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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326_금요일_05:00pm
스타일 큐브 잔다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8-121번지 2층 Tel. 02_323_4155
1. 예전에 자주 쓰던 '도회_都會'라는 말이 있다. '도시_都市'라는 좀더 커다란 경제 및 행정구역을 일컫는 말에 비하면 뭔가 아련한 추억이 있을 것 같은 빛 바랜 단어이다. 인구가 많고 번화한 지역을 의미하는 '도회'는 인간 생태 및 환경의 입장에서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갖가지 경험들을 제공한다. ● 한적했던 마을이 점차 분주해지면서 낯설은 건물들이 다투어 들어서고 타지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변화하는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토박이들은 결국 뿔뿔이 흩어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생활사가 오래전부터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도회는 어느 순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커져만 가는 도회 자체의 상업화된 욕망에 잠식되어 하루가 다르게 그 높이와 너비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다. 급기야 메트로폴리탄. 안락하고 호젓한 생활을 보장한다기보다는 삭막하고 냉담한 경쟁과 규칙들에 얽매이게 만드는 피곤한 삶의 연속이다. ● 도회는 굳이 남한의 1960년대 1970년대 '이촌향도_離村向都'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시골사람들에게 '동경_憧憬'의 대상이었다. 어느덧 오늘날 서울사람들에게는 전원생활이 동경의 대상이 되었지만 첨단 물질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도회생활은 떨쳐버리기 힘든 매력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는 장소로 예측할 수 없는 많은 만남과 기회를 만들어 준다. ● 요즘은 시골이라 하여도 험준한 산골이나 낙도를 제외하고는 이미 도회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도 잡동사니 가득한 어수선한 '전방_廛房'이 아닌 밝은 형광등 아래 로또를 판매하는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서고 있다. 물론 그 주변에는 어김없이 이동통신사들의 핸드폰 매장과 티비광고에 나오는 베이커리 또는 패스트푸드 체인점들이 각진 아파트들과 함께 자리잡는다. 이제 시골은 시골사람들의 생활보다는 도회사람들의 막연한 상상에 의해 존재하는 추억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2. 작가 주명덕은 독특한 '도회감성_都會感性'을 지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40여년을 사진과 함께 지내왔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서울이라는 장소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묵묵하게 지켜보았던 까닭이다. 아마도 40여년전 서울의 모습을 돌이켜보고 그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주명덕의 활동을 상상해 보면 그닥 어렵지 않게 왜 주명덕의 최근 사진작품에 대해서 'Cityscape'가 아니라 『TOWNSCAPE』라 명명했는지를 간파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작은 마을이었던 서울이 지구촌에서 무시하지 못할 규모로 커져 왔던 것처럼 주명덕 또한 청년시절 사진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출발하였던 것이 이제는 무시하지 못할 시각 이미지 생산자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눈과 렌즈에 맺혀지는 서울의 풍경은 괴기스럽게 거대하다거나 냉담한 도시가 아닌 만만하고 익숙한 생활의 터전인 도회로 읽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 1966년 『섞여진 이름들』전(중앙공보관)의 홀트씨 고아원 사진에서 출발하여 1999년 『An die photographie』전(금호미술관)까지 주명덕 사진의 묘한 코드는 남한이라고 하는 지역성이다. 그리고 그곳 사람과 자연의 애틋한 현실이다. 이번 『TOWNSCAPE』전은 1989년 『LANDSCAPE』전(서울미술관) 그리고 1999년 『An die photographie』전과 호흡을 같이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의 전시들은 인공의 것이 전혀 없이 자연만으로 이 땅의 표정들을 담아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TOWNSCAPE』전에도 자연은 들어와 있다. 당연히 인공물과 함께 어우러진 도회 속의 자연은 땅의 표정이라기 보다는 가꾸어진 자연이다. 하지만 『TOWNSCAPE』전에도 단 하나 인간에 의해 꾸며질 수 없는 것이 포착된다. 그것은 하늘이다. 이번 전시에서 주명덕은 땅의 표정만큼 다양한 하늘의 표정을 인공 축조물들과 함께 읽어내고 있다.
3.『TOWNSCAPE』전에서 주명덕은 인공 축조물, 자연 조경물, 그리고 하늘이라는 3가지 조건을 묘하게 융화시킨다. 때로는 대립일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주종관계에 놓일 것 같은 이들을 한 화면에 한 덩어리로 포착해 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법이 요구된다. 때로는 비오는 날의 오후를 이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두운 밤이나 잔뜩 흐린 날, 그리고 눈부시도록 쾌청한 날 등을 선택하여 이 셋을 묶었다. 아무래도 각기 다른 표정들을 포괄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좀더 쎈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주명덕은 대부분의 풍경화에서 그렇듯이 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기의 흐름'이다. 주명덕의 『TOWNSCAPE』전이 『LANDSCAPE』전과 견줄 수 있는 힘도 바로 이 '대기의 흐름'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밀도 있게 포착된 '대기의 흐름'은 하늘의 표정을 빌어 더욱 단단해진다. 그런 까닭에 『TOWNSCAPE』전에 출품될 몇몇 작품들에서 유독 하늘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대기의 흐름'만큼 중요한 '시간의 흐름'이다. 물론 그 '시간의 흐름'은 주명덕에 의해 셈해진다. 멀리 조선호텔이 함께 보이는 미도파 골목, 무거운 처마를 지고 있어 짓눌려 보이는 신라호텔 정원, 딱딱하게 각이진 세종문화회관 기둥에 흐드러지게 드리워진 나무그림자, 높다란 교보빌딩 옆에서 마냥 하늘거리는 나뭇잎, 어수선한 조명등이 얽혀있는 홍대앞, 비오는 날 남산타워가 보이는 찻집 창가... 여러 장소와 더불어 주명덕이 가졌던 짧지 않은 시간들이 겹쳐진다. 그래서 주명덕의 최근 사진을 도시가 아닌 '도회풍경_都會風景'으로 묶으려 하였던 것이다. ■ 최금수
Vol.20040326a | 주명덕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