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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026_일요일_07:00pm
한국_책임기획_백기영 / 전시코디네이터_이일우_이은지 독일_책임기획_브릿타 풍크(Britta Funck)_크리스티안 도펠갓츠(Christian Doppelgatz)
후원 창동스튜디오_덕원 갤러리_(주)재독 이찌꼬, 노드라인 베스트 팔렌 문화재단 벤제 시스템 하우스 뮌스터_(사)뷔네 e.V_뷘덴 아쿠아리움_아헨
작가와의 만남 2003_1027_월요일_03:00pm∼05:00pm_창동 스튜디오 전시실
창동미술스튜디오 전시실 서울 도봉구 창동 601-07번지 Tel. 02_995_3720 / 016_731_9853
깊은 바다 속을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잠수함은 1620년경 네덜란드의 C. 드레벨에 의해서 발명되었다고 한다. 당시는 고작해야 3미터 정도 물속에 가라앉은 채로 노를 저어 움직여야 했다고 한다. 그 후 잠수함은 물속에서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기 때문에 주로 군사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최초로 잠수함은 군사적인 가치를 드러냈고, 19세기말 디젤 기관과 어뢰 장비를 갖춘 잠수함은 보다 빠르고 위협적인 해상의 무기로 등장했다. 근래에는 잠수함이 원자력의 힘을 통해 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심해를 움직이고 있다.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잠수함 ● 안드레아스 쾨프닉의 잠수함 프로젝트는 깊은 물속을 고요하게 이동하고 있는 잠수함의 비밀스러운 움직임을 좇고 있다. 그는 180×65×80cm의 수족관안에 대략 90cm 가량의 작은 모형잠수함을 하나는 독일의 쾰른에 그리고 하나는 한국의 서울에 설치했다. 이 수족관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한국의 수족관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고, 독일의 수족관은 한국을 바라보도록 설치 한 것이다. 설치된 수족관의 한 표면에는 각각 독일 쪽 에는 동양을 상징하는 "만다라"와 한국에는 서양을 상징하는 뒤러(Albrecht Drer, 1471~ 1528)의 "멜랑꼴리아"가 영사된다. 이 두 잠수함은 서로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어 동조되고 있다. 잠수함 안에 설치되어 있는 비디오카메라는 수족관안에서 내다본 상황을 기록해 지구의 북반구에 위치한 독일로 인터넷 통신망을 통해 전송한다. 이 동영상 데이터의 한 시퀀스(Squence)가 전송되는 중간에 수족관에 들어 있던 잠수함은 서서히 수족관의 위쪽으로 부상하며, 수족관의 물은 점점 차오른다. 수족관의 물이 가득차오를 동안 잠수함은 수족관안을 이동하면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다. 수족관안에 물이 가득 차 더 이상 공간이 없어지면, 독일 잠수함에 장착된 비디오카메라는 독일의 수족관 안 상황이 담긴 영상을 인터넷 통신만을 통해 전송한다. 이 영상이 전송되는 순간 독일의 잠수함은 점차 아래로 가라앉는다. 동시에 한국에 설치된 수족관에는 물이 점차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다시 부상한다. 이 두개의 잠수함은 서로 가라앉고 떠오르기를 반복하면서 저울질 하고 있다.
