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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덕은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이다. 1966년에 첫 개인전 『홀트씨 고아원』(뒤에 『섞여진 이름들』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으로 한국 문화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이래로 그는 오랫동안 한국의 사진계에서 젊은 작가들이 넘어야 할 큰산으로 존재해 왔다. ● 『홀트씨 고아원』을 위시하여 주명덕의 초기 사진들은, 월간중앙 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 발표한 "한국의 가족", "한국의 이방"과 같이, 당시의 한국 사회가 잊거나 외면하고 있던 사회의 단면을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작업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의 그런 작업은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시작이자 표본이 되었다. 산업화, 도시화로 치달으며 급변하던 시대에 주명덕은 사진을 통하여 그렇게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문제를 던짐과 동시에, 또한 사라져 가는 한국의 것들을 아름답게 기록하는 일에도 열중하였다. "한국의 장승", "수원성", "절의 문창살 무늬"를 위시해서 주명덕은 칠십년대, 팔십년대에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한국의 얼굴과 삶의 모습, 옛길과 옛집들, 전통 사찰의 이모저모 따위를 그만의 심미안으로 담아 내었다. 그의 다큐멘터리 작업은, 그것이 아픔이든 체념이든 궁핍함 속의 희망이든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든, 한결같이 작가의 따뜻한 통찰에 의해 조형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무엇인가를 호소하며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주명덕의 사진에서 말이 사라졌다. 1981년 어려서부터 즐겨 찾던 설악산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스무 해 넘게 집중해 온 그의 "풍경" 시리즈에서 그는 마침내 말을 놓아 버린 것이다. 그의 풍경 사진들은, 초기부터 이어져 온 한국의 서정과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애정과 탐구의 연속선 상에 있는 것이긴 하되, 그의 말대로 "나를 찾는 사진"들이라는 점에서 그 전의 사진과 확연히 선을 긋는다. 그저 좋아서 오랫동안 천착해 온 그의 풍경 작업에서 주명덕은 논리적인 근거를 버리고, 자신의 감정 세계를 충실히 표현하려고 했다. 대상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보는 것 이상을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나를 찾는" 작업을 시작한지 십년이 지나서야 그는 비로소 풍경 작업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달력에 실린 풍경 사진들은 거의가 그 후반의 작업들이다. 오로지 직감으로 무심하게 길어 올린 주명덕의 정령적인 풍경 사진들은 어둡고 깊다. 무엇인가 보이는 듯도 하고 보이지 않는 듯도 한, 무엇인가 움직이는 듯도 하고 움직이지 않는 듯도 한, 그래서 한없이 유현한 느낌을 주는 주명덕의 풍경 사진들은 지워 나가기와 흡사하다. 지우려는 힘과 지워지지 않으려는 힘이 팽팽하게 맞선 듯한 그 고요함과 침묵의 사진들에서 우리는 "뜻을 얻으면 말은 잊어버린다"고 한 옛 현자의 말을 곱씹게 된다. ● 이제 육십대 나이에 이르른 주명덕은 지금도 나라 안팎으로부터의 여러 기획전과 그룹전에 초대받고 또 그의 새로운 작품 세계를 선보일 2005년의 개인전을 앞두고 정력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 이제까지 세 단계의 변화를 거쳐 온 그의 작품 세계가 앞으로 두 번은 더 변화할 수 있기를 꿈꾼다.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유의미하고 생명력 있는 삶을 이어 나가겠다는 그의 의지가 거기에 담겨 있다. ● 사십 년 남짓 사진을 찍어 오는 동안에 주명덕은 개인전(모두 일곱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을 통하여 작품을 발표하는 일에는 신중하였으나, 후배와 한국 사진계를 위한 그룹전과 기획전에는 예외적으로 성의를 보였다. 그러는 사이에 작품집 출간은 누구보다도 활발하여 『섞여진 이름들』(성문각, 1969), 『명시의 고향』(성문각, 1971), 『한국의 장승』(열화당, 1976), 『한국의 공간』(일본 구룡당, 1985), 『절의 문창살 무늬』(시각, 1986), 『Lost Landscape』(일본 교또 서원, 1993), 『성철 큰스님』(장경각, 1993), 『주명덕의 초기 사진들』(시각, 2000) 등 모두 스무권 가까운 책을 냈다. ■ 끄레 어소시에이츠
Vol.20031204c | Landscape_주명덕 2004년 사진 캘린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