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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128_금요일_06:00pm
롯데갤러리 대전점 대전시 서구 괴정동 423-1번지 롯데백화점 8층 Tel. 042_601_2827
생명률, 그 회화적 발현 ● 1. 예술이 요즘처럼 유행을 타는 시대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골격을 연구하기보다는 표정연구가 활발하고, 예술의 근육을 활성화하기보다는 피부를 우선 염려한다. 우리의 의식은 수백 톤의 수압을 견디며 바다 밑 해저탐사를 하듯 자신을 투척하여 현상계의 근저와 진리의 영역을 탐사하기보다는, 가볍게 자유로이 떠다니며 밀어냈다가는 다시 붙잡아 낚아채는 파도 같은 표피적인 움직임만을 갈망한다. ● 예술이 제의적 기능을 지나 형식적 실험과 표현성에 경도하며 인식의 확장을 가져온 후 다원주의적이고 포스트모던 한 현 사회가 도래하며 목적하는 것이 화장발처럼 유행하는 분장술을 목적하지는 않았을 것이리라. ● 요즈음은 예술의 범주에서 정체불명의 정치문화 용어인 「대중」을 볼모로, 예술의 본질적 영역의 제 탐구와 변혁 없이 상식적 이미지를 남발하고 작품의 소비유통 확산이 대중화로 잘못이해 되는 시대인 듯하다. 이 시점에서 미술은 다만 장식품이자 기호품의 생산에 이바지하며 미술가는 미술사를 빙자하여 당대의 시대와 충돌하지 않은 체 부유하며 휩쓸려 진정성의 예술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한다. ● 오늘날 이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과연 있을까 만은 가끔 치열한 사투의 마디를 마주할 수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 흔히 미술 작품은 조형의 제 원리와 방법론을 위시하여 미술사적 연대기 속에서 논해지고, 미학적 사유로 재 맥락화하여 그 존재를 자리 매김하곤 한다. 그러나 기존의 규범이 기준이 되지 않고 주도적인 중심의 논리가 해체된 현재에 주도면밀하게 작품을 전개해 온 중견의 작가를 단일한 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논한다는 것은 필자로서는 한계가 있다. ● 지배적 힘의 논리로 패권의 역사가 편재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개별적 정서를 우리의 시선보다는 타인의 시선으로 풀어내야만 공인되는 현실에서 예술의 독립적 자유영역은 협소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 한계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작업하고 있는 작가를 초대한다는 것은 본 갤러리의 작은 몫이기도 하다.
2. 작가 신중덕이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13회의 개인전을 통해 작품발표를 해오며 집중하여 다룬 주제는 최근의 명제인「생명률」로 집약된다. 1회 개인전에「자기회귀」로부터「물질에서 생명에로」, 그리고「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영광송」,「생명의 숨」등은「생명률」이라는 회화의 자율적 생명성의 표현을 위한 전도인 듯하다. ● 지금까지 작가 신중덕의 작품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크게 셋으로 구분하여 나눌 수 있다. 초기는 캔버스 및 물질에 대하여 부단히 필연화하는 프로세스적 경향의 단계이다. ● 캔버스 위에 드로잉을 하고 그 위에 몇 겹의 천을 씌운 다음 나이프드로잉을 재차 반복하여 잘게 썬다. 그런 다음 수지와 아교 등으로 다시 접착한 후 밑에서 열을 가하여 전혀 새로운 표면을 형성한다. 이렇게 하여 굳어진 표면에 흔적을(trace) 만들어 낸다. ● 이러한 제작방법은 작품자체가 회화냐 프로세스적 개념이냐를 떠나 미지의 사유세계를 시각화하기 위해 충분히 물질과 교감하려는 단계로 보인다. 이것은 어떤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내기 전의 물질과 충분히 일체화되려는 연금술사적 태도이다. 캔버스 자체를 경험하고 또 그 밖의 재료들을 통한 체험은 캔버스 자체를 열려진 장으로 의식하게 된다. 이것이 두 번째 시기로, 회화의 한계이자 절대조건인 평면을 새롭게 마주하며 생명의 자기회귀성을 인식했던 것이다. ● 이 시기에 작가는 여러 가지 형태소에서 의미소를 창출하기 위해 부단한 실험을 계속한다. ● 이 때 등장하는 유충과 모과의 파편을 소재로 하는 탄생과 소멸의 은유적 표현과 구조적이며 구축적인 추상화(化)는 물감과 선에 의한 단순한 기운생동차원의 추상충동적 표현이 아니다.
