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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219_금요일_05:30pm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1가 62-12번지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해마다 연말이 찾아오면 거리마다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과 백화점 쇼 윈도우에 가득찬 선물들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이러한 때, 한 해를 마감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선물을 골라 예쁘게 포장하는 이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갖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또한 어린아이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선물을 전해주는 산타크로스를 기다린다.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치든 간에 산타크로스가 선물을 전해 준다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아이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선물을 기다리는 기쁨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누구든 선물을 받게 되면 매우 기쁠 것이다. 선물 안에는 언제나 그것을 준비한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 오 헨리_Henry, O.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면 가난한 젊은 부부의 선물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에게 가장 귀한 것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내어준다. 이 두 부부는 서로 사랑하는 것을 확신한다. 선물을 통해서 사랑을 표현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선물을 서로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가치 있는 것을 희생해야 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러한 희생의 과정을 통해 둘은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김경남은 '선물은 내 것을 타인에게 내어주기 위한 포기'라고 말한다. 당연히 그가 말하는 선물은 단순히 아름다운 포장지에 쌓여진 물건을 지칭하는 것만이 아닌 것이다.
김경남의 작업은 선물을 테마로 다룬다. 여러 색의 조명등이 들어 있는 선물 박스들이 설치되어 있는 공간의 중앙에는 김경남 자신의 이미지가 투사된 커다란 선물 박스가 철골 구조물위에 놓여져 있다. 여기에는 작가자신의 일상적인 모습들이 찍혀진 사진들이 투사된다. 일반적으로 선물은 항상 포장지에 쌓여서 전달된다. 내용물을 보다 아름답게 치장하기 위해서 포장하기도 하고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은폐하기 위해서 포장하기도 한다. 김경남의 선물은 어떤 내용물도 담고 있지 않다. 바꿔 말하면, 그의 선물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어떤 내용물도 아닌, 여러 가지 색의 조명들이다. 언뜻 보기엔 예쁜 리본들에 의해서 포장된 빛들의 행렬처럼 보인다.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선물들은 마치 숭고한 제례를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벽면에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리본에 묶여진 채로 화려하게 걸려있다. 여기서도 역시 작품은 포장된 선물의 외형처럼 보인다. 이 작품들은 하나의 선물이면서 오브제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겉껍질로서의 선물의 모양만 있고, 받아야 할 선물의 내용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상황이다. 선물로 보이는 이 오브제에 작가자신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것이 이례적이다. 이 전시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이 전시 자체를 하나의 선물로 본다. 선물을 준비한 사람이 작가라면 선물을 받는 이는 과연 누구일까? 작가는 여기서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전시에 찾아온 관람객 일 수도 있고, 그가 지금 것 기독교적인 테마의 작업을 해왔던 것을 생각한다면,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선물일 수도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작가의 이미지들은 일상적이지 않다. 작가는 직접 제작한 옷들을 입고 화려한 빛을 발하는 연극조명들이 설치된 공간에서 제례적인 분위기의 사진을 제작한다. 김경남의 이미지들은 연극무대를 실연하는 배우의 의상처럼 극적이고 화려한 조명에 아련하게 파묻힌다. 이러한 시도들이 가지는 나름의 의미는 우리에게 익숙한 몇몇 작가의 패션아트나 사진 몽타주 작업과의 비교를 통해서 설명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실험들은 작가가 평면작업에서부터 탈피하려고 시작하던 때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 김경남은 추상표현주의적인 작업에 몰입해 있었다. 그의 색채나 붓질의 제스처가 가지는 의미는 그 당시부터 매우 남다른 것이었다. 또 화면전체가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치는 기류를 만들어 내거나 제례적이고 신화적인 공간을 실현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평면을 탈피해 입체와 설치 실험을 시도하면서 그의 작업은 이런 것들과 전혀 연관성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연관이 있다면, 화려한 색채와 드라마틱한 구성뿐이었다. 평면을 벗어나 시도한 김경남의 초기 의상 작업들은 그래서 아주 단순할 만큼 색채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노랑, 빨강, 파랑의 색채 시리즈 작업은 자신이 포함된 공간을 구성하고 있지만, 색채들이 같은 색조를 유지 할 수 있도록 의상을 고안하고 조명을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 역력하게 보인다. 이 사진에 등장하는 사물들과 빛, 그가 착용하고 있는 의상은 하나의 색으로 일치되어야만 했다. 작가는 여기서 "작가자신도 하나의 물감으로 사용되었다"고 말한다.
김경남의 갈증은 삶과 예술이 분리된 현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내 작업은 한 마디로 일치, 즉 하나 됨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그는 회화작업의 속성상 작품은 언제나 관조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다는 것에 대해 갈증을 느꼈다.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의 작업은 회화를 바라보는 관조적인 속성에서 작품 안으로 뛰어들어 함께 작품이 되는 연극적인 속성을 띄게 되었다. 작가는 이것은 "참여"라는 말로 표현한다. ● 그의 작품 안에 참여하기 위한 노력은 세 가지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신체를 통한 일치를 시도하는 퍼포먼스적인 형태들이다. 이 시도들은 다분히 연극적이다. 두 번째는 작품이 삶에 어떤 형태로 자리 잡는가 하는 문제인데, 작품의 유통이나 선물과 같은 수여의 형태로 나타난다. 셋째는 이 작품들과 타인이 맺는 소통의 관계로 나타난다. 이 세 가지 시도들은 이번 전시에서는 설치, 영상, 사진과 평면작업등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보다 확장된 실험으로 더 넓게 열려 가리라 예상한다. 나는 작가가 소박하지만 훈훈한 감동을 주는 그런 진실된 작가로 성장해 가기를 기대한다. ■ 백기영
Vol.20031219b | 김경남 영상.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