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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32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금산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35_6317 www.keumsan.org
"모든 현상은 개체로서 끝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각각의 스토리와 역사가 있으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신적 에너지가 있다. 나는 그러한 힘을 관찰하고 싶다. 그것이 무엇이며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가에 대해." (이호진) ● 이호진은 'Traveling'이라는 테마의 지난 작품들에서 다양한 문화의 범주를 오가는 움직임의 흔적을 낙서와도 같이 빠르고 즉흥적인 필치로 담아냈다. 그것은 그 움직임의 여정 속에서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들의 발산이자 이동의 기록이었다. 이호진의 근작들은 단순한 이주나 흐름의 연속이 아니라 그가 속한 환경에 대한 보다 구조적인 조망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그는 인터뷰 도중 최근작들의 구성을 설명하면서 'loc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그의 작품이 단순히 흘러가고 지나치는 여행의 공간이 아니라, 복잡다난한 흐름 속에서도 정주하고 관찰하며 자신의 위치를 포지셔닝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암시해주는 단서이다. 작가 자신이 서있고, 바라보고, 사고하는 지점에 대한 위치 설정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듯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하나하나 분명한 장소성을 지닌다. 때로 그것은 그가 보았던 '톰킨파크(Thompkin Square Park)'처럼 다양한 사회적 계층의 사람이 모이는 물리적인 장소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복합적인 내적 상황을 투영하는 심리적 공간을 표현한다. 하나의 좌표에 수렴될 수 없는 이질적 요소들이 이해할 수 없이 뒤섞인 삶의 현상들을 보여주듯이, 그 공간 속에는 상업주의와 정신성, 제도와 실존, 표피적인 것과 심층적인 것, 욕망과 이성이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하나의 소용돌이를 형성하고 있다. 이호진은 그 공간 안에 머물면서 양극적인 요소들이 위험스럽게 좌충우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구조, 어떠한 에너지 덩어리의 진행방향을 주시하고 있는 듯 하다.
이호진의 작업이 갖는 매력은 정신적인 세계와 현실적인 세계가 분명한 경계선으로 분리되지 않고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무언가를 파생하는 교차점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보다 폭넓은 리얼리티를 전망할 수 있게 하는 이러한 교차점은 곧 이호진 자신이 세계에 개입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고급과 저급, 구상성과 추상성, 무형의 선과 기하학적 구조, 현란한 색채와 여백의 혼재 양상은 그가 서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그물망처럼 얽혀져있는 다원적 세계를 반영한다. 천, 고무, 스프레이, 물감, 펜, 스티커 등의 혼성적인 재료들이나, 뒤얽힌 선들과 색채 사이에 파편처럼 숨겨져 있는 자동차, 권총, 엘리트, 흑인소녀, 부처와 예수, 사원, 미키마우스와 상품 로고 등의 도상들은 모두 그 앞에 동시에 펼쳐진 문화들의 이질성을 반영하는 기호들이다. 이호진의 작품 속에서 종종 발견되는 비논리적인 건축 도형들은 이처럼 들쑥날쑥한 이질적 요소들을 수용하여 다차원적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그만의 문화적 공간을 상징한다.
이호진의 작품 속공간의 구성은 평면적 차원 속에서는 팽팽하게 대립되는 듯 보이는 요소들이 보다 넓은 차원 속에서 긴밀한 연계성을 가지고 맞물려 돌아가는 어떠한 법칙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와 같은 '법칙'에 대한 통찰로 인해 이호진의 근작들에서는 결정론적이라고 할 수 있을 운동의 방향성이 나타나고 있다. 거기에는 경험들의 파편이 아니라 그것들을 연결해주고 그 현상들에 목적을 부여하는 필연적인 질서가 발견된다. 그의 그림 속에 소용돌이와 같이 순환하는 구성이나 그 회전의 축이 되는 직선들, 폭발의 이미지, 그리고 re-birth, re-making 등 반복과 순환을 암시하는 're'라는 단어가 종종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순환법칙 속에서 M-TV 화면처럼 가볍고 유희적이고 피상적인 상업세계의 현상들, 그리고 종교나 구도와 같은 정신적인 현상들은 함께 뒤섞여 회전하면서 에너지를 주고 받는다.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들이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의 불가해한 유니온(union)을 만들어가며, 또다시 해체되고 재생됨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 이호진은 이러한 순환 속에서 떠도는 'Traveling'의 단계를 지나 그 안에서 보다 주체적인 포지션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의 자기 역할에 대하여 분명한 로케이션을 찾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변화된 그의 공간은 이 모든 모순된 요소들이 부조리하고 거칠게 뒤섞여 있는 문화현상에 대한 통찰이자 비판이며, 그 현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과 그 힘의 일부로서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 이은주
Vol.20040324b | 이호진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