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3_1121_금요일_05:00pm
갤러리 정미소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02_3446_3301
비디오 형식주의_박준범의 작품들에 대하여 ● 2000년대의 비디오 아티스트란 어떤 것인가? 비디오 아트라는 장르가 더 이상 첨단예술도, 지적인 예술가들의 배타적 영역도 아니게 된 이제, 웬만한 학생들마저 디지털 편집장비와 PD-150 같은 방송용 장비들로 무장하는 오늘날의 미술계에서 비디오 아티스트는 어떻게 자신의 고유명을 지니는 예술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서동진의 말처럼, 비디오라는 매체 자체의 수행적(performative) 성격에 의해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일상을 기록하거나, 점점 보편화되어 가는 촬영과 편집, 그리고 상영의 용이성에 의해 미술이 꿈꾸어 온 창작의 대중화, 아니 시각적 생산의 보편화와 등가적인 무엇이 될 것인가? 박준범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아직은 예술적 창작이 예외적인 생산방식과 관련이 있으며 그것은 매체 의존적인 것이 아닌 좀 더 복합적인 사고의 기술에 의해 파생되는, 특별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작가들 가운데 한 명이다. 박준범은 자신의 작업에서 비디오의 장르적 특성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형식주의를 구사한다. 예를 들자면, 그는 자신의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세 가지 정도의 서사 장치들을 사용한다. 연극적 소격(疏隔, distanciation)과 원근법적 왜곡(anamorphosis), 그리고 저속촬영이 그것이다.
박준범의 작품 속에서 연극적 소격은 기본적으로 신체와 카메라의 위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는 카메라를 피사체에 대해 직각으로 사용함으로써 정면성과 평면성을 강조한다. 주로 광각으로 꽉 들어차게 조준된 대상은 정면으로 향한 카메라의 깊은 심도에 의해 평면성을 띠게 된다. 2000년을 전후해서 만들어진 비디오 작업들에서부터 박준범은 평면화된 배경 위에서 손으로 사물들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마임을 연출함으로써 놀라운 시각적 효과를 얻어내고 있다. 아파트의 옥상 위에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손으로 자동차와 행인들을 움직이는 것처럼 촬영한 'Parking'은 마임 퍼포먼스와 회화적 평면성, 그리고 일본의 인형극인 '분라꾸'(文樂)에서 발견되는 연극적 장치로서의 신체를 동일한 서사적 맥락 위에서 연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지적 연출은 'Crossing', 'excavators', 'Escalator' 등의 연작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그의 작품들을 창작의 동시대적 유형 뿐 아니라 광학적 시각의 오랜 전통 속에서 논의되어온 보다 고전적인 문제들(의미론적 원근, 카메라 옵스쿠라, 눈속임 등)에 연관시킨다. 박준범은 'Warp Gate' 연작에서 매우 유머러스한 장면을 연출한다. 카메라를 옆으로 눕혀 찍은 도시의 풍경을 공상과학영화의 다소 상투적인 배경, 즉 중력과 무관한 행성이나 스페이스 스테이션의 등가물로 삼아 작가가 직접 손에 든 다양한 형태의 핸드폰들과 리모컨들이 우주선이나 스페이스 셔틀처럼 서서히 이륙을 거듭한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다소 전지적 시점을 함축하던 손들은 여기서는 확연히 연극적 장치로 드러난다. 브레히트적 무대공간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일본의 '분라꾸' (무대 위의 조종자들이 인형들 뒤에서 검은 옷을 입은 채 그대로 노출되는 인형극 형태로 잘 알려져 있다. 연극적 약속에 의해 관객은 이들이 안 보이는 것으로 간주한다)를 인용한 듯한, 가장 급진적인 소격의 사례가 되는 이러한 방식은 비디오의 서사가 전자적, 시각적 가상성 보다 오히려 (뒤샹의 표현을 빌면) '회백질'의 가상성에 의해 더 많은 변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원근법적 왜곡'은 가시적 현실 속에 내재하는 비-가시적 현실, 즉 일종의 가상현실을 다루는 기술이다. 15세기로부터 시작된 이 기술은 주로 회화와 조각에서 사용되어 온 만큼 광학적 배치 이외의 어떤 다른 전자적 효과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박준범은 의도적으로 비디오를 전자적 장치가 아닌 광학적 배치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작업과정에서 매우 정교한 카메라의 각도설정과 반복적이고 숙련된 신체적 퍼포먼스를 추구한다. 