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3_1126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기태_김윤호_김지범_김현민_김혜원_양재광 이주형_염중호_정은정_최원석_최재경
후원_한국문예진흥원_Darling Art Foundation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 서울 강남구 신사동 534-14번지(가로수길) Tel. 02_3446_1828
만:화-경(萬華鏡)_[명사] 장난감의 한 가지. 안에 세 개의 거울을 댄 원통에 잘게 오린 색종이나 색유리 따위를 넣은 것. 그것을 돌려 가며 들여다보면 여러 가 지로 변하는 아름다운 무늬가 보임. ● 올 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를 탐색하는 기획전이 가히 붐을 이룰 정도로 많이 개최되고 있다. 공공 미술관에서부터 대안 공간에 이르기까지 앞을 다투어 개최되고 있는 도시 풍경을 대상으로 한 현재의 전시 열기는 물론 빠르게 진행되는 도심 주택 재개발 사업 이나 청계천 복원 사업 등에서 촉발된 사회적 관심과 맞물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 이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으로, 그것은 현대의 예술이라는 것이 앞서 고뇌하며 몸부림치는 천재적 작가의 시대를 초월한 지적 자산 가까이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동시대의 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그것에 서로 긴밀하게 반응하는 커뮤니케이션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조류에 긴밀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분야가 바로 사진과 미디어 아트라고 볼 때 특히 공간 문제를 다루는 이러한 사진전의 열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견고한 모든 것은 연기처럼 허공으로 사라진다.'는 칼 맑스의 경구가 한 세기를 지나서까지 여전히 큰 호소력을 발휘하는 듯한 이 시대 우리가 사는 이곳은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의 충돌은 물론이고 전근대의 가치와 세기말의 혼란이 뒤엉킨 기묘한 공간임에 틀림이 없다. 개발과 복구(진정한 의미의 복구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폭력의 상처를 외관상 덮어버리는 정도의)의 불협화음 속에서 도심 한복판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그곳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지속적으로 겪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천천히 엄습해 오는 이러한 공포를 해결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암묵적인 분위기 속에서 예민하게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예술인들이 도시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위와 같은 공간들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애매한 한국적 공간에 눈길주기! ● 사진 이미지는 세계와 우리 자신 그리고 타인을 보고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카메라는 근대의 실증주의를 위하여 봉사했고, 그것은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기록했던 관찰 가능하고 수량화할 수 있는 사실들이 언젠가 인간의 질서 안에 놓일 자연과 사회 양자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즉 세계, 공간은 더 이상 신비롭고 측정이 불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모든 기술적 수단과 계산에 의해 분석 가능하고 객관화된 대상으로 변화하였다. 특히 사진은 모든 세계를 대상으로 하여 그 대상을 기록하고 증명하고 분석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 사진은 산업 혁명의 산물이다. 즉 사진은 한 사람의 우연한 발명가에 의해 발명된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으로, 그것은 서구 부르주아 계층의 이상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그 서구 부르주아의 이상을 대변하던 사진이 우리 사회 안에서는 어떤 계층의 무엇을 대변하고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공간을 잘 살펴봄으로써 사진이 무엇에 봉사하고 있고 그에 따라 어떤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적 공간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한국 사회라는 공간을 놓고 애매하다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디서부터 그러한 애매함이 생겨났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수많은 공간 안에는 근대라는 서구의 문명이 이 땅에 들어오며 생겨난 많은 문화들이 있다. 근대적 공간은 우리 사회가 서구화를 지향하면서 생겨난 공간들을 의미하며, 또한 그 공간들은 우리의 전통적 공간과 혼성되어 만나는 애매한 지점을 갖고 있다. ● 우리의 근대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터전이 서구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하여 그것을 서구의 것과 동일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서 근대성의 구축은 결국 서구적 가치관의 정립을 뜻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은 일제의 근대 이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근대를 그것의 형성을 방해하고 억압하는 대상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의 자각과 고민을 통하여 얻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것을 일제의 이식에 의해 별다른 갈등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봉건적 사회 제도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을 혼합한 형태의 기묘한 문화를, 약간은 애매하고 약간은 우습기도 하며 약간은 엉성하기도 한, 그런 모순적인 공간을 연출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선은 서구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 드러나는 것들이고, 그저 우리 사회 안에서만 본다면 그냥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익숙한 하나의 현상들일 뿐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면 그것 또한 우리 문화의 한 단면들이 되는 것이다.
사진가들은 이러한 모순된 사회 현상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에 대해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작가들은 오늘 이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반성하여 그것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구 사회는 근대성의 반성을 통하여 자신들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역시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만 하는 시점에 있다.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가져오는 모든 문화의 중성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작가들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적인 외국 사조의 수입이나 우리 문화가 그들의 시각으로 평가되는 것보다는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현실과 합치하여 그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 지역 문화 예술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지역주의 문화에 대한 완성과 실천이 아닐까 싶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를 포함해 올 들어 기획된 여러 전시에서 젊은 작가들이 보여 주는 공간에 대한 인식은 불과 수년 전까지 보여 주었던 기성 세대의 그것들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어 흥미롭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주변 공간을 감성적인 차원에서 독특한 분위기로 보여 주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또한 급변하는 내 주위의 환경을 기록하고 보존해야겠다는 어떤 절박한 심정이나 사명감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자신들이 바라본 공간에 대한 사회학적 탐구와 인문학적 상상력이 두드러진다. 때론 차갑게 때론 뜨겁게 자유로운 방식으로 도심과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도시의 이미지를 모으고 이를 분석하며 나아가 이를 스스로가 즐기고 있다. 선배 세대들이 사진 매체의 특성을 기록성에서 찾아 그 무기를 이용하여 사진기 바깥의 세상을 사진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면 요즘의 젊은 작가들은 사진을 통해 급변하는 주변 환경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애쓰고 있으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개별적인 투쟁 그 자체를 향유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찾은 감각의 새로운 요소를 함께 느끼고 즐겨 보라고 대중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이들의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은 향수를 자극하는 서정적인 세계로부터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으며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긴박한 메시지에서도 약간 비껴나 있다. 알쏭달쏭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고 가벼운 듯 부담 없지만 쉽게 지나치기엔 뭔가 찜찜한 그런 애매한 풍경들이다.
팽창, 소비, 소외, 분절, 절충, 분열, 상실 등이 뒤엉킨 이 복잡한 세상을 향해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이 던지는 메시지를 한 마디로 묶어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애매한 풍경을 향한 애매한 메아리로 남을 소지도 있다. 쉽게 해석하고 쉽게 대안을 내놓기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가 없으리라. 오히려 이런 이유로 공간 문제를 이슈로 하는 현금의 기획 전시의 봇물에 새로운 물줄기를 대는 이러한 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단 커다란 흐름의 가닥을 잡고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한 시기이다.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국지적으로 행동하라.' 사진을 통해 발언하려는 작가들이 가져야 할 문제 의식에 딱 맞는 말이다. ■ 권순평.염중호
Vol.20031125a | 만화경(萬華鏡)-애매한 한국적 공간에 눈길주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