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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112_수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필드워크에 강한 실전형 사진가 ● 지금도 세상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별 신기한 일들이 많다. 결혼이나 생활풍습이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결혼을 해도 남자는 아내와 함께 지내지 못하고, 어둠이 내린 다음에야 살그머니 들어가서 아내를 만나서 다음날 새벽 동트기 전에 그 집을 빠져 나와야 한다고 한다. 그뿐인가, 심지어는 집도 재산도 어머니가 물려받고 자식에 대한 부양의무나 권리도 모두 어머니 쪽이 갖고 있다. 이른바 모계사회라는 것인데, 이즈음 많이 흔들리고는 있으나 아직은 변함 없는 부계사회에 사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가족제도가 아직도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남아있다. ● 이 모계사회는 남성의 권위나 지배권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남성우위의 부계사회에 비해 사회의 안정도가 낮고 근대적인 산업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확립되면서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부계사회적인 가족제도가 일반화되어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는 해마다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어 부계사회적인 가족제도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독신 족이나 만혼, 요즘에는 성인 아이(Adult Children)이라고 하는 신종 어른까지 생겨나고 있고, 그래서인지 부계사회의 이런 붕괴 조짐에 대한 대안으로서 현대적인 모계사회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원래 모든 생명의 기본은 여성이라고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척추동물의 배아는 태아의 초기 단계에서는 모두 여성이지만, XY염색체가 만들어내는 남성 호르몬이 XX염색체인 여성을 제2의 성인 남성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얘기인데,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이것은 여성이 남성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지창조 무렵의 얘기와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인다. 나도 남자여서 무턱대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X염색체가 튼튼하고 강한데 반해서 Y염색체는 남자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뿐 거의 쓸모가 없는 열등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자는 존재이지만, 남자는 현상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생명의 원리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체계가 모계사회가 아닐까? 우리 어머니들을 보아도 그렇다. 논밭 일이며 가사 같은 생산적인 일은 여자들이 하고, 남자들은 예술이다. 정치다, 스포츠다, 전쟁이다 하며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일에만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납득이 간다. 어쩌다 남자들이 생산이라도 하게 되면 기껏 농약이나 고엽제, 핵무기 같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나 만들어내는 것이 십상이다. ● 수렵으로 단백질을 구하던 원시시대의 부족들은 거의 모두 모계사회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스스로 전분을 만들어내는 정착농경으로 바뀌고, 인구가 늘어나고 규모가 큰 전쟁들이 일어나면서 남성우위의 사회형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부계제가 사회 체계의 주류로서 자리잡아가게 되었다. 인류의 탄생을 대략 200만 년 전쯤으로 보았을 때, 우리 남성들이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부계사회가 나타나게 된 것은 불과 7,8천년 밖에 안되는 최근의 일이다.
요즈음엔 모계사회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전 세계의 563개 민족 가운데 모계에 기초를 두고 있는 사회는 전체의 15%인 84개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이 비교적 서양 문명의 영향, 특히 기독교의 영향을 적게 받은 아시아의 오지들이다. 이들 지역의 문화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나 지식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왜곡된 경우도 많다. 백지순은 중국의 소수민족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같은 지역에 남아있는 모계사회의 민속, 사회구조에 관해서 조사하고 이문화 속에서 찾아낸 것들을 영상으로 기록해오고 있다. ● 그는 필드워크에 강한 실전형 사진가다. 원래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그가 본격적인 사진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사진가 김수남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부터다. 김수남이라고 하면 일년의 절반을 주로 아시아 지역, 그것도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서 비교적 고유한 민속적 원형들이 남아있는 오지만을 찾아 다니며 민속신앙과 통과의례를 취재해온 아시아의 대표적인 '문화사진가'다. 그런 만큼 아무리 단단한 의지와 체력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자가 함께 따라다니며 해내기에는 벅찬 일이어서, 주위에서도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8년 동안이나 현장을 쫓아다니며 조수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가 그런 오랜 취재 경험들을 통해서 그 지역의 음식문화를 비롯해서 신앙의식, 친족관계 등에 대한 인류문화학적인 관심과 소양을 배양시켰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몇년전부터 스승의 뒤를 이어 소수민족의 삶과 정신문화라고 하는 뚜렷한 전문분야를 가진 독립사진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런저런 인쇄매체를 통해서 그가 취재한 기사와 사진을 보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되었다. 아직도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장소에서는 정령숭배와 같은 샤머니즘의 종교적 전통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도 특징이다. 사진가로서의 그가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진정 유용하고 가치 있는 주제를 선택한 것이 틀림없다. 백지순이 이문화에 대한 꾸준한 탐색과 기록을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고 하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어떤 중요한 단초를 잡아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김승곤
Vol.20031111a | 백지순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