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온스 산수화

송영화 회화展   2003_1219 ▶ 2003_1229

송영화_3.5oz 산수화_캔버스틀, 철망, 실_53×41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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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219_금요일_06:00pm

갤러리 아티누스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4-26번지 Tel. 02_326_2326

선(線)의 일탈 ● 다양한 변화를 거듭하며 진화하고 있는 시각미술은 언제나처럼 드로잉으로부터 그 출발선을 긋는다. 드로잉을 통해 개념을 시각화하고 이야기를 만들며, 또한 드로잉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형성해 나간다. 강약을 가지며 움직이는 선들은 섬세하면서도 힘있게 환영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키며, 한 편의 시처럼 어떠한 형식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선의 꿈틀거림을 이끌어 낸다. 시각 예술의 원초적인 뼈대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가장 실험적인 시도를 감행하는 이 선의 유희가 바로 드로잉의 매력이다. 송영화의 작품 역시 드로잉이 만들어 내는 선의 유희를 즐기고 있다. 외부세계의 재현이란 태생적 숙명을 안고 회화의 시녀(侍女) 역할을 해오던 드로잉이 송영화의 손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다. 붓 대신 실과 바늘을 이용해 가는 철재 격자 표면위로 한 뜸 한 뜸 점을 만들고 선을 이어 풍경을 그려낸다. 깊이가 사라진 투명한 배경으로 인해 환영적 공간은 사라지고 대신 선 자체의 물성만 남게 된다. 그것은 50 온스의 실타래가 만들어 낸 전혀 새로운 풍경이다. 바로 오랜 세월 회화의 보조적 역할을 담당한 선(線)의 일탈이다.

송영화_50 온스 산수화_캔버스틀, 철망, 실_가변크기_2003

'50온스의 산수화' ● 1000 밀리리터 우유 한 통에 500 밀리리터 우유를 더 부으면 대략 50 온스의 부피와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부피에 무겁지 않은 질량이다. 그러나 이 질량이 내포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클 수 있다. 송영화의 이번 산수화 작품은 자연현상을 양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엄밀한 수학형식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있다. 50 온스의 실타래가 만들어 내는 것은 분명 또 다른 50 온스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송영화가 만들어 가는 1.4 킬로그램 실타래는 어느덧 질량을 잃어버리고 산수화에 대한 이미지로 변한다. 다만 아직 채 풀리지 않은 실타래가 이미지의 본질, 즉 실의 물성과 무게를 상기시켜줄 뿐이다. 그렇다면 굳이 실의 무게를 전면에 노출시키며 실의 물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중심주의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 억압 받아온 여성을 비유하기 위해서? 아니면 가벼워질 때로 가벼워진 현대인의 존재감을 조롱하기 위해서? 이에 대한 해답은 '실' 자체가 아닌 실이 만들어 내고 있는 '산수화'의 모습과 연관해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송영화_50 온스 산수화_캔버스틀, 철망, 실_가변크기_2003

산수화-유토피아를 향한 영원한 갈증 ● 초고속 인터넷과 나노테크놀로지로도 채울 수 없는 갈증.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달라졌어도 이상향에 대한 동경은 변하지 않았다. 송영화의 산수화 역시 50온스의 가벼움과 흔해 빠진 '실'이라는 오브제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이상향을 그려낸다. 재미있는 것은 "50온스의 산수화"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작가가 이상향을 바라보는 잣대는 지극히 서구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 이는 독일에서 체류하며 작가가 체득한 습관과 무관하지 않으며 또한 서구의 가치관에 익숙해져 버린 현대인들의 모습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그가 꿈꾸는 이상향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해와 달이 함께 공존하고, 산과 산 사이에는 폭포가 떨어지며, 폭포가 만들어낸 물줄기는 바위를 타고 땅 속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이 일련의 순환은 동서남북, 중앙의 오방을 지배하는 오방색에 의해서 구체화된다. 그러나 아직 채 풀리지 않은 실타래는 송영화의 산수화가 미완의 이상향임을 상징한다. 화면 앞에 덩굴식물처럼 엉켜진 실뭉치는 또 다른 유토피아를 꿈꾸는 관객의 욕망의 무게인 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송영화_50 온스 산수화_캔버스틀, 철망, 실_가변크기_2003

공간 드로잉 ● 화면의 앞과 뒤가 없다. 송영화가 주도하고 있는 '선의 일탈'은 이차원의 평면을 벗어나 공간 속에서도 스스로의 괴체감을 만들며 계속되었다. 전시장 벽면의 드로잉을 구성하고 있는 선의 유희는 모기장으로 만든 캔버스에 이르러 이미지에서 실체로 탈바꿈한다. 이는 평면 드로잉에서 입체 드로잉. 즉 공간 드로잉으로의 전이를 의미한다. 캔버스 화면을 투과해 스며드는 물감의 특성을 이용해 화면의 전면과 후면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던 이전 작업에서 두 뼘 정도는 더 나아간 셈이다. 앞과 뒤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이상향에 대한 신비감 또한 사라진다. 힘겹게 공간으로의 탈주를 시도한 '선의 일탈'이 그려낸 유토피아는 어쩌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송영화는 그곳에 이르는 방법을 우리 앞에 던져 놓는다. 한 타래의 실뭉치와 함께... ■ 이대형

Vol.20031219a | 송영화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