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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317_수요일_06:00pm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이면서, 동시에 가장 독특한 물질이다. 그것은 동시에 기체, 액체, 고체의 형태로 자연계에 존재한다. 물은 다른 물질의 비중을 재는 척도로써도 사용되며, 지표상의 자연력의 순환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천으로부터 흐르는 물은 계속해서 끝없이 흐른다. 이것은 마치 세대를 전해 내려가는 명성과 같고, 형이상학적 표현으로는 시간 자체의 흐름과 같다. 「논어」에는 특별히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없는데, 공자는 단순히 흘러가는 물의 흐름으로 시간의 흐름(passing away)을 비유했다. '흘러가는 것'은 보통 시간과 인생 그 자체를 말한다.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원리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인간의 본성을 지배하는 원리들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물은 부드럽고(soft), 약하며(weak), 단단하고 강한 것에 양보한다. 물은 항상 양보하고 결코 다투지 않으며 저항을 최소화하는 길을 따른다. 하지만 물은 길에 놓인 어떤 장애도 극복하고 가장 단단한 돌도 닳게 할 수 있다.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편린이다. 사진의 시간은 자연적 물리적인 사물의 상태로서 정착되어 있으나, 동시에 그것을 넘어선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이면서 과거이고, 과거이면서 현재라고 하는 현재와 과거의 동시성(同時性)은, 자연적 물리적 시간 체계를 초월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까? 그러므로 물의 움직이는 시각현상을 통해서 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작업에서 시간성을 보여주고자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계곡을 선택하여 사계절의 변화에서 물의 다양한 현상들을 관찰하고 물질순환의 가장 기초적인 요소로 물을 인식하고 셔터속도를 선택적으로 사용하여 물의 물리적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정지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온도변화에 따라 변하는 자연상태의 물을 치밀하게 관찰하여 거센 흐름, 잔잔한 흐름, 바람에 흔들리는 수면의 움직임, 초겨울의 살얼음, 끊임없는 변화하며 쉼 없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자하는 물의 소리와 표정을 읽어 내려고 노력하였다. 물에서의 시간성은 동양에서의 윤회설과 일맥상통하고 있는데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변하는 물의 모습에서 생명현상의 원천으로서의 순환하는 물의 속성을 인지하고 시간의 흐름과 윤회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과거 중국 문화권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 나아가 우주의 삼라만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여서 순간순간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지고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 변화 무쌍하고 무상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현상의 근저에서 불변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 또한 병행되었다. 본인의 사진에서 등장하는 물은 계속해서 끝없이 흐른다. 그것은 사라져 가는 시간의 과거와, 소멸과 정지를 남길 현재와, 시차를 바꾸어 존재하게 될 미래에 대한 시간 자체의 흐름과 같다. ■ 허정호
Vol.20040319b | 허정호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