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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303_수요일_05:00pm
주최 및 주관_독일 ifa_주한 독일 문화원_갤러리 현대 협찬_루프트 한자 항공사_힐튼 호텔
관람시간_10:00am~06:00pm 입장료_일반 4000원 / 학생_단체 3000원
비디오상영_2004_0304_목요일~0331_수요일 작가 아뜰리에 스케치 / 작가가 직접 작업한 영화
전시설명회_2004_0304_목요일~0331_수요일_03:00pm
세미나 2004_0312_금요일_02:00pm_학생/일반_무료 2004_0319_금요일_02:00pm_학생/일반_무료
워크숍 2004_0313_토요일_02:00pm_학생/일반_수강료_10,000원 2004_0320_토요일_02:00pm_학생/일반_수강료_10,000원
갤러리 현대 서울 종로구 사간동 80번지 Tel. 02_734_6111
나의 마이스터-위커 My Meister-Uecker ● 얼마 전 뉴욕에서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의 아들이 그의 아버지에 대해 만든 'My Architect'라는 제목의 다큐멘타리 영화를 보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빛과 침묵의 건축가 루이스 칸의 작품과 그의 삶의 태도를 평소 좋아하던 터였지만 그의 아들이 만든 영화를 보곤 그가 더욱 좋아졌다. 나는 나의 마이스터 위커를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1. 위커와의 만남 ● 내가 뒤셀도르프 미술대학(Duesseldorf Kunstakademie)을 다니던 1986-1992년 시기에는 위커(Guenther Uecker)를 비롯하여 백남준, 게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벤른트 & 힐라 벡허(Bernd & Hilla Becher) 등 독일 현대미술의 일세대들이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이었고 역시 그곳 미술대학의 교수로 있던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막 작고한 직후였다. 난 이미 서울서 대학원을 마친 후였지만 독일에서 기초과정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새로 입학을 했고 그러기에 지도교수를 택하는 것에 더욱 신중을 기했다. 그 지점에 위커가 있었다. 독일서 지내는 오랜 동안 가난한 나라 코리아에서 온 조그만 여학생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 고맙게도 위커는 언제나 늘 긍정적으로 나의 편이 되어 주었다. 존재의 영원한 긍정, 그것은 나를 언제나 감동시켰고 예술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마음의 눈과 힘을 길러 주었다. 위커는 물론 독일인이지만 그의 정신세계의 복합적인 문화 영향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유독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학생들을 받아들였으며 그들과의 직접적인 대화와 이해를 시도했다. 또한 그가 늘 주장하는 '생각과 행동은 하나다' 라는 생각 하에 늘 인간 존재에 대한 경험과 함께 살아있는 예술과 세계 탐구를 중요시했다. 독일에 있는 동안 체노빌 사건이 나고 걸프전이 터졌으며 독일이 통일되었고 소련은 붕괴되었다. 이렇게 세계 속에서 많은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마다 우리는 더욱 예술의 진정한 역할과 기능, 그리고 예술만이 아닌 진실된 삶 속에서 느끼고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실천하였다. 그의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포용력 있는 참으로 인간적인 교육방법에 누구나 감탄했으며 그를 따르고 좋아했다. 그리고 위커가 가끔씩 베풀어주던 그의 단골 이태리 식당 루이지에서의 근사한 저녁 초대는 그윽한 와인과 함께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게 우리를 마냥 즐겁게 했었다. 이럴 때면 우리는 모두 위커 만세! 그 시절이 지금 너무도 그립다.