초기작업에 있어서 물질의 필연화 과정처럼 자연적 소재를 가지고 수없이 많은 반복된 작업을 통해서 대상자체의 형태적 자장에 치우치지 않으려 한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내재율을 파악하려는 이성이 자기논리를 강화하면서 화면에 필연적인 질서를 표현하기 위해 취하는 태도로 새로운 추상성을 가지게 된다. ● 세 번째는 그가 자연의 카오스적 패턴을 회화의 공간으로 환치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 작업에 어느 정도 논리성을 가지고 접근하는지는 그의 제작방법을 살펴보는 것이 효과적이라 본다. 두 번째 시기에서 등장하는 모과의 파편으로 화면을 구축할 때 추상으로 집약한 형태들 간의 결합구조를 심화 발전시켜 작품자체의 회화적 자율성으로 발현시켜 진동을 갖게 한 최근의 단계는 작품을 이성의 논리로 관념화하는 여러 표징들이 조형언어로 완숙하게 번역되면서 화면이 완결한 회화로 명료하게 융합되는 단계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이러한 단계까지 작품을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율적인 생명성을 부여하기 위한 전략이 정치되어 있겠지만 필자는 나름대로 방법론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 우선 그가 화면을 마주하는 것은 단일한 오브제로써의 캔버스가 아니라 열려진 장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무한히 열려진 우주의 혼돈한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든 집약하려한다. 그가 취하는 일차적 방법은 화면을 격자로 구획하여 형태성을 통어하면서 구축하는 방법이다. 마치 나일강 하구에 범람한 토양을 구획하여 질서를 부여한 후 경작을 하듯이 캔버스를 기하학적으로 대면하는 엄격성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평면적으로 인식할 때는 면의 분할이지만 공간성으로 전이되어 나아갈 때는 건축물의 철골처럼 구축되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의 질서를 갖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매우 중요한 방법론적 전략이 되고 있다. 색채와 마티에르가 동일화된 형태는 공간과 공간 사이에 배치되고 공간은 또한 형태와 형태 사이의 긴장관계를 형성한다. 이 형태들의 밀고 당기는 길항작용이 바로 화면에 리듬을 부여하게 된다. ● 우주의 자연 질서를 이해하고자하는 정신적 추구는 색채의 화려함에 앞서 그 질서를 기하학적으로 패턴화 하는 것을 우선한다. 따라서 일체의 색채는 그 질서에 부합되도록 제 대비에 관여하며 상징적으로 다루게 된다. 그러므로 작가 신중덕의 색채는 망막에 호소하는 현란함이 아닌 만다라의 기하학적 구조와 동일화된 색채처럼 설계된다, 다만 그 구조의 구축에 있어 프랙탈적, 카오스적 패턴을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3. "우주를 상호 역동적인 망으로 이해한 후 탄생과 소멸의 우주적 순환 고리를 일종의 은유로 포착하는 이 작업들은 흑과 백, 사물과 그림자, 의식과 무의식 등 제 대비의 형식을 가지며 사물을 기호의 파편으로 다루고 매스와 흐려짐의 방식을 통하여 은둔과 발현의 현상을 반복한다" (신중덕) ● 이 말은 회화적 표상에 있어서 생명성의 표현 가능성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작가 신중덕이 생명성에 대한 회화적 비전을 제시하는 구체적 언표이다. 작가는 평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생명체의 3요소인 형상, 질료, 생기와 칸트가 생물에 대한 본질을 설명한 「자기를 재생하고 자기를 조직하는 전체」라고 하는 이 말을 근거로 생명을 이해하려고 하는바, 생명의 초 물질성과 자기조직화라는 본질을 이해하면서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생태학적 세계관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역설한다. ● "그것은 물질, 구조, 양이라는 실체에서 패턴, 질서, 질이라고 하는 형상으로의 전환이다. 즉 대상에서 관계로 양에서 질로, 실체에서 패턴으로의 전환이다. 그것은 바로 조직패턴이다. 이러한 자기조직의 패턴에 대한 이해가 생명의 본질에 대한 필수적인 이해다. 자기조직화는 생명에 대한 시스템적 관점에서 중심적인 개념이다. 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생명에 대한 이해는 패턴의 이해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시스템은 구조적 연결과 순환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환경과 상호작용을 한다. 따라서 부분에서 전체로의 환원은 대상에서 관계로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형상에서 배경으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신중덕) ●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위의 논리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논리에 입각한 여러 동양적 사유와 결합되며 상호보완 된 논리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욕구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욕구를 회화의 장에 현현한 이번 작품들은 그것의 완성정도를 증명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위의 모든 언급에 입각하여 다시 설명한다면, 형태는 공간에서 파생되고 그 공간은 또다시 형태 사이에서 존재하므로 이들은 상호 동시에 생성된다. 이것이 어떤 생명성의 관계망을 형성한다. 이것이 상호 유기적인 패턴을 형성하여 그것의 회화적 승화가 어떤 아우라를 형성하는가가 생명성에 대한 회화적 발현의 관건이라 할 것이다. ● 우리가 그의 회화를 마주했을 때 평면의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공감각 속에서 무한한 관계망의 진동을 느끼거나 바다의 표면이나 인상이 아닌 바다의 부피감(전체성)을 느끼는 것, 또는 그 화면에 나를 던졌을 때 그 속에서 파동을 일으키며 삼켰다 밀었다를 반복 할 것 같은 환상을 경험하는 것.... 이것들이 여느 작가의 작업들과 상이하게 비교되는 점이라고 할 것이다. 우주의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그저 제멋대로 놓여있는 것 같지만 행성들 간-공간들 간-의 고도의 긴밀함으로 관계망을 형성한다는, 그것의 압축된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으리라. 우주의 생명률을 회화로 번안하려는 이 도도한 탐구는 결국 아무나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고 또한 아무나 만족시키려 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전시에 부치는 글을 마치고자 한다. ● "회화 작품이 그것을 그린 화가에게 있어서는 또 하나의 우주요 세계라는 평범한 관점에서 하나의 세계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평을 엿보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응집에서 확산으로, 해체에서 집적으로의 순환을 되풀이하는 나의 작품 세계는 어둠과 빛을 구분한 태초의 신화에 비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술가란 어떤 의미에서든지 작은 창조자이며, 그가 하는 일이란 결국 혼돈(chaos)에 질서(생명률)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윤후영
Vol.20031123a | 신중덕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