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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031_금요일_06:00pm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02_527_6282
인간의 욕망-다시 기록된 민화 ● 대학시절 서희화는 서양화를 전공하였지만 수묵산수화를 그리고 그 산수화 속에 상업적 캐릭터나 문구를 슬쩍 끼워 넣은 적이 있는데, 이에 끝이지 않고 온갖 PET병류와 플라스틱 폐자재를 이용하여 민화(民畵)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장면을 재현하기 시작하였다. ● 원래 이 같은 플라스틱제품들은 버려진 쓰레기에 불과하였는데 작가가 선택하고 조립하여 물감으로 칠해져서 그자신의 코믹한 자화상이 되기도 하고 민화의 한 장면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민화는 그려질 당시 민중의 소박한 공동소망이나 공동의식을 반영하는 생활화(生活畵)였고 이번 전시의 주제가 된「십장생그림(十長生圖)」에도 나타난바와 같이 거기 등장되는 소재들이 한결같다. 「십장생그림」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에서 그려져 오래오래 산다고 여겨져 온 상징적인 존재물들인 해, 산, 돌, 구름, 물, 소나무, 불로초, 학, 사슴, 거북이, 대나무, 복숭아나무 등이 그려지고 있다. 민화의「십장생그림」은 인간의 본원적인 소망, 늙지 않고 병들지 않으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이상세계(요지연도瑤池宴圖 등)에서 살고자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 작가 서희화는 이들 민화를 재현함에 있어 만들기블럭을 조립한 암사슴과 플라스틱세발자전거로 숫사슴을 만들거나 여러 개의 둥근 물통 뚜껑이 결합하여 해가되고 어린이용 의자등받이가 연결되어 구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소나무는 생수통과 마네킹다리들이 옷걸이와 함께 줄기와 가지가 되지만 솔잎들은 볼펜과 프러스펜의 대롱들을 동원하고 있다. 작가 서희화는 화실에서 식사할 때마다 사용했던 일회용 수저를 모아서 학의 날개를 만들었는데 꼬리 부분은 칫솔들과 빨래집게를 사용하고 학의 긴 목은 세탁기 주름호스가 사용되었다.
「서희화가 만든 거북보소! 거북등은 둥근 네모 소쿠리에 조립블럭들을 붙였는디, 거북머리는 인형머리를 뒤집어 연결하고 그 위에 우유통의 둥근 뚜껑 두개 붙이고 버너가스통 뚜껑에 인형눈알을 붙이니 영락없는 거북 눈깔이라! 눈 아래에 둥근 컵 하나 붙이니 코가 되고 콧구멍은 장난감 탄두 두개 붙이니 콧구멍이요 작은 코뿔소 코하나 붙이니 살아있는 거북얼굴일세. 자! 거북 발톱 보아라! 체스게임말도 붙어있고 둥근 체스 말을 붙이니 살아있는 거북의 발톱이구나!∼」만약 그 누가 서희화의 작품을 육자배기로 엮어 내린다면 현대판 민화 육자배기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 2000년 구 샘표공장 건물에서 공장미술제가 있었는데 서희화는 신명식과 한 조가 되어 600×600×500cm의 온갖 플라스틱 용기들이 붙은 설치작품을 공장의 높은 천장으로부터 출입구로 내미는 거창한 작업을 그 무더운 여름에 하였는데 그 작업의 노역(勞役)으로 두 사람은 학질을 앓은 사람들 같았고 쑥 들어간 눈만이 반짝반짝하고 있었다, 나는 그 설치작업의 큰 덩어리에 붙어있는 수 만개의 플라스틱용기들을 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을 읽을 수 있었다. 장수(長壽)를 위한 온갖 약병과 우유, 야쿠르트 등의 용기와 일회용 주사기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편리함과 장생의 욕망을 위해 사용되고 폐기된 썩지 않는 용기들이 괴물같이 달라붙어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이들 폐자재를 자신의 작품에 사용함으로서 「인간의 욕망」이라는 타이틀을 설정하고 있다. 더구나 장수를 바라는 인간의 소망(욕망)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는 「십장생그림」을 가장 현대적 형태의 폐자재와 만나게 한다는 그 자체가 예술적 사건이지만 전통과 현재를 충돌시키고 문화텍스트간의 소격화 현상을 일으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 그는 그 자신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위해서 민화라는 문화의 특수성과 인간의 욕망의 보편성에 그 자신의 예술적 방법을 관여시킴으로서 모두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자기 자신의 독자적 출발점에 서있다. 현재 그의 작업은 우리 모두에게 흥미를 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한국의 조선왕조의 민화가 양식적 특징에서 왜 우리시대에도 유효한가를 인식하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민화 속에는 각 사물의 개별적 색채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른 사물의 평면화 그리고 대칭형, 나열형 구도를 깊게 인식하여 자신의 작업과 설치에 적용하는 것과 강렬한 색채효과를 좀 더 극대화함으로서 민화의 힘을 소유하는 길이다. 그럴 때만이 민화의 힘과 양식을 고급문화로 치장하는 힘 빼기와 어설픈 문화패션 취미를 벗어나 현재적 삶과 문화정체성에 새롭게 도전하는 길이 될 것이다. ● 나는 작가가 가장 현대적 인간욕망의 산물인 장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폐기된 플라스틱 용기들과 제품들을 사용하여 민화의 「십장생그림」으로 재현한다는 예술적 컨셉자체가 세대를 초월하여 매우 흥미를 유발시킬 것이라는 예감을 하고 있다. ■ 이건용
Vol.20031028b | 서희화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