그는 실사(實寫)에 의거하는, 많은 고통이 따르는 이러한 작업이 비-가시적 현실의 잠재성을 드러내려는 애초의 의도와 일관된 것이므로 감수할만한 것이라고 말한다. 고정된 시점에서 원근법적으로 배열된 대상들의 거리는 윤곽의 평면화와 더불어 거리의 전위(傳位)를 일으킨다. 원근법적 왜곡이 공간적으로 비-가시적 현실을 드러내는 기술이라면 저속촬영은 그것의 시간적 등가물이다. 일상적인 시간 속에서 파악되지 않는 현실은 약간의 가속이나 감속에 의해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변형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시간의 가속이나 감속은 정상적인 속도라는 것이 어쩌면 수많은 현실의 가능태들 가운데 극히 예외적인 경우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탁월한 수단인 것이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기록된 박준범의 퍼포먼스들은 3, 4분 이내의 짧은 시간들로 축약되면서 의미론적 변형을 보여준다. 작품을 작동시키는 중요한 요소는 퍼포먼스의 상징성이 아니라 형식 속에 포함된 배치물들의 관계다. 'Anchorage'는 알라스카의 주도(州都)이면서 '정박'을 의미한다. 어두운 밤 바닷가에 정박된 두 채의 배가 서로 부딪히는 장면을 포착한 이 작업에서 그는 단순히 시간을 가속함으로써 배들의 움직임을 축소된 스케일로 전환시키면서 동시에 그것들이 일으키는 마찰음을 일종의 모르스 신호로 바꾸어 놓았다. 이 작품에서는 (손으로 대표되는 연극적 요소들이 생략된 채) 카메라의 앵글과 가속, 이 두 가지 요소만으로 피사체를 변형된 관계들의 선이 관통하는 이미지로 바꾸어 놓고 있다.
최근작인 'Acrophobia'에서는 박준범 자신의 스포츠에 얽힌 경험이 소재가 되고 있다. 여기서 '고공공포증'이란 어렸을 때 야구공에 맞은 기억 때문에 '높이 뜬 공'을 두려워하는 스트레스를 빗댄 표현이다. 그는 한 밤중의 텅 빈 농구장에 수 십 개의 농구공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통해 마치 그러한 갈등을 대리해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에서는 이제까지 그의 비디오 작품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시각적 효과들이나 형식적 요소들 대신 자전적 서사를 둘러싼 퍼포먼스가 중심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도 카메라의 앵글과 공들이 날아가는 방향은 원근법적 공간에 대한 미묘한 왜곡을 일으키고 있다. 카메라 방향의 화면 프레임 바깥에서 날아가는 공들의 운동과 반동은 조명에 의해 극적으로 평면화되어 있는 공간에 매번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거리를 만들어내면서 멀어져 간다. 여기서 공이 튀는 소리는 평면과 극단적인 소실(vanishing), 운동과 공간의 축소와 같은 상반된 관계항들의 경계를 표시한다. 박준범은 여기에서 그가 강조한 '형식주의적 우위'가 시각적이고 반복적인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형식적 요소들의 관계 또는 작동방식에 대한 것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박준범은 근래 비디오 작업을 하는 작가들 가운데 신체적인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노동이 행위의 제시가 아닌 작품의 재현적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도록 보여주는 매우 드문 작가들 가운데 하나다. 그의 작업들 속에서 원근법적 스케일에 개입하는 신체는 심지어 가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을 때조차 분명하게 이미지의 의미론적 순환 속에 각인 되어있다. 이것은 미술의 오랜 문제이면서 매번 다르게 질문되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형식을 어떻게, 어떤 수준에서 다루어야 할 것인가. 그는 이 (특히 오늘날의 비디오 아트에 있어) 예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매우 훌륭하게 시작하고 있다. ■ 유진상
Vol.20031121a | 박준범 영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