추상에서 보여지는 비재현적인 것에 대한 관심, 그리고 60년대 모더니스트들처럼 직접적으로 회화성을 거론하는 작가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회화적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회화작업을 통하여 시각적 현상에 대한 독창적인 가치의 발견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넘어서 그들만의 특별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한다. 시각적 경험은 공간적 대상에서 시작하여 평면이나 입체로 재현하는 것 뿐 아니라 '시각적 경험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차적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당연히 미학적 과제이지만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표현을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대상에 대한 경험은 시간과 공간, 질료가 개입된 입체적 경험이지만 회화는 그것을 기호화한다. 그리고 작품의 관람자는 그 평면을 넘어서 입체적 사고로 해석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입체적인 표현은 흔히 조각을 연상하지만 평면의 재구성도 입체적으로 보여진다. 그것은 회화적 프레임의 해체에서 시작된다. ● 프레임을 벗어버린 작품은 탈회화적(Post-Painting) 잔상을 보여준다. 유서형의 작품처럼 내부에 그려진 여러 형상들은 회화로 읽혀지지만 그 구조는 프레임의 상관관계로 읽어야한다. 이제까지 화가는 현실의 반영, 작가의 내면을 반영하는 이미지의 생성에 많은 노력을 하여왔다. 잘 알려진 대로 입체적 공간의 재현은 시각적 구조를 르네상스이후 20세기 초반까지 작가의 강렬한 목표이며 강박관념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작가적 주관의 반영이라는 추상의 발견은 작품에서 회화 스스로의 조형 원리의 재현으로 확산되어가게 된다. 추상이 전적으로 개인의 사유와 감정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구조와 존재론을 함께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때 회화는 내적 구조의 제한적 한계에서 시각적 구조의 관심으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미지와 대상의 연계를 벗어버리고 대상의 자리에 놓여진 입체물은 회화의 재현을 의문시하는 소통의 패턴이다. 그리고 구상 회화에서 공간 구조의 변형, 미학적 구조나 서술적 상관관계를 벗어난 자기 지시적 언어로 진행된다. 즉 회화적 가치를 재구성 한 것이 된다.
회화에서 프레임이 사라진 상황은 현실과 이미지의 시각적 분리가 암묵적으로 수용될 때 가능하다. 말하자면 캔바스의 절단된 형태는 사유된 영역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다. 회화영역은 프레임 때문에 그 영역이 제한적이었다. 공간적 한계 안에 모든 이미지를 가두어 놓음으로써 현실과 다른 가치를 만들고자 하였었다. 작가와 관객에 의해 약속된 공간은 어두운 방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미지의 세계와 같았다. 그러나 입체적으로 전개되면서 제거된 프레임은 닫혀진 공간이 아니라 일상으로 열려놓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거기에는 회화적 기호가 그대로 사용되면서 공간의 의미를 붙여준다. ● 작품의 프레임은 일상과 구분할 수 있는 일종의 경계로서 역할을 수행하게된다. 프레임은 작품이 걸려있는 벽면을 분리하며 공간감을 구분하게다. 그러한 격리된 두 개의 공간에서 투시도법의 사용은 한쪽은 진짜 현실이고 기호화된 현실과의 연계로 읽혀지고 의미구성을 형성하게된다.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가 르네상스시대에 투시도법의 사용을 『상징적 형식』으로 해석하려는 것처럼 작가가 투시도법을 사용함으로서 기호화된 공간감각을 만들고 읽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것이 된다. 투시도법은 실제와 가상사이에서 보기에는 유사하지만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활동하고있는 실제 공간과 외적 한계를 구분해 주는 것이 프레임이며 그 안에 투시도적 입체감은 기호 자체로 읽게 된다. 그러한 공간의 인식은 응시를 통해 회화의 내부로 향하게 한다. 그려진 이미지를 읽으려는 욕구와 함께 사유를 적용하여 현실의 일부분에서 얻은 기억을 이미지 안에서 융합하게되는 것이다.
유서형의 작품에서 평면은 거울처럼 반사되는 면과 사슬과 같은 상징적 도상이 있다. 또한 일상적 이미지는 가끔 인쇄물로 꼴라쥬 되어 당연히 현실과의 관계를 다루게된다. 이 이미지들이 다른 면들을 연결시켜주면서 드문드문 끊어져있는 사슬들은 작가의 내면에 자리잡은 감정의 구성이다. 일상적 이미지와 자주 등장하는 쇠사슬은 작가의 심리상태를 읽을 수 있는 상징적 도상이다. 그러나 너무나 쉽게 드러나는 사실들은 오히려 작가의 그러한 의도를 분해시킨다. 그것들과 연관되어진 다른 이미지들, 특히 반짝이는 금속과 거기에 내재되어 있는 허상들은 실제를 작품 안으로 끌어드림으로써 의미구성의 단순성을 벗어난다. ● 거기에는 평면 위의 재현과 입체적 구성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다면체로 구성된 평면들은 우리의 시각을 입체적 대상에서 평면으로 다시 평면에서 입체로 진행하는 복합적인 해석을 하게 만들고 있다. 수직과 수평으로 이어지는 평면과 그것이 이루는 사선이 만나는 공간은 투시도와 유사하게 소실점을 만들게 되고, 공간을 인식하게 하는 투시도법에 의한 공간개념을 사용한다. 하지만 순수한 평면 위에서의 입체적 구성과 다른 입체감을 만들고 있다. 말하자면 유크리트적 기하학을 바탕으로 하는 공간개념 위에 또 다른 입체를 첨가함으로서 이중적 공간감을 보여준다. 이미지로 볼 수 있는 공간감과 실제적인 입체의 구성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가상성 위에 이루어진 또 다른 현실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주관적 추상개념 또한 아니다. 공간개념이 분해될 때 흔히 나타나는 추상적 재현과 다른 형상들을 지니고있다. 현실의 재현이면서 그것은 기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적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회화적 구성을 이차적(二次的) 서술로 풀어간다. 서로 다른 면들이 만들어주는 단면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복합적인 재현을 만든다.
응시는 관람자의 주체적 사고를 통해 대상의 의미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응시는 대상이 있고 없음의 지각뿐이 아니라 대상의 특성을 넘어서 가시적인 것의 문법화에서 이루어진다. 알베르티 이후 계속 발전시킨 평면 위의 입체적 표현은 시각적 표상을 넘어서 회화적 표상으로 전환되면서 좀더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게된다. 따라서 그림은 더욱더 응시를 통해 지각되어질 수 있다. 유서형의 작품에서는 회화적 표현과 입체적 구성을 통해 회화가 상징적 기호들의 집합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조각적인 매스(mass) 위에 벌어지는 회화적 표현은 구성에 대한 이차적 응시를 요구한다. 회화적 공간감 위에 겹쳐진 입체감은 두 개의 연속성을 결합하여야하기 때문이다. ■ 조광석
Vol.20040328b | 유서형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