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두아트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두아트 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Tel. 02_737_2505
살아있음으로 행복하였네라 ● 김선주의 두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 『I'm so happy』에는 200켤레의 신발을 모아서 천장에 매달거나 바닥에 깔아두고 신발에 담긴 사연을 적은 메모지들을 벽면 가득 붙여놓은 설치작업과 영화를 통째로 줄여 편집해놓은 영상작업이 등장한다. 수묵채색화로 첫 번째 개인전을 마친 그가 이처럼 신발 모으기 작업과 영화 잘라내기 작업을 한 것이다. 우리가 종종 만나는 이런 식의 전환, 즉 배우는 과정에서의 전공매체와 작업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선택하는 매체가 다르게 나타나는 방식의 전환은 그를 아는 사람들로서는 일종의 파격 같은 것일 수 있다. ●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이러한 변신에 대해서 다소 느긋한 듯해 보인다. 전시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살아 움직이는 삶 자체의 행복'을 담아내기 위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노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하기야 모필을 드는 것과 신발을 모으는 것 가운데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에 적합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효율적인 예술행위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선주의 신발모으기 작업은 삶의 편린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신발을 통해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의 개념과 과정을 중요시하는 설치미술이다. 그의 신발설치 작업은 신발의 종류만큼이나 다종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 있다. 천장에 매달린 설치물들은 거의 우러러볼 일이 없는 신발이라는 낮은 존재를 꼼꼼하게 살펴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신발이 담고 있는 '있음'을 가슴으로 느끼게 만들어준다. ● 이른바 신발을 통해서 '존재의 미학'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업은 고호가 그렸던 농부의 구두 한 켤레를 놓고 하이데거가 장황하게 수다를 떨었던 유명한 대목에서 나타나듯이, 신발과 존재의 선형적인 일대일 관계에 의존하고 있다. '농부의 구두에 묻어있는 젖은 흙이 대지의 숨결을 담고 있다'며 존재의 심연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예술작품의 근원에 대해 철저하게 모더니즘에 입각한 해명을 늘어놓았던 하이데거의 논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제임슨이 얘기한 앤디 워홀의 「다이아몬드 가루로 만든 구두」에서는 그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모더니즘 시대의 산업사회와 탈모던한 20세기 후반의 소비사회의 서로 다른 구조는 신발이라는 물건을 가지고도 전혀 다른 얘기를 하게 만든다. 소비사회에서의 구두라는 것은 또는 구두를 담은 예술작품이라는 것은 선형적 관계를 벗어나서 물신(物神)화된 소비사회의 기호로 떠도는 이미지로 자리잡는다는 것이다. 존재의 심연을 떠받쳐주는 구두가 아니라 물신화의 대상으로서의 구두는 이미 고정된 의미전달의 방법이 아닌 그 자체로 패티쉬의 전형이 된 것이다.
김선주의 신발 모의기는 고호와 워홀의 중간에 서있다. 남의 신발을 얻어다가 전시장에 매단다는 행위는 일상의 영역을 한참 벗어난 예술행위이다. 그것도 남들이 별로 즐겨하고 싶어하지 않는 생뚱맞은 행위이다. 오브제로서의 현물인 신발들을 잔뜩 들여다 놓은 '즉물적인 보여주기'는 고호 시대의 재현적 예술행위와 워홀 시대의 탈모던한 예술행위를 넘나드는 일종의 의미교란 같은 것을 동시에 담고 있기도 하다. ● 실내화, 가죽구두, 세무구두, 운동화, 조깅화, 르까프, 나이키, 꽃신, 꼬마신발, 등산화, 하이힐, 등산호, 전통가죽신, 남성정장구두, 바퀴달린 신발 힐리스, 실내화, 모래 위에서 신는 신발, 발레화, 통굽구두, 빤짝이구두, 골프화, 샌들, 군화, 쪼리, 단화, 말장화(부츠), 장화, 작업용 신발, 검정고무신, 재즈댄스신발 등등등.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신발들이 있다. 김선주가 모은 신발에는 그 종류만큼이나 다종다양한 이야기들이 묻어있다. 쓰레빠 또는 풀딸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화장실용 슬리퍼에 묻은 죽은 세포의 흔적들. 안쪽에 자기 이름을 써놓은 군화에는 청춘의 기억이 아스라이 새겨져 있다. 발목과 뒤꿈치를 감싸고 맨발바닥을 보호해준 아대도 신발이라면 신발이다. 밑창이 다 닳도록 터닝을 반복했을 댄서의 가죽신에는 격렬한 몸짓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발품 팔며 돌아다니는 세일즈맨의 구두나 화재진압 현장을 누빈 소방수의 신발에 담긴 치열한 삶의 역동을 생각해 보라. 또는 그 속에 담긴 전혀 엉뚱한 나른하고 지겨운 삶의 모습을 떠올려 보다. 이 보다 진솔한 현실 삶의 다큐를 고안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신발이라는 명사를 네이버닷컴 국어사전은 다음과 같이 풀어쓰고 있다. '발에 신고 걷는 데에 쓰이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신체의 가장 말단에서 밑바닥과 신체의 접속을 매개하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김선주의 신발은 도구적이고 기능적인 물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신발이라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통해 그 물건을 사용한 사람의 존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체의 하중이 대지와 맞닿아 발바닥에 몰리는 하중을 줄여주거나 피부와 딱딱한 바닥의 접촉으로 인한 상처를 막아주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 신발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충실히 대변할 가능성이 크다. ● 200여 켤레의 신발을 모으는 데 석달이 넘는 기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주변인들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왔다. 미술동네 사람들과 동네 가게빵, 단골 음식적, 옷가게 등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신발을 얻어냈다. 주로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서 미술뿐만 아니라 공연이나 연극 쪽 사람이나 스포츠 분야 종사자들의 땀 냄새 배어있는 신발들을 모았다.
그는 신발을 모으기 위해 주변사람들 혹은 낮선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그 과정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자신의 작업 대상으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소통의 장이었다. 신발 하나 하나에 담겨있는 삶의 흔적을 모아 존재의 편린을 펼쳐놓고 있다. 그가 모은 신발들은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여러 가지 삶의 증거물이다. ● 영화 편집 작업도 신발을 통한 행복론의 연장선 위에 있다. 영화 「Fighting Club」을 절반 가량으로 줄여 편집하고 사이사이에 자신의 일상을 담은 스틸 사진들을 집어넣었다. 때리고 맞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이는 클럽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폭력성을 드러내는 이 영화 속에 평범하게 반복되는 자신의 일상을 끼워 넣은 것이다. 작업실이나 사무실에서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자신의 생활상을 담은 스틸 사진은 폭력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영화 스토리에 작가 자신의 일상성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행복과 불행의 역설, 일상과 폭력의 역설을 내비치고 있다. ● "I'm so happy"라는 말은 살아 움직이는 것 자체의 행복을 깨우치게 하는 김선주의 메시지이다. 그의 신발 모으기는 이런 말을 다시 한 번 새겨보게 한다. "살아있음으로 행복하였네라!" ■ 김준기
Vol.20031221b | 김선주 영상.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