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0317_수요일_05:00pm
인사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1층 Tel. 02_735_2655
더 높은 실재의 공간으로 ● 김소연은 빛과 공기를 화면에 실어낸다. 빛과 공기는 만물의 근본적인 요인인 까닭에 오랜 기간 철학자들과 미술가들의 관심사가 되어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분주한' 현대인에게 이런 문제들은 전혀 눈길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 시대의 불행은 궁극적인 실재를 바라보지 못하고 '물질세계의 뻔지르르한 광택'에 결박당하여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더 높은 곳에 올라가 근본적인 문제를 살피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김소연은 온갖 욕망에 속박된 문화를 따라잡기에 급급한 세태를 거슬러 인간과 자연의 기본적인 문제를 뚝심 있게 탐구한다. ● 김소연이 말하는 빛과 공기는 그렇게 복잡하거나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다. 조금 여유를 가지면 당장이라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 "눈부시게 빛나는 빛과, 피부에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공기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게 해주었고 자유로운 에너지를 제공하였다. 또한 빛이 시시각각 이루어내는 다양한 그림자의 형상과 빛을 통하여 드러나는 세상의 각가지 색채, 공기가 흔들고 가는 자연의 잔잔한 움직임은 너무도 흥미롭고 아름다웠다."_김소연의 석사학위 논문 중에서 ● 작가는 과학자가 아니므로 빛과 공기를 규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 경험을 조형언어로 그것의 느낌을 전달할 뿐이다. 그의 경험은 회색빛의 고층빌딩에 사는 도시인들, 숨막힐 듯 목을 조여오는 매연, 하늘조차 올려다볼 겨를 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삶에 무엇이 빠져 있는지 확인시킨다.
그에 의하면,'공기는 여유로운 마음'을 주고 '빛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갖가지 색채가 아름답다'고 말한다. 자연의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 그것을 까마득히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빛과 공기가 이루어내는 다양한 측면에 감동을 받아 이것을 작품테마로 기용하고 있는 셈이다. 김소연처럼 세상을 처음 본 듯이 산다면 우리 모두가 시인이요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소연의 그림에서 빛과 공기의 표현이 두드러진다. 불꺼진 방에 소리 없이 들어오는 공기,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통한 빛의 강조, 빛과 공기가 지닌 비물질적 속성을 상징적인 형상을 통하여 담아내기, 백색의 여백을 비워 빛이 머무는 공간으로 배치하기, 수묵의 은은한 농담으로 빛과 공기의 유동성을 부드럽게 포착하기 등등. ● 빛과 공기를 나타내기 위해 그는 수묵의 농담과 번짐을 즐겨 사용한다. 은은하게 번진 수묵에 바람을 실어낸다. 파도가 오가면서 만들어낸 바닷가의 물결자국처럼 바람결을 낸다. 그것은 자연의 지문(指紋)이요 날인(捺印)이다. 이와 함께 그림자가 짙은 먹으로 덧칠해지는데 이 그림자는 빛의 효과를 한층 강화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아침이 가깝다는 말처럼 그림자가 진할수록 빛의 밝음이 더 강렬해진다.
어떻게 하면 빛을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 연구하던 끝에 김소연은 그 해결책을 얻어냈다.'지우기 수법'이 그것이다. 그는 전체적으로 수묵을 바탕에 칠한 뒤 수묵이 투명해질 때까지 닦아낸다. 많이 닦아낸 부분은 밝은 부분으로 남게되고 덜 닦아낸 부분은 어두운 면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때 자연스럽고 유동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번지기 수법을 병행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유동적인 공기의 흐름을 더 섬세히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 화면 구성에 있어 김소연은 창의적인 구성도 마다하지 않는다. 화면을 두 칸이나 세 칸 혹은 네 칸으로 나누어 다중구성의 화면을 연출하는 등 전통에 얽매인 동양화의 콘텍스트로부터 자유롭다. 이런 구성 자체를 선택하게 된 것은 단순한 의욕 때문이 아니라 테마에 걸맞는 장치로 그런 구성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공기의 흐름은 이어지다가 채색된 면을 만나면서 끊기고 다른 칸에 이르러 새로운 출발을 보인다. 이 연속과 단절의 효과는 한층 그의 그림주제를 배가시킨다. 위에서 언급한 빛의 밝음이 진한 그림자로 인하여 더 부각되듯이 김소연은 공기의 흐름도 단절을 통하여 유동성의 자연스러움과 연속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하기는 이런 대조법은 그의 그림 전체를 관통하는 주된 요소이다. 그는 직선과 네모꼴과 같은 기하학을 띤 물질적인 세계와 무형적이고 유기적인 형상을 띤 비물질적인 세계를 동일 화면에 배치시킴으로써 자신의 표현의도를 적극적으로 나타낸다. 전자가 정확한 계획과 구성의 통제를 받는다면, 후자는 번짐과 같은 우연적인 효과를 통해 이루어진다. ● 빛과 바람, 불 등의 비물질적인 요소들은 미술작품의 확장을 가져온 중핵적인 요소이다. 실재의 빛과 바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여기에 자족하기보다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비가시적이요 비촉각적인 존재를 만나고 싶어한다. 이 갈망은 우리가 숨죽이며 기다리는 것의 실재 및 확실성에 대한 확고한 징표요 모형이 되기 때문이다. ●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 이 본원적인 갈망을 한층 더 촉진시킨다. ■ 서성록
Vol.20040317a | 김소연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