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강요   완벽하게 다른 것들에 대한 오해

장미라 사진展   2003_1119 ▶ 2003_1125

장미라_coercion of image part 2-17_디지털 실버프린트_100×66cm_200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룩스 홈페이지로 갑니다.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보이지 않는 권력과 사진적 저항오늘날 예술 특히 사진예술에서 사진이 예술에 접근하는 것은 그림에 의해서가 아니라 연극에 의해서이다. (Roland Barthes, La Chambre claire, Paris, Ed_de Etoile, Gallimard, Le Seuil, 1980, p.55) 왜냐하면 사진은 우선 직접적인 작가의 번역을 허락하는 그림과는 달리 심리학에서 말하는 은폐-기억(souvenir- cran)과 같이 위장된 상황적 연출 즉 '현실 효과'를 가지는 부조리 연극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의 관심은 더 이상 모더니즘 예술이 말하는 언제나 하나의 원칙으로 된 원본과 복사의 진위 문제가 아니라 그 원본과 복사 이전 존재의 진실에 있게 된다. ● 프로이드 심리학에서 억압과 퇴행은 심층 자아에서 잠재적으로 거의 무시간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이 우리의 의식을 구성하는 표층으로 돌출할 때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위장-은폐한다. 사진의 경우가 바로 이와 같은 이중 구조를 가진다 : 시각적으로 출현한 사진 이미지는 상황과 진술로 위장된 지표(index)이며 그 지시대상은 의식 밖에 잠재된 어떤 불확실한 존재를 암시적으로 지시한다. 그때 사진적 행위(lacte photographique)는 작가 자신의 심층의 것들을 예술적 형식을 빌려 상부에 표출시키는 일종의 무언극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시론적 행위를 '사진적인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는 곧 영역들의 폐쇄성과 자치성의 전복 곧 모더니즘의 종말을 암시함과 동시에 오늘날 포스트 모더니즘의 실재 다시 말해 유일하게 상황적 연극으로만 가능한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탁월한 예술적 실행 방식임을 말하고 있다.

장미라_coercion of image part 1-2_디지털 실버프린트_34×51cm_2003
장미라_coercion of image part 1-3_디지털 실버프린트_34×51cm_2003

오랫동안 사진은 의미의 자리인 동시에 창작의 원천이 되어왔다. 거기서 작가의 감정과 정열은 모더니즘 그 자체였고, 합리와 보편 그리고 굳건한 이성에서 안정된 '자아'의 믿음은 서양철학의 공통된 믿음이었다. 그러나 모더니즘의 의혹에서 재생, 복제, 판박이, 시리즈, 반복 등의 예술적 도구로 활용된 사진은 더 이상의 의미와 코드의 영역에서 어떤 해석학적 대상이나 분석적 실체가 아니라, 예술의 독창성과 아우라로 무장된 모든 주관성을 파괴하고 작가의 개성과 그리고 합리와 보편적 주제를 전복시키는 역설적 도구로 이용되었다. ● 여기 보여진 작가 장미라의 사진들은 오늘날 물질적 가치만 가지는 집단 사회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부표(浮漂)들로 위장 - 은폐된 무기표의 신호들임과 동시에 작가 자신의 무언의 외침들이다. 작가가 소통이 단절된 세상에서 말더듬이가 용기를 내어 서툴게 말을 시작하듯이 그렇게 전시를 준비했다고 스스로 말하듯이, 사진들은 결코 명쾌하지 못한 어정쩡한 제스처로 나타나다. 논리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들은 거의 수수께끼처럼 나타난다. 작가는 또한 자신이 아닌 사진과 몸에 대한 첫 대화를 하고자 했다고 말하지만 그 대화의 도구로서 사진들이 얼마나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질문은 거의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부조리 연극처럼 사진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의미체계 속에서만 읽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오히려 연극 배우 자신의 메시지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설득만이 있을 뿐, 단지 무엇을 존재론적으로 지시하는 그러나 막연한 그 무엇만이 있을 뿐이다. ● 작가는 무엇이든지 팔아 치우는 자본주와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팔기 쉬운 것은 몸, 바로 몸 이미지라고 한다 : 모니터 주사선에 일그러진 포르노 매춘 여자의 얼굴들, 거대한 광고판 귀퉁이를 보여주는 모델들의 성적 이미지들, 크게 확대된 광고 모델 얼굴과 눈 코 입 등은 일종의 문화적 코드로서 오늘날 공통된 성적 아이콘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스처 뒷면에 오히려 자본주의와 상업주의가 배설하는 뻔뻔스럽고 가증스럽고 파렴치한 속물주의를 지시하고 있다.

