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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303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명숙_박민준_박찬선_오정일_정세라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사실주의는 잡식동물이다. 그것이 사건이 되었든 사물이 되었든 눈에 보이는 어떠한 것도 흡수하고 뱉어내기를 반복한다. 그 완성한 식욕은 화장실 벽의 낙서화처럼 시시한 것까지 들먹이고, 은밀한 몰래 카메라(CCTV)가 되어 사회 곳곳의 치부를 폭로한다. 이 욕심 많은 잡식동물은 주위를 둘러보며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소재로 취한다. 그런데 이 잡식동물이 한 갓 동물에서 하나의 사조로 거듭나기 위해선 무엇인 필요할까? 우리는 쉽게 '객관성'을 그 첫 번째 요건으로 꼽는다. 다시 말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현상에 비교적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 이 '객관성'이란 무엇인가? 1849년 쿠르베가 제창했던 '객관성'은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 발생한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전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묘사할' 것을 주장하며 회화의 주제를 눈에 보이는 것에만 한정하고 일상에 대한 관찰의 밀도를 촉구한 반면, 후자는 라파엘로 이전처럼 자연에서 겸허하게 배울 것을 표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영역은 사실주의라는 하나의 범주에 속해 있다. 이 같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껏 사실주의를 정의하는 수많은 논의가 있어 왔지만 해답은 언제나 하나가 아니었다. 물질문명의 진화가 배출해 놓는 복잡한 사회구조 때문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역시 다양해 졌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꼭 현실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였다고 해서 리얼리즘이라고 하기엔 사실주의의 폭이 너무 커져 버렸다. 그렇다고 단순히 재현미술이라고 보기엔 너무 협소하고, 현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엔 너무 광범위하다. 아무래도 사실주의에 대한 또 다른 접근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필자는 이를 외부 세계가 아닌 자기 자신의 시선 속에서 찾기를 권한다. 즉 사실주의는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다. 그리고 이 눈동자는 삼각대 위의 고정된 시선이 아니다. 역사, 지역, 문화, 시대를 교차하며 가장 최상의 장면을 잡아내는 움직이는 눈이어야 한다. 그래야 피상적인 기호의 조합에 현혹되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본질을 잡아 낼 수 있다. 이는 하이퍼리얼리즘의 놀라운 재현 효과 이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반추하는 실천력이 따라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작가적 개성과 함께 드러나게 된다.
필자는 이번 Young Realism展에 소개된 작품들을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으로 정의하였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모방, 재현, 표현이 문자가 아닌 이미지의 형식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적어도 '미술사' 속에 등장하는 '미술'에 있어서는 "얼마나 잘 그렸는가"의 문제는 "얼마나 정확하게 빠뜨리지 않고 그렸는가"의 문제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기법적으로 생략, 강조, 축소, 확대, 변형 등 위트 있는 왜곡과 작가의 주관적인 색채가 더해졌을 때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실주의 회화 속에서 발견되는 주관적 개입은 자연스런 그림 그리기의 결과이다. 이는 브레히트(Brechtian)적으로 현실을 즉각적으로 기록하고자 애쓰는 사실주의의 붓질일지라도 사회 · 정치적 문제는 물론 개인의 아이덴터티의 문제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사실주의'란 주제 하에 '그림 그리는' 작가들을 주목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캔버스에 유화물감의 질감이 살아 있는 아날로그 그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문자가 사라지고 이미지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다. 디지털 복제기술과 카메라의 등장으로 이미지와 동영상은 자기 복제를 계속하며 빠르게 전파되고 있고 시각 이미지는 더 이상 일부 계층의 향유문화가 아님을 확인한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개념과 테크놀러지와 결합해 종국에 이르러 이미지의 향유가 아닌 이미지의 폭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각이미지 본래의 '美'적 승화기능은 점차 퇴색되고 있고 아우라가 사라진 자리엔 쇼킹과 의미 없는 이미지의 반복이 계속될 뿐이다. 이 같은 이미지 과잉이 역설적으로 그림에 대한 향수를 낳았다. 1초에 30컷 이상이 돌아가는 동영상이 줄 수 없는 '느림의 미학'을 수개월에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회화에서 느껴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Young Realism-'그림을 그린다'展은 2.6 기가 헤르쯔(Hertz)와 ADSL의 속도 경쟁 속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붓질을 자랑하는 젊은 작가들을 모아 보았다. 김명숙, 박민준, 박찬선, 오정일, 정세라…이들 5인이 바로 주인공. 이들은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붓 터치를 보이는 가 하면, 사진과의 차별성을 위해 형상을 단순화시키며 새로운 환영을 만들어낸다.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고자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작가의 주관이 개입된다. 모래를 이용해 자연을 그리며 여성성에 대하여 고민하는 김명숙, 식물을 접사하여 부분을 통한 전체를 표현하고자 하는 박찬선, 고전 명화를 차용하여 현대적인 알레고리(allegory)로 가득 메워버리는 박민준, 머리카락을 그리며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 되묻고 있는 오정일, 그리고 거울과 빛의 굴절된 반사를 이용해 환영적 사실주의를 이끌어 내고 있는 정세라의 작품이 첨단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새롭게 느껴진다. ● 다시 한번 사실주의는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정의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다섯 명의 작가들이 비록 서로 다른 색채와 주제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지만 현실을 능동적으로 관찰하고 그 본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선 모두 하나의 울타리를 공유한다. 시선의 문제는 작가의 눈과 현실 사이의 접점에서 발생한다. 젊은 작가들의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풍경은 단순히 보기 좋은 풍경이 아니다. 그들의 속내와 우리 사회가 걸어온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그림자가 새겨져 있음을 명심하자. 이제 비록 포악한 잡식동물이 될지언정 세상을 등지는 소극적인 자세는 버리고 진정한 리얼리스트로 거듭난다. ■ 이대형
Vol.20040302b | Young Realism-"그림을 그린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