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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4_0226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권옥연_김기창_김은호_김흥종_박영선 배정례_임송희_장우성_장운상_최영림 외
스페이스 씨 서울 강남구 신사동 627-8번지 Tel. +82.(0)2.547.9177
美ㆍ想ㆍ錄, 美ㆍ像ㆍ錄 ● 여인들의 기품 있고 수려한 용모를 화제(畵題)로 삼아 여인들의 이미지를 담아낸 감상용 그림들을 가리켜 흔히 여인화(女人畵)또는 미인화(美人畵)라 한다. 산수화와 더불어 한국화의 양맥을 이루는 인물화의 범주에 속하는 미인화는 단순히 여성미 그 자체만을 표현하기보다는 당대 여인들의 풍속적이고 일상적인 모습까지도 함께 담아낸다는 점에서, 사회 각층의 생활상을 소재로 하여 당대의 세정과 일상의 풍정 등을 여실하게 묘사하는 풍속화에 해당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서양의 미술사에서 여인들의 이미지를 아주 쉽게 마주칠 수 있듯, 동양에서도 여인들의 이미지를 화제로 다뤘던 그림들을 찾아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옛 그림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멀게는 고구려의 안악 제3호분 고분벽화(357)에서 발견된 묘주부인상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겠고, 좀더 가깝게는 조선후기 풍속화가 신윤복(申潤福, 1758-?)의 단아하면서 순정적인 옛 여인들의 이미지를 떠올려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옛 그림들 가운데에서 미인화라 부를 그림들을 떠올려 볼 때, 많을 듯 싶으면서도 정작 쉽사리 구경할 수 없는 그림들이 바로 미인화가 아닐까?
유교를 기본치념으로 하여 사회적 관념과 풍습을 제어하고 통제해 왔던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사회적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자유로워지는 18세기에 접어들면서 풍속화의 성행과 함께 풍속화의 형식에 근거한 미인화를 널리 그리기 시작하여 윤두서(尹斗緖, 1668-1715)를 필두로 신윤복과 김홍도(金弘道, 1745-?), 이인문(李寅文, 1745-1821) 등은 물론 무명의 풍속화가들에 의해서도 널리 제작하였다. 이렇게 조선시대 후기에 완성된 우리의 미인화 전통은 근대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며 일본화 기법의 유입과 함께 주요한 근대적 장르화로 부각되어 근대적으로 변용된 새로운 전통을 쌓아가게 된다. 당시 수묵담채화 중심의 전통화단에 풍부하고도 다채로운 색채와 구성의 채색화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한국화의 근대적 변용과 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김은호(金殷鎬, 1892-1979)가 바로 그 대표적인 작가라 하겠다. 사생(寫生)에 근거한 치밀한 대상파악에서 출발하는 사실적인 묘사와 표현감각, 유려한 선묘의 세필기법과 부드러운 색채표현으로 요약되는 김은호의 채색화에서도 미인화는 예외 없이 주요한 화제(畵題)로 다루어졌다. 과거의 관념적인 인물묘사에서 벗어나 현실감에 근거한 사실성과 실제성에 역점을 두는 인물채색화를 통하여 한국화단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던 김은호의 인물묘사법은 그의 문하생이었던 김기창(金基昶, 1913-2001), 장우성(張愚聖, 1912- ), 배정례(裵貞禮, 1916- ) 등과 같은 한국화 작가들에게 이어져 근·현대 미인화의 새로운 전통을 세워 가게 된다.
17세에 김은호의 문하생으로 화업을 시작하여 「복덕방」시리즈와 「바보산수」시리즈로 한국화의 현대적 형식실험과 모색에 앞장서 왔던 김기창 역시 화단에 등문할 때부터 신윤복의 미인화를 모사할 정도로 인물묘사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어 여인의 초상, 시집가는 날, 널뛰는 모습 등 여인들의 다양한 일상의 모습들을 즐겨 그려가며 풍속화의 연장으로서의 미인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구축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김은호에게 사사 받은 유일한 여제자로서, 박래현, 천경자, 이현옥과 함께 한국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여류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배정례는 치밀한 세필묘사에 의한 인물묘사에 현실세계의 공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배경처리를 덧붙여 놓음으로써, 전통적인 미인화를 보다 현대적으로 발전시켜 놓기도 하였다. ● 김은호의 문하생으로 역시 출발하여 미술교육자로도 활동하며 현대 한국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일맥의 화풍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장우성도 초기 작업서부터 인물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끊임없이 제작하였다. 특히 1945년을 전후하여 장우성은 스승 김은호의 영향 아래, 세필과 진채를 중심으로 하던 작품제작에서 벗어나 설채기법에 의한 보다 치밀한 대상파악, 예리한 필선과 함축적인 구도의 문인화적인 화풍으로 전환하여 문인화 정신에 입각한 인물화라는 새로운 전통을 세워가게 되는데, 그의 이러한 화풍의 변화는 미인화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 고운 필선과 밝은 색채의 농담을 특징으로 하는 장운상(張雲詳, 1926-1982)도 근·현대 미인화의 맥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라 하겠다. 서울대 미술학부가 배출한 첫 졸업생으로서, 대학재학 시절서부터 스승 장우성의 지도 아래 인물화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여주었던 장운상은 현대 화단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미인화 전문화가로 활동하며 미인화의 현대화를 위한 부단한 작업들을 보여 주었다. 장운상의 그림들 역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고전적인 이미지의 여인들로 화면을 채우는 미인화의 전통적인 기본구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두 서너 명의 여인들이 한 화면 속에 동시에 등장하는가 하면 색채의 추상적인 구상에 의한 여성들의 이미지를 아주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전통적인 미인화법의 구도와 양식을 차용한 과감한 누드미인화까지도 그려내 고전적인 이목구비의 여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가들의 미인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운상 특유의 양식적 특징들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이와 같은 미인화의 전통을 새롭게 이어가고자 하는 근·현대 작가들의 노력은 비단 한국화에서만 회자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근대 이후 새롭게 유입되기 시작한 유화에서도 여성의 아름다움을 당대의 미감(美感)에 기초한 그림으로 표현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함께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화에서 늘 보아왔던 수려하고 단아한 모습의 여인들이 유화라는 새로운 매체와 기법의 그림들에서는 조금은 낯설기도 한 이국적 이목구비의, 성적 매력이 물씬 배어나는 新여성들의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특히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한국사회 전반적으로 일기 시작한 여성미에 대한 사람들 의식의 변화를 대변하기라도 한 듯한 그림들이 눈에 띄게 등장하게 되었다. 60년대 후반서부터 회색 톤의 색채를 주조로 하여 이국적 분위기를 강하게 발산하는 여인들의 이미지를 주로 그림에 담아왔던 권옥연(權玉淵, 1923- )을 비롯하여 부드러운 붓놀림과 서정적인 깊이로 표현한 박영선(朴泳善, 1910~1994)의 여인좌상과 누드작품들에서 그러한 흔적과 징후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 세월이 흐르면 세상의 풍정이 변화하듯,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끊임없이 변해 간다. 그러면서 작가들은 새롭게 변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자신들의 의지와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꿈꾸는 세상의 모습들을 채워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미인화의 전통은 근·현대작가들의 현대적 변용과 변조를 통해 오늘 space*c가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 스페이스 씨
Vol.20040226a | 한국 근ㆍ현대의 미인도-姿人(자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