장미라_coercion of image part 1-15_디지털 실프린트_34×51cm_2003
장미라_coercion of image part 1-21_디지털 실프린트_51×34cm_2003

이러한 이미지들은 80년대 초 몇몇 미국 작가들의 슬로건들을 상기시킨다 : 대표적으로 리차드 프린스는 말보르 담배 광고에서 서부 개척 땅에서 말달리는 카우보이를 보여주는 물신적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물질 사회에 은밀히 지배하고 있는 제국주의적 영토 확장과 남성 우월주의 신화를 암시한다. 또한 대중 이미지에서 유통되는 판박이 사진으로 도용과 조작을 시행하고 특히 광고 간판 이미지를 확대 재단하여 텍스트와 조합하는 여류 사진가 바바라 크루그 사진의 예는 암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권력(미셀 푸코)에 대항하는 저항을 볼 수 있다. ● 특별히 크루그에게 '판박이'는 매체를 통해 지배와 특권 사회를 형성시키는데 필연적인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대중 이미지가 단지 집단과 물질사회를 지배하고 복종시키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성(sex)적 차이에서 오는 재현에 대한 예리한 사회적 비평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미지는 단순히 페미니즘적인 어떤 분명한 요구를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모든 법칙이 남성 우월적인 세상 한 가운데에서 상품화된 성 언어와 재현 사이의 의문을 던진다. ●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작가의 몸 이미지 사진들을 보이지 않는 권력에 저항하는 페미니즘의 슬로건, 말하자면 우리의 문화적 코드에서 이미 상품화된 성에 대한 부조리 연극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다양성은 무시되고 단지 성적 가치로서만 존재하는 여성성, 성기가 아닌 사회적 권력으로서 획일화 된 남성성, 끊임없이 잘리고 잘려 파편화된 상품으로서의 몸 그리고 몸 이미지의 범람, 흘러 넘치는 욕망의 홍수 등의 보이지 않는 성적 폭력에 여성들은 탈 인간화된 성적 대상, 물건이나 상품으로 제시된다. 보여진 사진들은 이러한 사회적 부조리와 제도적 모순 그리고 편견적인 권력을 함축하는 각본 없는 상황적 진술로 간주된다.

장미라_coercion of image part 2-14_디지털 실버프린트_66×100cm_2003

범람하는 광고의 몸 사진 이미지들이 암시하는 또 다른 메시지는 집단 중심으로 코드화 된 의미와 가치의 폭력이다. 과도한 물질 중심 사회와 대중 매체의 급성장으로 특징지어 지는 오늘날 정보 사회에서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의미와 절대적 가치 즉 문화적 코드와 판박이(유행, 유명 브랜드 등)를 말하는 '이미지-모델'만이 통용될 뿐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진으로 재현되는 작가의 일인칭 독백은 오늘날 이미 상실된 우리들의 내면적 자아(Moi)에 대한 일종의 상황적 무언극이라 할 수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사진들은 유일하게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페미니즘과 상업화 된 성에 대한 단순한 폭로나 고발만을 표명하지 않는다. 작가의 태도는 오히려 사진이 제시하는 무언의 메시지 이외 어떠한 이슈도 명분도 없는 아주 냉정한 관찰적 태도(latitude dobservation) 를 보이고 있다. 거기서 사진은 이러한 부조리 연극을 위한 상황적 도구로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 상상적 구성(연출)에 의한 집단적 자아와 맹목적인 물신숭배를 폭로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이용된다. ● 결국 이러한 사진적 폭로는 오늘날 집단 사회를 우리 모두가 억압자이면서 동시에 피억압자이다(미셀 푸코) 라고 진단하듯이, 집단적 왜곡 현상에 대한 우리 모두의 방관과 묵인 그리고 이미 보편화된 무관심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모든 판단과 가치가 유일하게 집단적으로 코드화 된 것에 의해서만 통용되는 물질사회의 시뮬라크르(simulacre)를 지시하고 있다. ■ 이경률

Vol.20031119b | 장미라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