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동산에......

백중기 회화展   2003_1112 ▶ 2003_1118

백중기_개나리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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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112_수요일_05:3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삶을 드러내는 그림의 순한 맛작가를 닮은 그림 ● 그의 속눈썹이 그렇게 긴 것은 정말 의외였다. 그를 몰랐던 건 아니다. 그와는 거의 이십 년을 알고 지낸 사이다. '안경을 찌를 듯이' 긴 속눈썹만 올해 들어서야 알게됐을 따름이다. 안경의 안쪽이 긁혀 렌즈를 자주 닦아내야 한다는 경악할 사태를 전에 상상하긴 어려웠다. 그러고 보니 짙은 쌍꺼풀과 갸름한 얼굴에 도대체 시골티란 없다. 여지없이 깔끔한 인텔리의 얼굴이다. 뜯어 본 이런 그의 얼굴, 그렇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이미지가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사는 산골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시골티 없는 그의 얼굴이란, 외려 이제야 발견한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셈이다. 원래의 그, 그렇게 선하기만 한 그를, 그림에서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꾸밈이라곤 없는 붓질이 자유롭다. 요란한 색으로 유치하지도 않다. 무던히도 무르익기를 기다려온 색들이 서로 어울려내는 색의 화음만이 오솔길을 따라, 야트막한 동산의 능선을 따라 흐르고 있을 뿐이다.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는 강한 색이 없는 오로지 순한 그림. 그와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날카로움과 매끄러운 처리로 화면을 차갑거나 명료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도 그를 닮았다.

백중기_구름재_캔버스에 유채_65.1×100cm_2003

문명에 대한 시선 ● 그의 순박한 그림은 문명의 날카로움을 거부할 수 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문명 자체를 믿지 않았다. 사실 문명의 발전을 자랑하는 것이란 인간이 지구에 얼마나 암적인 존재인가에 대한 일말의 양심도 없는 파렴치한 일이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란 생각은 얼마나 가소로운 생각인가? 그는 아주 쉽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놓고 있다. 나는 육, 칠, 팔, 구십 년, 이천 년대를 살아오며 개화된, 혹은 개화되려 노력한 존재이다. 호롱불에서 남폿불로, 남폿불에서 전깃불로, 네온사인 찬란한 불빛, 광속, 그 짜릿한 가속도, 초고속 통신망에 연결된 나는 그러나 이 시대의 문명을 본질적으로 의심한다. / 과학적인 합리성, 돈이 본질적 가치인 자본, 땅강아지 사라진 이 땅, 산성비 내리는 저 하늘을 보며 나는 의심한다. / 그림을 그리는 내 자아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은, 내 어릴 적 그때부터 지금껏 묵묵한 자연. 그 하늘과 땅 사이 공기를 숨쉬며 사시사철 피고 지는... 생명들. 내 명상의 처음과 끝은 온전히 거기에 머문다. / 모든 예술가들의 꿈과 희망의 몫이 저마다 있을 것. 시대와 호흡하며 더 바람직한 예술의 전망을 탐색할 것. 그 소중한 몫이 내게는 '되돌려 바라보기'이다. / 나는 내가 태어났던 그 좁다란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돌아가되 근본적으로, 어설프지 않게, 혹은 도피적일지라도 확실히 꿈꾸는 듯한 신화의 공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낭만적인 회귀는 부정할 것. 내 속에 현실로 살아 숨쉬는 선택일 것. / 그 퇴영의 공간이 이 시대와 어떻게 조화하고 부조화할 것인지 생각해보고 그려보고 살아봐야 알 일이다_백중기 그의 글만 놓고 보면,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되돌아보기'에만 머물려는 것은 확실히 유감이다. 회귀, 원형과 같은 주제도 조심스럽다. 하이데거의 '흔적'이나 데리다의 '해체'와 같은 전망 없는 암울함이 혹 드러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 그렇다고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가 하이데거나 데리다를 따라서 그런 전망을 내놓은 건 아닐 터이므로. 그의 생각에서 중요한 점은 물론 '문명에 대한 의심'과 그 타개를 위한 실천이다. 그 실천이 그의 그림이요 그가 사는 방식인 것이다.