2. 1988년 봄, 서울 ● 1988년 봄, 서울이 올림픽으로 한창 준비중일 때 나와 나의 지도교수인 위커는 올림픽 조각공원의 작품 설치 문제로 독일에서부터 서울을 방문했었다. 근 한달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작품도 했고, 서울 곳곳, 그리고 경주 등 몇몇 주요한 우리 유적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 여행 중 특히 잊지 못할 기억 중의 하나는 위커가 한국의 평범한 墓를 보고 싶다하여 어느 날 망우리 공동묘지를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때마침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어 그곳은 매우 적막하였고 우리는 천천히 걸어 그 묘지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갔었다. 우리가 서있던 묘지 산꼭대기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은 삶과 죽음을 한눈에 비쳐 주었다. 우리가 서있던 바로 그곳은 온통 죽음의 세계이고 산아래 저 멀리로는 유유히 한강이 흐르며, 그 강 건너에는 그때 막 저녁 불빛이 켜지기 시작하던 삶의 세계였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오랫동안 그곳에 서있었다. 인간의 영원한 고향은 어디인가. 여기인가, 아니면 강 건너 저기인가. 대지가 커다란 하나의 몸체라면 우리의 무덤은 영원히 우리를 안아주는 대지의 자궁이 아닌가. 순간 문득 위커는 땅 밑으로 검은 구멍이 휑하게 난 어느 이장을 한 무덤 곁에 잠시 드러눕더니 집처럼 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며칠 뒤 위커는 인사동에 나가 스님 가사 한 벌과 염주 등을 사 가지고 독일로 다시 떠났다. 그 수행의 물건들은 지금도 위커 아뜨리에 한켠에 마치 부처처럼 조용히 걸려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내밀한 默想.
3. 백색의 그의 장소 ● 때로 사람들은 어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그 사람을 닮았다거나 그의 공간이 그와 닮았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더욱이 그의 작업이 그와 닮았다고 하는 말은 그가 그의 예술과 삶을 하나로 진실하게 대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독일서 위커와 함께 그의 아뜨리에를 오랫동안 꾸민 적이 있었다. 뒤셀도르프 항구 라인강 어귀의 거대한 3층 짜리 자재 창고였던 건물을 개조해 새로 마련한 공간에서 매일 조금씩 작품을 하듯 수리하고 그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3층은 장식을 절제하여 원래 창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 자연스러운 작업 공간으로, 또 2층의 휴식의 공간은 따뜻하게 마루를 깔고 여러 겹의 섬세하면서 부드러운 우윳빛의 천으로 벽을 마감했으며(위커의 표현대로라면 마치 어린 생선의 속살같이) 라인강을 마주하고 있는 여러 개의 시원한 창들에겐 하얀 돛과 같은 커텐과 부드러운 조명을 선사했다. 그 안의 커다란 둥근 테이블과 12개의 의자, 침대, 선반, 가리개....모두가 나무나 자연스러운 흰빛 광목 천을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그 하나 하나가 모두 정성스러운 작품 같았고 아름다웠다. 늘 흐린 독일 날씨 중 어쩌다 햇빛이라도 가득 비치는 날이면 그의 아뜨리에는 마치 한 척의 커다란 하얀 배가 바다 위에 조용히 떠있듯 부유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가 늘 흰 셔츠를 즐겨 입듯이 하얀 그의 공간도 그가 바라는 바로 그 「빈 장소Die Leere Stelle」의 염원을 담고 있는지 모른다. 또한 작업 중인 위커의 못을 박고 있는 소리를 무심히 듣고 있노라면 그 일률적으로 반복되는 소리가 마치 생명을 이어주는 맥박소리 같기도 하고 어느 수도승의 목탁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하여 무념무상한 마음이 집에 있는 듯 저절로 편안해지곤 했었다. 명상적이면서도 래디컬한 작업을 하는 위커는 그의 작품과 삶이, 그리고 그의 공간이 어쩌면 그렇게도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그 자신과 닮아있는지 언제나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그것은 바로 한 작가의 삶과 세계가 한 공간에 응축된 그런 강렬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는 그의 영원한 화두인 삶과 죽음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미리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 부드러운 흰빛 정서의 따뜻하면서도 우아한, 그리고 치열한 예술적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의 백색의 장소( 백지와 같이 텅 빈 )에서 조교로 지내던 5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독일로 건너가선 그의 아뜨리에를 들르곤 하는데 그때 그 마음은 아직까지도 한결같다. ■ 우순옥
Vol.20040304b | 귄터 위커 아시아 순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