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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112_수요일_05:00pm
대안공간 풀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21번지 Tel. 02_735_4805
배윤주는 버려진 나무, 폐지 등 낡고 보잘 것 없는 재료를 작품에 사용해온 작가다.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고 사람의 눈을 끄는 매혹적이고 번듯한 재료 대신 버려진 재료를 사용하지만, 쓰레기더미 같은 날 것의 모습으로 관객의 눈앞에 들이대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시간 그 재료들을 찢고 붙이고, 뜯고 다시 붙이고, 때로 깁는 노동에 가까운 과정을 통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로 재생시키는 마술을 즐기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재료를 찢고 쌓고 붙이는 방법을 이용했다. 먹물이든 캔버스 천을 찢고 기워서 기둥에 감았고, 언뜻 모노크롬 회화처럼 보이는 두 점의 평면 작품 역시 캔버스와 폐지를 뜯고 붙여 층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소박한 재료에 대한 관심과 그것에 숨을 불어넣는 반복적인 기법과 함께 작업의 의미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고민이 깊어졌다는 것이 이번 세 번째 개인전의 특징인 것 같다. 먼저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작업을 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작가의 고민을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작업방식을 고수한 데서 짐작할 수 있는데, 그는 작업이란 남에게 보여줄 만한 뭔가를 만들기 위한 일이라기보다, 작가로서의 자신을 확인하고 또한 단련하는 과정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특히 채 1mm나 될까 싶은 화선지를 둥근 모양으로 찢어서 싹을 띄울 수 있을 만큼 쌓아올린 작품에서 그런 작가의 고민이 두드러진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화선지의 흰색, 폐지의 누르스름한 빛, 목탄의 검은 색 등 원재료의 색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모두 바랜 듯한 색이거나 무채색이다. 작품의 주제도 굳이 추상과 구상의 범주로 나눈다면 전통적인 의미의 '재현'적인 작품보다 추상에 가깝다. 하지만 공허하고 차가운 추상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각자의 기억 속 어느 풍경을 투사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고 있다. 배윤주의 작업이 모노크롬 회화나 추상조각과 구별되는 점은, 특정한 대상이나 풍경을 재현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어느 풍경을 연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낡은 청바지를 기워 벽면에 설치한 작업의 경우, 하늘의 구름처럼, 바다의 파도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주며, 천장에 매달린 크리스털들도 햇빛이 빛나는 어느 오후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그녀의 작품들은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지 않지만, 누구나의 기억 속에 있을 법한 풍경 혹은 공간의 느낌을 추출한 듯하며, 따라서 각자 떠올린 풍경이나 공간이 다르더라도 공통적으로 편안함과 위안을 얻게 된다.
외딴 작업실에서 작가가 혼자 보냈을 시간들. 작가의 그 시간을 먹고 자랐으면서 새초롬히 서 있는 화선지 조각 위의 푸른 잎처럼 "나는 작업을 치열하게 했지만 사람들은 극도의 편안함으로 봐주었으면 좋겠어..."라는 작가의 소망이 싱그럽게 자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이수정
Vol.20031112b | 배윤주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