백중기_김삿갓집 가는길_캔버스에 유채_100×72.7cm_2003

그림 속의 자연 ● 그의 그림엔 문명의 흔적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가 그리는 것은 거의가 '어떻게 그런 자연스런 산세가 생겨났을까' 감동하게 하는 그런 것이다. 사람이 개입된다 하더라도 잘 닦은 길이 아니라 지형을 따라 갔다가 막히면 돌아가는 오솔길 정도다. 흔히 보는 마을 뒤의 동산처럼 사람 사는 흔적이 언제나 남아있는 자연이긴 하지만, 거기에서도 자연을 꺾으려는 기세는 찾아볼 수 없다. 그림의 색을 봐도, 대체로 한가지 톤이다. 요란한 뒤섞임으로 현란한 기교를 내보이려하지 않는다. 거친 것이 있다면 그의 유동적인 붓질 정도다. 커다랗게 그어지거나 점들을 박아놓은 듯한 붓 자국들. 그 터치들이 다른 작가들에 비해 커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 그림 모두를 거칠어 보이게 하지는 않는다. 그의 터치란 큰 그림을 이루는 작은 요소에 불과할 뿐이다. 그림 안에 담긴 경쾌한 리듬 같은 것이다. 거친 숨소리로 그림에 그려진 형상 자체를 거스르며 부각되는 터치가 아니다. 그 터치는 숲으로 덮인 산의 질감이나 구름 가득한 하늘의 마티에르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백중기_별빛연가Ⅱ_캔버스에 유채_60.6×90.9cm_2003

시선이 드러나는 삶 ● 문명을 의심하는 시각이 그의 삶에서는 어떤 실천에 닿아 있을까? 삶과 유리되지 않은 작가를 우리는 기대하지 않았던가? 작가의 삶에서 그림의 내용을 읽어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말과 다르지 않은 삶, 철저히 담백한 삶이란 언제나 경이롭게 마련이다. 속된 인간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 그렇게 인생의 구차함을 벗어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그런 투명함이 뭔가 범접하기 힘든 사람처럼 느껴지는, 존경심을 절로 일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백중기가 사는 법이 딱히 그렇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그에게서 발견하는 그런 징후는 언제나 넘칠 만큼 많았다. 그건 그의 말과 다르지 않은 그의 사는 방법, 즉 실천을 예증하고 있다. 속류라고 흔쾌히 자신을 말하지만, 언제나 자기에게 철저한 삶. 작가의 시선과 실천은 그렇게 서로 닿아 있다. 그가 절망적인 농촌에 터를 잡은 것도 그런 실천의 한 예다. 가령, 무너지는 농촌의 현실은 심각하기 그지없다. 그가 성장하던 때, 그의 마을 중학교엔 학년마다 2학급에 120명에 달하던 학생이, 지금은 학년에 8명이 고작이다. 그의 나이 아래가 그 마을 청년 그룹에는 아무도 없다. 남들보다 배운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다. 그러니까 지금의 농촌은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버리고 떠나는 곳이다. 사정이 그러니 남아있는 이들에게도 애착만 강요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자본의 단맛을 아는 이들에겐 농사도 투기다. 값이 맞으면 밭뙈기로 넘기고, 값이 아니다 싶으면 아예 갈아 엎어버린다. 인력부족으로 제초제 없이는 아예 농사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무진장 뿌려대는 농약 농사. 그가 직접 겪고 있는 무너지는 농촌 현실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절망적일 듯한 농촌에서 그는 삶을 일구려 한다. 그렇다고 그가 그곳에서 사는 방식이 그림으로 울분을 토하는 방식 같은 것은 아니다. 전투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불씨를 살려내길 희망한다. 아직 우리가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는 자연은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리며 그대로 있는 것이므로. 그의 '돌아보기'가 긍정적일 수 있는 지점이라면 바로 이런 믿음과의 연결 때문일 것이다.

백중기_어라연Ⅰ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03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며 ● 이제야 발견한 그의 낯선 외모처럼, 그의 그림들 몇 가지에 의문이 없지는 않다. 변형된 형상의 단호함이 때로 드러나는 것. 형상의 경계가 선명한 그림도 보인다는 불만이다. 형상이 도드라지면 그림의 다양한 효과는 묻히고 만다. 내가 좋아했던 그의 그림이라면, 거친 붓질이 가득한 유동적인 선율들을 담은 것이었다. 색들을 엮어 무언가를 반드시 그려내겠다는 색의 배치가 아니라, 그저 붓질의 유동에 색을 맞춘 듯한 자연스런 터치들. 그걸 보면 그의 그림이 꽤나 고상한 미적 감각을 드러낸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효과들을 때로 단호한 경계선들이 방해하는 그림이 있다. 그게 나는 불만이다. 그런 잔소리를 그는 묵묵히 듣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단호함으로 자기를 주장하는 법이 없는 그는 격해지는 법이 없다. 단지 그는 자신의 고집을 결코 꺾지 않는다. 그의 반응이라면 그것도 그의 작품이며 현재까지의 고민이며, 그래서 그 모두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다는 정도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은 천상 그가 그린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당연하게도 그를 이 자리에서 내 입맛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로선 단지,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한 안내에 불과한 이 글의 역할에 충실해야할 뿐이다. ■ 최형순

Vol.20031107b | 백중기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