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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4_0302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귀은_김미형_김연수_김지향_김진경_김창미_박혜정_백재현 양연화_유진영_이영호_이정경_이하정_전인자_정유진
주최 / 성신여대 미술대학 조형연구소 협찬 / 이미지 속닥속닥_디자인 그룹 낮잠 책임기획 / 조관용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1가 62-12번지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82.(0)2.722.8493
21c 샤머니즘 ● 무지몽매한 사람들의 안식처로만 보이는 샤머니즘. 그것은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혔으면서도 언제나 그림자처럼 우리네의 삶을 맴돈다. 샤머니즘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은 무엇인가. 16세기에 시작된 서구의 합리적 정신의 결실로 인터넷 통신을 통해 서로간의 소식을 순식간에 알 수 있는 오늘날에도 그것은 어째서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있는가. ● 샤머니즘을 바라보는 우리네의 시선은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학교의 정문 앞의 부적이나, 노력보다는 요행수를 바라며 점(占)집을 들락거리는 복부인들의 생각들로 봉인되어 있다. 그 봉인된 문을 열고 들어서면 희미한 기억 속에 부잣집의 앞마당이나 동네의 마을 어귀에서 제단을 쌓아놓고 굿판을 벌이는 정경들이 하나 둘씩 우리 앞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촉발된 기억의 문을 따라 다시 거슬러 오르면 그 이미지들은 자연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힘을 대신하던 나무나 동물의 정령들을 향해 기원하는 애니미즘과 겹쳐진다. ● 새는 공기 속에서, 물고기가 물에서 자유롭게 뛰놀며 그 자양분을 먹고 자라듯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그 모태를 두고 있다. 흙탕물이 물의 본래 모습이 아니며, 대기 중에 뿌옇게 보이는 먼지들이 공기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듯이, 노란 종이 위에 빨간 글씨로 그려진 기묘한 모양의 부적이나, 또는 주술과 마법으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고통을 주는 영화의 장면들이나, 드라마의 장면 속의 이미지는 그 옛날 선조로부터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샤머니즘의 본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샤머니즘은 동북아시아에 널리 퍼져 내려오는 전래적인 민간 신앙을 의미한다. 종교학자인 M.Elide에 의하면, 샤먼(Chaman)은 입문(入門)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 인간의 본모습을 깨닫고 병자나 마을의 안위를 돌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말한다. 샤머니즘은 기독교나 불교 등 여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것이 신앙의 형태로 발전된 것을 말한다. 그것은 개인의 물질적인 부나, 또는 이기적인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마법을 부리거나, 주술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샤머니즘이 음습하거나 어두운 장면을 연상시키는 것은 그것을 이용한 사회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비춰진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본래 의미가 불상에서 그 참뜻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며, 기독교의 본래 의미가 교회의 성상이나 도상의 이미지로 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듯이 샤머니즘 역시 그 본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통해 그 의미를 드러낼 것이다. 이 전시는 회화, 조각, 한국화, 금속공예, 섬유공예, 도자 공예 분야의 대학원에 재학중이거나 대학원을 졸업한 15명의 작가들이 샤머니즘을 주제로 이미지를 담은 것이다.
김귀은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꺼지지 않은 정염(情炎)을, 아니 그것은 작가 자신의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추상 이미지로 붉은 색과 먹의 채색을 이용하여 그리고 있으며, 김미형은 컴퓨터 화면의 글자와 자판의 글자와 마우스의 화살표의 기하학적 이미지로 풀어내고 있다. 검은 색 바탕 위의 글자들은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의 등장 인물들을, 그리고 화면의 하얀색의 화살표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주인공의 심리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고 있다. 김창미의 화면에는 컵라면을 먹고 있는 한 인물과 어둡고 흐릿한 모습의 군중들이 등장하고 있다. 화면 속의 인물에게 삶의 무대는 마치 적자생존을 위한 야생 동물들의 각축장처럼 보이며, 누군가가 자신의 것을 빼앗아 가는 듯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초췌한 얼굴이 채색으로 드리워져 있다.
김연수는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이다. 몸뚱아리는 서로 붙어있으나 몸의 방향은 서로 정반대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며, 고개 숙인 얼굴에서 상대방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 이미지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는 연인의 모습을 의미한다. 김진경은 에어로빅과 헬쓰로 몸을 다듬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녀는 왜 자신의 신체적 리듬과는 맞지 않는 마네킹과 같은 신체들로 자신의 신체를 다듬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가. 양연화는 파렛트와 물감이 묻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자화상을 사진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이 이미지는 그 자신의 소망과 작가들의 소망을 기원을 담은 것이다. 전인자의 작품은 검은 색의 화면 위에 두 여인의 이미지를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다. 화면 속의 유명 기업의 상표로 주렁주렁 기워져 있는 옷들과 사슴과 같이 곱게 뻗은 목선과 마네킹과 같은 얼굴을 하고 모자를 쓴 여인의 모습은 바로 물질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의 모습이다. 서구의 바로크나 로코코 시대의 귀부인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여인의 뒤로 실루엣처럼 흐릿한 여인의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다. 유령과 같은 그 이미지는 시선이 바같으로 향하여 그 실체가 공허해져만 가는 우리의 심상의 모습이다.
박혜정은 선(線)을 통해 기하학적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 평면의 선이 입체로 될 때 다른 모양으로 변하듯이 동일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왜곡될 때 다르게 보인다는 의미를 상징화하고 있다. 백재현은 둥근 모양의 테안에 그리이스 조각상에 보이는 건강한 남성의 육체와 나비를 조형화하고 있다. 나비는 여성의 이미지와 장자의 이야기속의 가상 현실을 내포하며, 육체의 스텐레스 이미지는 반도체의 내부 칩을 도안한 듯한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 거미줄 망과 함께 현대 과학 문명의 다양한 가능성을 샤먼의 시각적 비전을 암시하고 있다. 유진영은 익명의 두 인물을 필름으로 투영시키고 그 위에 각기 다른 모습에서 자라는 나무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각자의 마음 속의 시각에 따라 생명이 자랄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영호는 가느다란 선 위에 매듭을 꼬은 선을 철제로 표현하고 있다. 매듭은 인과관계의 사슬이나, 우리의 보이지 않는 관계로 얽혀 곧바르지 않은 우리의 시선을 비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이정경은 접시 위에 핸드폰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접시는 음식을 담는 것을 상징하고 하고 있으며, 핸드폰은 우리의 일상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기호이다. 핸드폰은 마음의 여유도 없이, 참을성 없이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김지향은 직선과 곡선의 철제를 이용한 작품이다. 빛 바랜 회색담이 지나간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하듯이 녹슨 철제는 역사의 흐름을 의미하며, 선들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직선은 남성의 강인한 이미지를 곡선은 여성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상징화하는 듯하며, 꽃혀있는 초들은 무엇인가를 향해 기원하는 이의 모습이 어리어 있다. 정유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소망을 둥그런 원으로 표현하였다. 둥그런 원의 크기와 그 위에 비친 색채들은 각기 다른 시각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으며, 공간의 배치를 통해 심상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하정은 이중의 몸통의 도자 조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바같의 몸통의 중간에 둥그런 모양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듯하며, 안쪽의 모양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고 있다. 물질적인 부를 기원하는 것도 아닌, 인간의 욕망을 기원하는 것도 아닌 자웅동체가 결합된 완전체로서 샤머니즘의 고유한 의미를 형상화하려고 하였다. ■ 조관용
Vol.20040229a | 21세기 샤머니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