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타고 오줌누기

하용석 개인展   2003_1125 ▶ 2003_1209

하용석_트럭타고 오줌누기_혼합재료_350×400×200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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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展 / 2003_1125∼1202 서울展 / 2003_1203∼1209

미공조형예술연구소 서울 강남구 역삼동 718-34번지 유진빌딩 5층 Tel. 02_562_6672

서울시내와 부산시내의 거리

1. 금번 개인전은 먼저, 형식적인 측면에서 구태적인 전시회 스타일을 버리고 움직이면서 돌아다니면서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즉 정해진 시간과 공간을 무시하는 형식이 되겠습니다. 작품은 조각과 설치가 혼재된 움직이는 입체작품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감상을 위한 사족, 미술은 무엇보다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게 평소 개인적인 소신입니다. 하여, 금번 개인전은 그러한 재미의 카타르시스를 집단화 혹은 사회화시켜 실천되어지고 있다는 힌트를 먼저 드립니다. ● 트럭의 짐칸에 오줌 누는 형상의 입체작품을 설치했습니다. 정해진 전시장은 따로 없습니다. 작품이 설치 된 트럭을 타고 그냥 부산과 서울 거리를 돌아다닐 것입니다. 오줌을 누면서...

하용석_트럭타고 오줌누기_혼합재료_350×400×200cm_2003
하용석_트럭타고 오줌누기_혼합재료_350×400×200cm_2003

2. 옅은 청색의 트럭 짐칸 위에 옷을 홀딱 벗어 제친 인간의 몰골을 하고 있는 세 개의 입체 조형물을 설치했습니다. 녹슨 고철 덩어리가 재료로 사용되었고 용접봉을 사용하여 피부의 질감을 일부러 거칠게 표현했습니다. 입상(立像)이 두 개이고 나머지 하나는 멍한 얼굴에 안경을 끼고 트럭의 난간에 걸터앉아 뭔가를 공허하게 응시하고 있는 꼴을 하고 있습니다. 마주보고 서서 오줌을 누고 있는 입체 나상들은 남성임에 분명하고 좌상(坐像)의 설치물은 여성으로 보면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여자도 서서 오줌을 눌 수 있고 남자 또한 앉아서 오줌을 보기도 하는 세상이니 시대에 맞추어서 별다르게 인식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상상해도 상관없습니다. ●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전시의 일차적 의도인 '재미'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트럭의 짐칸에서 자지를 떡하니 꺼내 놓고 대로(大路)를 달리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놈들의 모습과 그것조차 모자라서 누런 오줌까지 갈겨대는 건방진 태도에 있습니다. 분명 보통 인간들과는 다릅니다. 오줌 줄기도 세심하게 배려하여 한 놈은 굵고 시원하게 표현했고 다른 녀석은 고만고만하게 조절했습니다. 그리고 좌상 작품의 여성은 녀석들의 오줌 줄기를 즐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놈들의 짓거리를 한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구별이 불가능한 무심한 표정과 공허한 시선을 만들어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편 트럭은 단순한 운반책이 아니라 중요한 작품 도구로써 치밀한 사색 끝에 '선택'되어진 것입니다. 굳이 미술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선택된 오브제(selected object)' 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선택되는 순간, 트럭은 이미 거리의 보통 트럭의 이미지를 상실하고 은밀하게 의도되어진 화학변화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 나는 금번 작품의 표현과 해석을 실천적 의미에서 '장난'이라는 용어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장난의 본질은 실천적인 '놀이'와 '재미'에 있기 때문입니다. 놀이와 재미가 결여된 '장난'은 장난의 본질적 의미를 상실한 것입니다. 하여 열다섯 번째의 개인전이 되는 금번 '트럭타고 오줌 누기'는 조형적 표현과 예술적 의미에는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았고 대신 '장난'이라는 미술적 놀이를 통해서 '재미'의 의미를 극대화 시키는데 모든 사유의 초점을 모으고 있습니다. '재미'를 위한 의도된 미술적 '장난'인 것이지요. 나는 감히 말합니다. 미술은 장난이라고...

하용석_트럭타고 오줌누기_혼합재료_350×400×200cm_2003
하용석_트럭타고 오줌누기_혼합재료_350×400×200cm_2003

3. '오줌 누기' 작품들은 갖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녹슨 고철들이 녹아내린 용접봉의 쇳물의 힘으로 간신히 서로 의지하면서 매달려 인간의 꼴을 닮은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겉으로 얼핏 보면 사람과 유사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고철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전통조각처럼 곱게 다듬어진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폭탄이라도 맞은 듯 형편없이 파괴되어버린 흉물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고철을 이용해 재생시켜놓은 것입니다. 형체를 잃어버릴 정도로 훼손된 인간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봅니다. 참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합니다만 주로 비극적이고 비인간화 되어 버린 시대의 소외된 인간들의 황폐화된 정신을 의미하는 단어들만이 떠오릅니다_비극(悲劇). ● 그런데 비극적인 겉모습에서 돌연 쏟아져 나오는 오줌 누기는 상당히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재미_실로 오줌 누는 장면은 희극적인 상황을 아름답게 연출해내고 있습니다. 비극과 희극(喜劇)의 불균형적인 상극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이러니컬한 장면입니다. 희극에서 느끼는 당연한 재미는 그냥 재미일 뿐입니다. 그러나 비극에서 돌발적으로 불거져 나오는 웃음거리는 재미가 제공하는 최고의 카타르시스(catharsis)에 가깝습니다. 비극적인 모습의 고철 덩어리들이, 대로에서 갈겨대는 희극적인 모습들은, 미술적인 행위나 태도들이 극적인 카타르시스(배설)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비극에서 느끼는 희극적인 카타르시스는 매우 강렬합니다. 카타르시스를 애써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배설(excretion)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배설(排泄)_마음 깊숙이 억압되어 있던 감정의 응어리를 오줌 누기라는 배설 행위를 통해서 발산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카타르시스입니다. 금번 전시에서 '재미'가 외면적이라면 '카타르시스'는 내면적 초점입니다. ● 카타르시스. 배설_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정신이 은하처럼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참고 또 참았던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아무데서나(급하면 아무데나 실례하는 것 아닌가? -나만 그런가.) 오줌을 눈다. 그 순간, 배설의 희열이여...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그게 바로 카타르시스. ● 그러나 나는 이번 작품에서 그냥 오줌 누기가 아닌 '비판적 오줌 누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비판적 오줌 누기'란 카타르시스를 집단화 혹은 사회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줌 누기'라는 대리적 배설(vicarious satisfaction)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속의 억압된 응어리를 발산시키면서 불가해하고 불확실한 이 세상에서 마음의 균형이나 안정을 얻거나 회복할 수 있을까? 미술에 그런 힘이 있나? 오줌이나 누자... 야이, 쌰꺄, 오줌이나 쳐 먹어라 ■ 하용석

Vol.20031123b | 하용석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