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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강행원_구본주_기진호_김기호_김옥구_김윤환_김인순_김재홍_김종례 김천일_나종희_남궁산_노순택_두시영_류준화_류충렬_박야일_박은태 박장근_박진화_박흥순_손장섭_신학철_신현경_안성금_양상용_양형규 여운_이명복_이부록_이성완_이세상_이원석_이인철_이종희_이철재 임옥상_전미영_정세학_정진룡_조신호_조영아_주재환_지용수 최병수_탁영호_홍선웅
총감독_신학철 집행위원_서울민미협 운영위원 및 전시기획 위원 주최_서울민족미술인협회 / 후원_서울시
광화문 갤러리 서울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 Tel. 02_734_5118
1000만 명의 사람, 세계3위의 메트로폴리스, 오늘의 서울에 대한 통계적 그림이다. 600년의 도읍, 또다시 100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그곳은 우리들의 심리적 지리, 혹은 민족 원형적 지리로까지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그것은 우리의 공간감을 지배하며 사유방식의 틀을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 우리는 서울을 얘기해야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전쟁을 치른 폐허의 기억만을 안고 떠났다가 뒤늦게 돌아온 자가 회고하는 놀라운 발전상의 자긍심도 아니고, 이 놀라운 비대한 도시가 형성된 이유가 유난히 경쟁심 강한 민족성을 지닌 메트로폴리스적 시민이기 때문이라는 자괴감도 아니다. 모든 시골뜨기들의 선망의 대상, 판타롱과 미니스커트 그 무엇이든 아방가르드적 창조로서 용인되는 너그러움, 모든 것의 일번지, 전국체전에서 늘 1등 먹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들, 그것은 유난한 경쟁력과 역동성을 가진 한국의 자화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이 권력이었음을 알게 된 우리시대의 회한으로서 인 것이다.
『전쟁 반대 평화 만들기』라는 주제의 지난 여름(2003. 7. 24~8. 5) 제1부 전시와의 연장선에 있는 (사)민미협의 이번 전시는 우리 안에 내재화된 억압과 권력의 구조로서의 서울의 그늘, 그 일상의 시공간을 주유(周遊)하려한다. ● 관념적 게으름을 질타하며 보다 계단 아래로의 현실로 뿌리를 정향시키는 민미협의 이번 전시는 마치도 외국 관광객에 대한 가이드를 자임하고 나선자의 모습이기도하다. 88 올림픽 이후에 또다시 내거는 플랭카드 『웰컴 투 쎄울』, 그것은 이제 다시는 철거민을 가림막 임시 담장으로 가리지 않고도, 허상의 애드벌룬을 띄우지 않고도 손님을 초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썬데이 서울 ● 그 女子는 너무 쉬운 문장 아무나 눈을 돌려 / 흘끗 훔쳐 읽기 좋은 여자 / 가판대 앞 선 채로도 후루룩 읽혀지는 / 펜팔구함_경기도 고양시 합정동 68번지_이름 장대혁_나이 19세_직업 학생_전화 354-1865가 이데올로기의 전부인, / 물리 공책과 수능 완전 정복 사이에 낑겨 있다가 킥킥 / 돌려지던 여자 / 사랑방 보료 밑에 오래 깔려 있던 / 자랑스런 대한 남아 조병익 병장 침낭 속에서 / 며칠 밤 불침번서는 여자 / 때로 서울-순천행 고속버스 뒷좌석 그물망에 걸쳐 앉았다가 / 본격적으로 읽혀지기도 하는, 그러나 대부분 / 단숨에 읽히고 거침없이 툭, 버려지는 여자 / 버려져 다 찢겨지고도 / 몇 차례 더 읽혀지는 / 너무 쉬운 女子 / 아무에게나 배시시 눈꼬리 흔드는 / 늦여름 패랭이 같은 / 시대여! 나여!_무명씨의 詩 중에서
아시아는 처음 그들에 의해 해 뜨는 변방으로 불리어졌다. 그 시샘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오리엔트, 제3세계, '구원'되어야할 계몽의 대상, 급기야 제국주의 '침탈'의 대상으로 바뀌어갔다. ● 그 누구도 이를 막아낼 힘은 없어 보였다. 토착지 제3세계가 식민지 해방전쟁 등의 민중들의 자발적인 저항의지를 통해 급기야 자주적인 독립 국가들로 거듭나게 되었지만, 제1세계의 보다 세련화된 자본의 경제적 침탈이라는 저강도 전쟁으로 인해 다시금 미완의 독립으로 끝나고야 만다. 얼굴을 바꿔 그 지배를 계속해오는 임무교대, 그것은 이제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이름으로 진액을 공출해간다.