문화비판적인 메타포 ● 안드레아스 쾨프닉의 잠수함은 인터넷 통신망을 흐르는 정보들에 대한 하나의 은유적인 해석이다. 그는 지금까지 독일 아놀드 뵈클린(Arnold Bcklin, 1827~1901)의 회화 "죽은자 의 섬"을 페러디 한 설치작품 이라든가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er David Friedrich, 1774-1840) "빙하의 월출" 같은 작업을 패러디해 작업해 왔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는 항상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고 회화나 설치, 영상이나 사진을 넘어서 시각매체가 가지는 미학적 일관성을 따라 움직여 왔다. 그가 보여주는 회화는 우리시대의 영상과 설치 등의 매체를 통해서 또 작가자신의 신체를 동반한 행위를 통해서 현대미술의 언어로 다시 재해석되어 진다. 이번엔 뒤러의 "멜랑꼴리아"를 다시 보여준다. 동시에 대립항으로 "만다라"도 다른 한편에 위치해 있다. ● 왜 하필이면 "멜랑꼴리아"를 서양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선택했을까? 또 동양을 상징하는 "만다라"는 무엇인가? "멜랑꼴리아"에는 한 남자가 고개를 손으로 괴고 한 손에는 컴퍼스를 들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 남자는 모든 근대과학의 측량기구를 주변에 가지고 있다. 이 우주의 비밀을 측량하려는 남자는 고민에 빠져 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외에는 확증할 것이 없다고 했던 데카르트의 회의하는 근대적 자화상처럼, 이 그림은 냉혹하리 만치 철저하게 자기를 둘러싼 우주를 측량하려 든다. 이 우울함에 가득 차 있는 남자의 고민은 근대를 살았던 뒤러의 고민이자, 아직도 같은 고민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서양인들의 고민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서구사상의 우울함을 나타내주는 그림이다.
안드레아스 쾨프닉은 이것은 서양인들이 물질적이고 외면적인 세계에 대한 고민에 너무 깊이 빠져들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말한다. 단조로운 동판의 색조와 대조적으로 "멜랑꼴리아"와 비교되고 있는 "만다라"는 매우 화사하다. 그리고 추상적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우울한 관념적 고뇌는 그다지 요구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것은 복잡하게 나누어진 화면을 화려한 색깔들로 하나씩 채워가는 하나의 수행이요 묵상의 과정이다. 안드레아스 쾨프닉이 13살이 되던 해에부터 알게 되었다는 동양사상의 매력은 그를 서양문화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게 했고, 내면의 공허함에서 오는 문명과 과학의 허상을 대한 그의 비판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그가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적인 우울함이나 좌절되고 상실된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을 패러디 하는 것은 이와 같은 문화비판적인 시각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독일의 낭만주의적인 전통을 영상미디어의 표현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세계를 이동하는 잠수함 ● 그러나 그가 보여주고 있는 두개의 그림처럼 대립되는 동, 서양은 오늘날 인터넷 통신망에 의해 연결되어 비밀스럽게 심해를 움직이는 잠수함처럼 매일 이동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동양에서 그는 더 많은 서양을 만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서양에서 그는 그 어떤 동양인보다도 동양적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잠수함으로 서로 바뀌어 있다. 그가 인용하고 있는 우파이샤드 에서처럼,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그곳에도 존재하고 그곳에 존재하는 것 또한 이곳에도 존재하는 것일까? ● 우리는 7000키로나 떨어진 서로 다른 장소에서 수족관을 움직이는 잠수함을 관찰하게 된다. 거리와 무관하게 서로가 순차적인 간격으로 동조할 수 있는 기술이 인터넷 통신망을 통해서 가능해 졌다. 실시간으로 동영상이 날아온다. 참고로 적는다면, 연결되어 있는 두 잠수함을 동조하는 한국의 인터넷 전송속도는 독일의 열배가 넘는다. 우리 쪽에 영사되고 있는 "멜랑꼴라아"는 이제 더 이상 서양을 비판하는 그림이 아니다. 테크놀러지 세계에 대한 동경에 가득차 인터넷 왕국을 실현한다는 우리의 의지 안에 우리의 내면을 가꾸는 진지함과 여유를 얼마나 간직하고 있는지 다시 묻게 된다. 역설적으로 안드레아스 쾨프닉은 인터넷 기술을 이용해 가상현실을 잠수함처럼 떠도는 우리의 내면을 다시 상기시켜 주고 있다. ■ 백기영
Vol.20031026a | 잠수함프로젝트_안드레아스 쾨프닉展