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대안미술학교 비닐하우스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3_1210_수요일_06:00pm
갤러리 피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1층 Tel. 02_730_3280
대안을 풀어본다 ● 대안이란 영어단어는 alternative이다. 단어의 해석은 양자택일의, 둘 중의 하나의, 선택의, 달리 취할 방법, 대안이라고 시사 엘리트 사전에 명시되어있다. 대안의 불어명사는 alternance(알떼르낭스)이다. 불어의 동의어에는 확장된 의미의 은유적 단어들이 열거되어 있다. 왕래, 균형, 진동, 요람의 움직임, 교차적인 전환, 밀물과 썰물, 기류, (심장의) 박동, , 리듬, 성장, 여행, 다양함. 이것이 아니면 저것...대안은 하나의 선택이다. 인생에서 선택은 늘 만나게 되는 복병 같은 존재가 아닐까? 비닐하우스AA(이하 vaa)는 선택의 길목에 위치한 비제도권미술교육의 장이다. ● 대안학교연합의 교육이념을 살펴보니, 공교육이 아닌 민교육으로서 국가적 이념을 반영한다기보다는 시민교육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거대한 체제와 이념의 굴레에서 회귀하는 시스템이 아닌 자율적인 인성교육을 통해 진정한 시민의식을 가르친다는 목적으로 이해된다.
비닐하우스AA(Art Adapter)-예술을 받아드리고자 ● vaa의 교사는 비닐하우스 두 채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엔 소나무가 있고 농가가 있으며 얼마 전까지는 마스코트 토끼도 있었다. 가끔은 청솔모가 애꿎은 비닐하우스에 침범하기도 한다. vaa의 수업시간엔 종을 치지도 않고 학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수업 중에 출석을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는 프로그램에도 빠져있다. 대신 반장이 있고 전시책임반장이 있으며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책임자가 있다. ● 올해 7월 문을 연 vaa의 1기 학생은 스무명 내외였다. 소정의 심사가 있었으며, 학생들은 자신을 밝혀야만 했다. 굳이 대안학교까지 찾아온 이유를 말이다. 이유는 다양했고, 의지와 욕망도 그 안에 숨어있었다. 몇몇은 시니컬했으며 또 몇몇은 세상에 부정적인 듯 했고 이도 저도 아니면 순수한 '체험의 차원'을 갖고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나이도 학력도 직업도 섞인 vaa의 멤버들이 결성되었다. 이들 중 몇은 학교를 떠났고 남은 이들 가운데 몇은 잠시 휴식을 위해 멀어지기도 했으며 또 몇은 다시 되돌아왔다. 고작 5개월 동안 일어난 일들이다. ● vaa는 크게 실기와 이론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이론은 미술사와 조형예술론을 중심으로 역사와 인문적 소양을 흡수하는 시간이며 동시에 사유적 태도의 미술관에서 벗어나 논리적 태도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에 반해 실기는 주로 아이디어 스케치에 의존하고 있다. 번듯한 실기실은 꿈도 꿀 수 없다. 가장 큰 장애는 바로 작업에 대한 물리적 빈약함일 것이다. 미술인이 되고 싶은 욕망에 비해 작업실의 현실은 '번듯한' 작품을 생산하기에 턱없이 보잘 것 없다. 대안학교의 성격은 바로 이 부분에서 드러나는 듯 하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 아무 것도 기댈 곳이 없는 상황은 결국 고민을 만들어낸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기술과 재료의 문제를 뛰어넘는 것이란 걸 그들은 스스로 깨달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무엇인가 발견하고 발전시켜야만 한다. 어쩌면 진정한 예술교육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문제점 ●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창작을 위한 고민, 재료와 기술의 빈약함은 그들의 논리와 개념으로 메운다 해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이 바로 각각의 매체가 지닌 속성과 장단점을 느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어느 순간 저절로 가버리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질과 물질이 만나 형상을 이끌어내고 어느 순간 그 형상들이 더 멀리 혹은 저 아래로 뛰어오르거나 추락하는 경험은 결국 원초적인 느낌으로밖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점은 대안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일 것 같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란 의미를 너무나 거대하게 바라보는 세상의 잣대가 문제다. 제도권의 교육과 다른 것이 있다면 프로그램을 푸는 방식이거나 또는 학생과 교사의 소통의 방식일 것이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다. 대학의 미술교육 역시 작가를 양성하는 것이며 창의적인 인물을 생산하는 것이다. 대안학교 역시 전문작가를 양성하고자 한다. 교육의 장의 차이를 불문하고 그 안에 속해있는 학생들은 동일하게 높은 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해법을 찾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문제를 대신해줄 수 없다는 삶의 진리는 모두에게 평등하다. ●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대안미술학교가 현대미술의 대안을 제시해주거나 또는 대안미술의 스타일을 제시해주어야 한다고 믿는 듯 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 역시 전형적이 아닌가. 대안이기에 전복적이어야 하고 대안이기에 기성의 작가를 모방하지 않는 '유니크'한 작품을 제시해야한다는 것은 솔직히 너무 이르다.
다시 한 번 풀어보자면 ● 그러나 최소한 vaa학생들의 작업은 기존대학에서 보여준 작품들과 차이를 갖고 있다. 첫 번째 차이는 바로 작업의 출발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 자신의 상황에서 작업을 출발하고 있다. 고민을 하다보니 작업은 때론 엉뚱한 곳으로 가버린 경우도 있으며 고민의 해법을 기성작가들의 작품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비판하곤 한다. "어디서 본 듯해!" 당부하고 싶은데, 이들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사람들이다. 어렵게 돌고 돌아 '이 곳이 아닌 저 곳 혹은 그 반대'에 왔다. 아직은 모방의 단계임을 인정해야겠다. 그들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은 쓴 약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양부모의 사랑과 관심일 것 같다. ● 『밀물과 썰물-육지와 바다』를 무엇으로 단정지을 수 있을까?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차이를 과연 무엇으로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이 둘 모두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기능적 성장이 아닌 자아의 성장을 위해 우리 모두 좀 더 열려 있길 바란다. 더 나은 것이 있다면 받아드리고 부족한 것은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안의 모습일 것이다. ■ 정현
Vol.20031212b | 밀물과 썰물-육지와 바다의 차이_대안미술학교 비닐하우스AA 학생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