그러다 문득 우리 앞에 다가온 다원주의(multipluralism). 목하, 타자(the Other)의 시대란다. 소수자, 이교도의 시대, 이종교배(hybrid)와 크로스오버(cross over), 덧붙임(collage)과 패스티쉬(pastiche), 그 어느 방향으로든 그 어느 이념으로든 마음대로 전이할 수 있는 실로 축지법적인 디지털의 세계. ● 실로 미술은 해방의 공간을 맞이하는 듯 보였다. 이제 미술은 사물에 대한 '태도(Attitude)'만이 문제로 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당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Live in your head)을 주목하라." 하랄트 제만에 의해 주창된 현대미술의 키워드, 과정(Process) 개념(Concept) 상황(Situation) 정보(Information) 들은 이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그러나 본 전시는 이들 다원주의에 대한 '의심'을 중심축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것은 혹 우리가 얻어낸 전리품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을 구체화 해보고 싶은 것이다. ● 그것은 우리에겐 여전히 재현에 대한 지속적인 의무가 있고 삶의 문화적 양식자체를 변혁시켜야하는 실천과제가 놓여있다는 반성에 기초하고 있다. 늘 한걸음이 늦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은 보다 복잡한 산술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간적, 공간적 온도 차이에서 발생하는 태생적인 아시아적 상황 혹은 제3세계적 상황으로서 이른바 전통성과 현대성의 충돌이 그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들 언어의 의미는 설사 동시통역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영원히 메꿔질 수 없으며, 또한 우리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반추해야하는 우리로서는 이중의 연산(algorism)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 그것은 이중의 연산자이다. 그 하나는 시간의 축이요 다른 하나는 공간의 축이다. 예컨대 오리엔탈리즘에도, 그렇다고 옥시덴탈리즘에도 의탁하지 않는, 경계적 시각을 넘어서 있는 모습이다. 또한 그것은 수세적.방어적 노예의 논리의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즐겁게 향유하는 것으로서의 난장, 놀이인 것이다. 그것은 있음(有)을 없음(無)으로 만드는 용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것은 '삶 속에서 삶과 함께 궁굴르는' 거리에서의 모더니즘이다. '파출부 구함', '홀 써빙 구함' 등속의 허접한 벽보들이 바람에 나풀거리는 우리집 골목길 풍경에로의 흔연한 초대인 것이다. 발상의 전환, 주류의 전복, 왜곡된 상식의 회복, 발랄한 일탈은 이들 풍경 안에서, 전통과 혁신사이의 경계적 시각을 넘어서 있는 모습, 그 잡탕을 뚫고 나오는 진정한 극복 속에서 비로소 가능해지리라는 것. ● 여러분을 '지금 이곳, 서울'의 현실로 초대하는 이유이다. 이른바 낮과 밤사이, 경건과 비속사이에서, 황색 잡지와 철학사이, 춘화와 성화사이에서의 사색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곳 서울에서 손님들을 맞이할 것이다. 오라 서울로, 가자 세계로! ■ 대표집필 박응주
Vol.20031203c | 웰컴 투 쎄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